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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조금은 도발적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떠오른 나의 고백론

by Younggi Seo






조선이 만약 병인양요로 인해 일본이 아닌 프랑스에게 먼저 문호가 개방되었더라면 한국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라는 상상을 가끔 해본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난 제법 근사한(1*)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가 프랑스의 교육을 통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근거로 한국도 서양사상의 철학에서 일찍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재 대입의 문도 바칼로레아 수준의 논술이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든다. 나처럼 주관이 제법 센 사람이라면 그러한 입시에 도전할 만도 했을 법한데라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우리나라가 성에 대한 개방을 좀 더 일찍 받아들이고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교육이 하루빨리 도입된다면 지속적인 관련 사건사고가 뒤늦게 비집고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상상도 해본다. 모든 인간에게는 공통적으로 호기심과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개성과 자유가 있는데, 이러한 공리를 폐쇄적으로 묶어둔 교육을 언제까지 방치할지는 의문이다. 내가 만약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웃집 동생이 컴퓨터를 장만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2*)이라는 영화 CD 재킷 뒷면의 사진을 보지 않았었더라면 무언가 탐닉하게 된 도화선은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내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금 내세울 수 있었던 건, 미지의 장면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에 대해 끈을 놓지 않는 집착이었다. 5학년 때까지는 평범한 초등학생에 지나지 않았더라면 집 앞의 동네서점을 통해 수많이 접하게 된 교양도서들이 나에게 굉장한 호기심을 촉발시켜준 계기였다. 그 탓에 서점 주인에게 책을 고르는 기준이 어른답다는 시쳇말로 책좀 빨리 골라라는 훈수까지 들었지만, 그때 이것저것 접한 잡다한 지식과 등교 때마다 또래의 책가방보다 무겁게 만든 초등학교 상식 대백과 사전, 전과 등은 성적과는 관계없이 공부에 대한 집착을 가지게 해줬다.



그래서 중학교 때, 줄곧 다녔었던 컴퓨터학원의 선수학습을 제외하곤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전교 톱텐에 쉽게 들곤 했다. 첫 시험에서 수학에서 어정쩡한 실수 한 개로 전교 2등에서 3등으로 밀려났지만, 지금까지 내 생애 최고의 등수를 기록했다. 그때 같은 반의 전교 1등이었던 친구 한 명과 사이가 가까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 2차 성징이 오지 않았었는지 남모를 흠모를 그에게 가졌던 거 같다. 단 이 한마디에 말이다. '저렇게 공중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보면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꼭 들어맞는 거 같지는 않다 말이지.'



한 번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나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마지못해 감탄을 하였는데, 그에게 빌려줬었던 책 한 권은 지금은 어느 분야에서건 유행하는 '마인드 맵'의 창시자인 토니 부잔이라는 저자가 쓴 '유저 유어 헤드'였다. 친구는 집안의 부모 두 분 다 교사였으며 누나까지 있어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나만큼 학습법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그 당시 조금은 샘날 정도로 교실에서는 공부하는 꼴을 못 봤지만 성적은 항상 일등이었다. 그런데 그런 동창인 남자에게 이상한 마음이 들어서 그 당시 청소년 상담 기관에 직접 상담 엽서까지 보냈었던 게 기억난다. 하물면 신라 시대의 화랑제도와 그리스 시대의 스파르타군 양성 시 성행했었던 동성애 관계는 없었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



밀의 '자유론'을 보면 인간에게 개성과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어디까지 줄 수 있느냐에 대한 말이 나온다. 타인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정도가 아니라면 국가에서 간섭해서는 안되고 그럴 권한이 없다고 한다. 남에게 피해가 안 줄 정도라면 자신의 다름(자유론에서 언급하는 '별남')을 표현할 수 있고 그리고 거기에 대한 비판까지 받아들이고 양쪽의 견해에서 자신의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정신적 영역을 강조한다. 마치 오늘날 토론 면접에서 필요한 순발력과 '패러다임 시프트'를 언급하듯이 말이다. 밀의 '자유론'은 영국 유수의 대학가의 학생들이 그 당시 필독서를 넘어 글을 아예 외우고 다닐 정도로 토론의 대상체에서 빠지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성소수자들을 위한 제도의 합법화가 영국(3*)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밀이 현대사상에 미친 영향력은 작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서기 전에 몇몇 친구들로부터 소개받은 게임과 조PD의 가사 규제(4*)를 받은 1집은 나의 인생에서 또 다른 시금석을 마련해준 계기였다. 게임은 본래 여섯 살 때 생일 선물로 받은 286XT 퍼스널 컴퓨터로 접하면서 게임 마니아 기질이 이미 체질이었다. 한 번 빠지면 친구 집이건 어디서건 스테이지 백 번째 판이 넘기도록 붙잡고 있다가 친구가 강제로 꺼야지 멈출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새로운 장르의 게임(5*)을 한 친구에게 소개받은 이후로 그 정품 게임을 빌려서 중2 겨울방학 시절을 끼니도 거르고 밤새도록 붙잡는 열정 덕에 주인장 친구보다 몇 미션 더 완료하곤 했었다.



