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gi Seo Apr 23. 2016

영문법만 보면 질색인 한국인

껍데기만 자꾸 까고 보는 한국 사이비 영어교육 올 단두대!

All rights reserved. No part of this magazine may be reprinted or reproduced or utilised in any form or by any electronic, mechanical, or other means, now known or hereafter invented, including photocopying and recording, or in any information storage or retrieval system, without permission in writing from the publishers.





내가 말하는 영어가 과연 자연스러운지 어색한지는 스스로 종잡을 수 없다. 내가 내뱉는 말의 쓰임이 특정한 상황에서 알맞다고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 능력이 된다면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데 적절한 배경지식과 제법 익숙해진 사용의 습관화가 수반된다면 굳이 원어민에게만 의존하지 않은 채 뉘앙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즉,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으로써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한국인이 대체로 시작하는 학교 영어공부는 말의 의미 전달이 아니라 말과 글의 형성에 필요한 틀을 위한 이론부터 주입한다. 이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지적해온 영어교육의 잘못된 단상이다. 이로 인해 더욱 불거진 조기 영어교육과 그에 따른 국어가 경시되는 풍조는 비단 한국만의 폐해는 아니다. 영어공용화를 논하는 시국에 이것의 찬반을 따질 수도 있겠으나 한국의 고질적인 영어교육의 제자리걸음에 대해 딴지 걸어보겠다.



위의 그림을 보자. 왼쪽 빨간색 원의 영역이 영어이고, 오른쪽 파란색 원의 영역이 국어라면 한국에서 대물림 되어온 영어공부의 범위는 두 원의 교집합 부분, 가운데 영역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식하는 영어의 A to Z는 영미 문화권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영어(A)가 아니라, 한국인이 지금껏 길들여져 온 사고방식(B)으로 바라본 영어 같은 한국어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뿌리가 다른 언어를 다른 문화권의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이자니 영어학습의 목적이 한계에 부딪힌다. 그 한계란 위의 교집합 부분에 해당하는 번역식 영어공부의 폐단을 일컫는다. 비록 이것이 초기에 영어를 접근하는데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이 가이드가 영어학습자가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 정착시키는데 결국 장애가 된다. 즉, 영어식 사고로 내가 쓰는 영어라는 언어를 습관화 시키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이 자신이 태어나지 않고 자라지 않은 곳의 다른나라 말을 익히는데 껍데기인 말과 글만 모국어의 껍데기와 비교해서 배운다고 그것의 올바른 쓰임이 발현되지는 않는다. 프로그래밍으로 치자면, 구현되는 알고리즘이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프로그래밍할 때의 목적과 용도만이 같다고 같은 실행결과를 기대한단 말인가. 그래서 제시한 그림의 교집합 부분의 영역은 한국인이 회사생활을 청산할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토익, 토플, 각종 입시용 영어학습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영어를 가리키며 그것은 한국인 사고방식에 의해 영어를 해체한 한국어에 불과하다.



십 수년전에 '영절하'라는 책의 난제가 유행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도 그 같은 방법론으로 모바일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 교육방법은 보편율로 따져서는 이해불가의 영어학습법이다. 이 학습법의 책을 쓴 저자는 독일로 유학 가서 생활하는 가운데 펍에서 축구경기를 보다가 갑자기 독일어가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실례로 들어 영어공부를 절대로 하지 마라는 학습(?) 효과의 근거를 내세웠다. 의문점은 저자는 독일 문화권에서 교육을 받으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생존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다는 전제를 왜 건너뛰었냐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문화권 상식도,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는 단 하나의 영어테이프를 늘어지게 듣고 흔히 일컫는 유행어 '일만 시간의 법칙'을 몸소 실천하면 누구나 영어의 귀가 뚫린다는 것은 기존의 이교도에 맞서 또 하나의 사이비 교리를 창시하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이다. 물론 언어를 처음 시작하는 데 있어 말과 글보다 소리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은 대한민국 일재잔재의 영어교육에 경종을 울렸다.




다시 한 번 위의 그림을 살펴보자. 과연 하늘색 원의 영어만을 가리키는 순수 집합에 해당하는 부분은 앞선 그림의 한국어와 영어의 이종교배를 한 부분과 무엇이 다른가? 영어라는 언어가 기원하면서 지리학적으로 영향 받은 사용자의 습관과 사고방식 그리고 문화와 사회상의 변천에 따른 상식과 격에 따른 표현, 지방 색깔이 반영된 변종된 방언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그 언어만의 고유성에 해당된다.



사실 이러한 언어의 관습, 역사, 통속성과 그리고 고유성이 추상적이기에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영어냐고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이 '이것이 영어다!' 하고 방점을 찍으면 그만이었을 터이다. 앞서 말한 일련의 사고방식의 습관화를 한국인은 맹점에 두고 교육을 하기에 항상 제자리걸음이고 애꿎은 사교육비만 영어권 국가에 헌납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만 되고 커뮤니케이션이 된다고 생각하는 영어가 사실은 영어의 본질은 아니다.


한 번이라도 원어민이 우리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사실은 한국에서 태어나 무작정 배운 영어는 일방통행의 영어로 그들과 주고받은 말은 일인 독백에 불과하다. 사고의 습관화는 우리가 모국어를 배운 기간만큼 모국에서 이루어진 학습과 피드백 그리고 수많은 생활습관들이 필요하기에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묻어나오는 모국어와 동급의 수준의 외국어를 만들자면 족히 십수 년은 걸린다. 이 수준의 급을 단지 시험 점수로 환산해서 '나의 영어 수준이 이 정도다'라고 생색내기에 급하게 만든 지금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현주소가 이제 어딘지 알겠는가?



그것으로 인해 불거진 영어 조기교육 세태와 상상을 초월하는 영어 사립유치원 사교육비, 각종 입시와 취업을 위해 당연하듯이 버리는 영어교육비는 나를 포함해서 모든 한국인의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토익 점수별 등급에 취업의 문턱이 당락 지어지고 퇴직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영어공부 강박증과 스트레스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면서도 줄 세우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교육과 사회정책에 폐단이 있다. 그렇다고 영어 공용화를 이제 와서 시행해야 한다고 논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다음 편부터 방법론에 대해 이어나가겠다.




참고 서적 : THE GEOGRAPHY OF THOUGHT, Richard E. Nisbett; free press, 2004
참고 영상 : EBS 영어교육 관련 다큐멘터리;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과 영어'
http://tvcast.naver.com/v/126119












매거진의 이전글 영문법이라는 어설픈 성 정체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