인문학적 소양 3- Big Data로 수집할 수 없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
『Thick data』란 책을 요약하면,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유수의 기업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의 욕구는 표면적으로 맞닥뜨리는 불편함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불편한 이면에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의 뇌의 습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다.
이를 테면, 삼성 페이보다 더 이전에 모바일로 결제가 가능한 삼성월렛 서비스가 실패한 까닭을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와 비교해서 설명하는 대목이다. 삼성 월렛은 삼성페이나 애플페이 등 스마트폰으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가 상용화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출시가 되었지만 묻히고, 삼성페이로 다시 부활한 최초의 휴대폰 결제 서비스였다.
실패한 까닭은 아무리 할인된 가격으로 카드없이 편리하게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로 홍보를 했더라도, 기존에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인간의 습관을 떼네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삼성월렛 서비스에 대한 QR코드가 있는 광고판이 카운터 앞에 버젓이 홍보되고 있더라도, 줄에서 이탈하면 더 늦어질까 봐 서비스 사용을 꺼려했다.
물리적(신체적)으로 이미 각인된 뇌의 습성으로 인한 인간의 습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접근한 시스템은 결국 충분한 사전조사와 뇌의 인지적 구두쇠라는 습성을 이해한 뒤에야 다시 삼성페이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 서비스는 휴대폰을 미리 주문 및 결제를 하더라도, 바로 커피를 내리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마이크가 매장의 고주파 신호를 인식해 매장을 들어설 때 감지가 되고 이때 커피를 내려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소비자의 입장에 한 발 다가선 서비스였다. 소비자가 식은 커피를 마시지 않도록 하고, 매장에 오지 않더라도 결제 환불이 되는 손해보기 싫어하는 인간의 욕구를 파헤쳤기 때문에 오히려 코로나 19 시기를 거치면서 서비스가 급성장하게 됐다.
결국 책에서 말하려는 바는 인간의 잠재적 욕망은 커넥션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슨 '인간은 아무리 자기 자신만의 가치가 중요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타인과 접촉하기를 원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다. 소비자는 설문조사로던 표면적인 표현으로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캐글이라는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상에서의 챌린지를 통해 발굴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선택한 넷플릭스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넷플릭스 구독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를 솔직 담백하게 선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영화 장르를 선택한 뒤에도 막상 19금의 영화를 더 많이 보는 게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표피적인 선호도에 따른 빅데이터 수집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실제로 문화인류학자들이 많이 하는 직접 현장답사를 가서 주변인(marginal person)의 관점으로 연구 대상자들을 낯설게 보기도 하고 그들과 사회적 유대를 가지면서 그들의 진짜 욕구('연대')가 무엇인지 캐내는 참여관찰, 즉 Thick(두꺼운) Data를 얻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이 한마디,
문화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많으며 묘하게도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감춰진 바를 가장 모른다.
에 대한 자신이 직장에서 겪은 여러 가지 사례를 'Thick Data 프레임워크'라는 일반화한 틀을 통해서 해석했다.
에드워드 홀 학자의 말은 동양의 노자라는 사상가의 말과도 가닿아 있다.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서 어떤 무리 속에 있을 때는 그 무리의 속성을 알 수 없으나, 그 무리를 벗어날 때야만 그 속성을 알게 된다는 비슷한 격언을 했다.
공기라는 보이지 않는 물체에 대해서 평상시에는 이것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산소가 부족할 때야만 본인이 속한 대지에서 이 공기라는 속성을 이해하고 찾게 된다. 주변인의 관점을 가지는 것은 이처럼 정말 어렵다.
창의성이라는 것도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의 조합이거나 빼기 혹은 그것들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새롭게 정의하는 기술의 범주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책을 많이 보거나 세상의 낯선 문화를 많이 접한 뒤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야만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이 얼마나 다른 지 느낄 수 있다.
간혹 책을 많이 봐서 현실 물정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스운 소리다. 여행도 많이 다녀와서 그런 말이라도 하면 오지랖이라도 넓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책을 많이 봐서 사람이 현실감각이 뒤쳐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책을 더 많이 혹은 깊이 있게 보지 않았기에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감각이 떨어질 수가 있다.
사고란 앞선 시대의 사람들이 이미 풀어놓은 책을 통해서 더 멀리 그리고 넓게 내다볼 수가 있다. 결국 창의력이라는 것도 얼마나 많은 책을 통해서 혹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와 그들을 제대로 관찰함으로써 지금껏 하지 못한 생각의 조합으로 현재 놓인 현실세계를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능력이다.
책은 정말 많이 봐야 한다. 적어도 한 분야에 대해서 백 권은 독파해야 그 분야에 대한 전체적인 가시권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면 열 개의 분야에 대해서 백 권씩만 독파해도 열 가지 분야에 대한 나보다 경험을 일찍 한 사람들의 지혜를 조합할 수 있다. 계속 대물림되고는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상상력'의 원천이다. 결국 상상력도 '양질전화', 양이 우선돼야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