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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Oct 08. 2017

두뇌의 힘, 나의 열쇠

뇌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내가 성공하는 길


 



197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에사키 레오나 박사에 따르면 인간의 지적 능력에는 분별력과 창조력의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중략- 우리가 일하는 기간을 20세부터 70세까지라고 가정하면 '분별력'은 20세에는 0이었다가 매년 증가해 70세에 100에 이르며, '창조력'은 20세에 100이었다가 점점 감소해 70세에는 0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내 나이가 만으로 33세이니, 창조력은 '74'이고 분별력은 '26'이다. 엊그제 어머니와 외할머니 셋이서 순천만 국가정원에 놀러 다녀왔다. 뒤에 타신 할머니는 내가 운전하는 동안 연신, 방향과 속도의 컨트롤까지 일러주셨다. 에사키 박사 말대로라면 할머니는 창조력은 이미 '0'이시지만, 분별력은 '100'을 넘으신 상태이시니 나보다 기존의 지식을 활용해 사물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분류 및 판단하는 힘이 압도적이셨다는 생각에 대해 이제야 납득(?)이 되었다.



청중 앞에서 발표할 때 청중은 발표자의 겉모습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게 70%라고 한다. 그리고 나 또한 벌써 칠순을 넘기신 할머니의 지적을 업신여기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노파심에서 비롯된 걱정의 일부라고 생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할머니의 판단력은 나보다 '64' 이상이 되는 게 과학적으로 밝혀진 정량적 수치이지만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무리였다.



우리가 만약 다가오는 IoT (사물인터넷) 시대에 사람을 외모가 아닌 뇌의 지적 능력에 대한 데이터로 먼저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젊은이들은 마냥 나이 많으신 분들의 노파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히려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는 요인 중의 하나로 '뇌의 상태'를 우선으로 여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뇌가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일을 하고 공부를 한다면 지금껏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한 모든 과업에서 해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뇌는 곧 인간 그 자체이며, 인간은 곧 그 뇌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예로 우리가 뇌가 원하는 방식대로 책을 보는 데 있어서, 순서를 고려하거나 정독만을 고집한다면 뇌에게는 부담이 많다는 것이 요즘 많은 책에서 언급되고 있다.

 


뇌는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인간이 표면적으로 정해놓은 순서나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단지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정보를 반복적으로 훑어보면서 뇌에서 점들의 확장과 그 점들을 연결시켜주는 작업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언뜻,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듣는 이가 말하는 이보다 70% 비율의 에너지를 더 소모한다. 즉, 작가가 글을 써서 자신의 언어로 포장하는 과정보다 독자가 그 작자가 말하려는 바를 자신의 스키마(같은 사과라는 단어라도 듣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이미지나 정보가 다른 하나의 배경지식)에 비추어 받아들이는 데 더 많은 두뇌 에너지의 소모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어려운 책을 붙잡고 이해가 될 때까지 집중하는 것보다 그 책을 덮고 이해가 가능한 다른 책의 같은 개념을 찾아보는 것이 오히려 뇌의 부담을 덜 주는 것이고 그렇게 유연하게 정보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뇌에 심어져 있는 정보지식들 간의 연결과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교육받을 때는 이해가 안 되면 무작정 암기시키거나 아니면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근성을 강조한 까닭에 쓸데없는 두뇌 가용성만을 키워온 셈이다.



그러니 공부란 지겹고 어렵다는 편견과 딱지가 붙어져 대학에 들어가서는 또다시 지난한 교수들의 양방향스러운 주입식 교육이 이어지고 졸업과 동시에 독서와는 결별하게 한다. 그러니 한창 엉뚱한 생각과 독특한 사고방식을 창출해야 하는 젊은 시기에는 정말 엉뚱하게 구세대의 지식만을 답습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오히려 독서는커녕 업무 또한 군대식 문화가 자리 잡은 수직구조에서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관행이 이어진다. 한국이 대표적인 그런 주입식 교육의 국가들 중 하나이고 동북아시아권 대부분의 나라들이 쓸데없는 지식의 적재에 매달리다 보니 지식의 사용법에 대해서는 멍한 경우가 많다.



두뇌가 좋아하는 방식이 곧 사람이 좋아하는 방식이다. 게을러서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기 싫게 만드니 공부와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교육정책 운운하기 전에 공부의 본질을 두뇌의 사용법대로 깨달을 수 있도록 안내부터 해줘야 한다. 공부머리는 사람마다 다르고 책 보기를 풍월 읊듯이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읽도록 하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그래서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입시결과가 더 좋도록 학습이 아닌 두뇌의 계몽부터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공교육이 수능과 내신성적의 결과를 목표로 결과 우선주의 지향해야 한다. 그러면 있는 집안이건 없는 집안이건 쓸데없는 교육비 투자에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뇌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잠깐 옆길로 샜다. 다시 정리하자면 두뇌는 읽기를 순서대로 하지 않고 기존의 알고 있는 지식과 관련된 내용부터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독서를 할 때는 정독을 할 게 아니라, 아는 것부터 건너뛰면서 읽고 또 읽고 속도감 있게 반복하면서 다독을 하면서 두뇌에서 필요한 지식으로 각인되게끔 시냅스(정보 간의 고속도로)를 두텁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두뇌가 일반적으로 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5분이다. 청강 시에는 10분이면 아무리 언변이 뛰어난 강사라도 그 말에 진절머리가 나게 되어있다.



그러니, 깊이 있는 공부를 한답시고 한 주제를 가지고 30분 이상 붙잡는 것은 두뇌에서 워킹 메모리에 해당하는 뇌의 가용성을 금세 소모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장기전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면 오히려 15분마다 끊기는 집중력의 타이밍에 다른 테마로 환기시켜주는 게 좋다. 하루 30분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30분 동안 딴생각 안 하고 명상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시도해 본 사람은 안다.      



딴생각을 하는 게 지극히 정상적인 두뇌이기에 평상시에 명상으로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도 본격적인 톱질을 하기 전에 미리 톱날을 갈아놓는 것과 같은 쇄신 작용을 할 것이다. 또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두뇌는 순서를 따지지 않는다. 이거 저것 독서를 한다고 해서 학교 선생님 말마따나 어중이떠중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연관 없는 지식에서 오히려 창의적인 스파크(찰나의 아이디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멍 때리는 순간이 그런 타이밍인데, 두뇌는 이때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인의적인 신경이 아닌 잠재 영역에서 더 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연구결과로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두뇌는 쉽게 속는다. 플라시보(위약) 효과가 이루어지기 위해 두뇌의 신경회로를 항상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 평소에 혼잣말로 내뱉는 긍정적인 언어가 곧 두뇌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어 생각이 곧 현실에서 드러날 수 있는 개연성을 만든다. 자유투 훈련을 하지 않고 오로지 이미지 트레이닝만을 한 그룹이 훈련만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지 않은 그룹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임상결과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입증되고 있다. 뇌, 즉 나는 잘 속는다. 허풍이 아니라 자신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습관적으로 심어주다 보면 정말 그렇게 두뇌, 즉 나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어져 있다.

 


인생역전은 꼭 로또만 시켜주는 게 아니다. 두뇌, 나 자신은 항상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열쇠를 움켜쥐고 있다. 그래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것뿐만 아니라, 두뇌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곧 본인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두뇌의 힘, 여기까지가 1편이며 2편은 마라톤과 연관 지어 이야기해볼 계획이다.




발췌 서적:

옥스퍼드는 어떻게 답을 찾는가 세계 1% 인재들의 생각법과 소통법, 오카다 아키토, 엔트리, 201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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