더불어 중3 학기말 때 또 다른 친구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한 번 들어봐라고 건네준 이어폰이 시발점이 된 힙합이라는 사조는 지금까지도 권위에 대한 조롱적인 사고의 한 축을 구축해 주었다. 조PD의 1집 갱스터랩을 고등학교의 교내 한 클럽에서 번외 활동 중 선생님들과 선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가사 그대로 질렀었는데, 속으로 어떠한 파장이 미치었을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지금은 오리지널부터 스테이트 오브 디 아트까지 다 힙합이라고 떠들지만, 힙합의 정신은 권위에 저항하는 '반항'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 남들과 다름을 강조하는 미덕을 좋게 말하면 '공리', 나쁘게 말하면 '반항', 미국에서 흘러간 운동(Movement)에 따르면 '히피', 혹은 현재도 대중에게 유행 중인 '힙! 합, 힙! 합, 힙! 합, 드렁큰 타이거 헤이 뱅뱅~'(6*)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호기심과 반항심이 나로 하여금 기성 교육에 반발하게 된 계기였고, 중학교 때까지 또래들로부터 영감 이미지가 난무했던 범생이에서 고등학교 때부터는 혼자, 혼자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지긋지긋했었던 주입식 수업에서의 이탈이었다. 수업 시간조차 책과 거리가 먼 비정규적인 활동이 나에게 주목적으로 횡행했었기에 혼자만의 사색과 공상이 고등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잠식했다. 중학교 때 이미 호기심 때문에 미리 사뒀던 고등학교 EBS 언어영역이나 논술 교재 그리고 기본기는 쥐뿔도 없는데(귀찮은 것을 혐오하고 싫증을 편애했었기에) 고난도 시리즈의 수학, 과학 문제집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책상의 관상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또래들과 차별화하고 나를 남과 다름으로 스스로 규정짓고 그 가치를 인정했었던 시기를 가끔씩 후회하기도 한다. 언제냐면 중학교 때 같은 동성으로서 솔직히 좋아했었던 친구가 자신의 지망대학이 포항공대(지금의 포스텍)라고 얘기했었던 기억이 떠올려질 때마다 말이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만약 포스텍에 갈 정도로 기본기에 충실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7*)를 들을 때 흥분만 하는 성격이 아니었더라면, 걔를 포스텍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정해진 발판에 의해 점핑하도록 끈질기게 노력했다면 실제로 어릴 적부터 키워온 재능은 있지만 두각을 드러낼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이들보다 쉽게 사회적 출세를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전자 부류의 사람들이 과학계나 정계를 휘어잡고 있으면 안 된다. 단지 대학 명판이라는 학벌, 소위 사회에서 마련해준 안전한 출세 장치를 통해서 위에서 말한 재능 있는 사람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8*)도 밀이 말한 타인에 대한 인권 침해, 즉 공리를 저촉하는 행위가 된다. 남들보다 일찍 트인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데 제도권 교육에서도 숨 막히지 않고 자랄 수 있는 교육 생태계가 전인 교육의 취지이며 인간의 자아실현을 촉발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그런 나라가 부국강병 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터이다. 나에게 다시금 호기심과 상상력이라는 인류의 소산 중 가장 가치 있는 동인 둘을 소생시킨 현재의 임무도 어쩌면 이 나라가 부국강병 해지는 데 일임을 하고 싶기도 때문 일터다.



대한민국이 기이한 나라(9*)로 치부되지 않을 날, 그런 날은 평균 재능 이상의 인력 자원('고급 인력'이라는 명칭은 '저급 인력'이라는 명칭이 있어야 성립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저임금 노동력과 대비되는 말로 고급인력이라는 유치한 단어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자신들의 주가 상승만을 고대하는 기업 자본가들이 조세 피난처를 따로 두지 않고 국가에 법인세는 물론 무기명으로 초과수익을 환원*하는 날이 아닐까, 이 대한민국아.





1*) 현대 철학사상가 중에 유일하게 서양의 유명 잡지 '보그' 표지 모델로도 알려짐.


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화는 동명의 이문열의 소설이 원작임.


3*) 네덜란드 다음으로 아일랜드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화함.


4*) 조PD의 욕이 들어간 대표적인 곡('Break Free')의 공개 버전으로 라디오에서 대중에게 유명해지기 그 이전에도 이적과 함께 활동했었던 패닉의 멤버, 김진표가 솔로로 데뷔한 힙합 곡이 대한민국 최초로 욕으로 인해 규제를 당한 랩이었다.


5*) 아재라면 알 것이다. 미국 힙합대회에서 수성을 하고 대한민국에 건너온 그 당시 미국계 한국 힙합의 원조격인 드렁큰 타이거의 라임. 그들이 부른 영어 힙합은 미국인조차도 인정했다면 한국말로는 전달력이 떨어졌는지, 2집부터는 별 볼일 없었던 거 같다.


6*) 게임은 다크 레인(Dark Reign). 능동적인 AI와 단순한 물량전을 배제하는 플레이로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되기 전까지 제법 오랫동안 한국 패키지 판매 순위 1위에 머물었으며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RTS 열풍의 기초가 되었다. From wiki나무


7*) 서태지가 기성세대의 유물인 교육을 비판하기 위해 이 곡을 지었고 학생 때 아무리 공부는 멀리했었을 거라고 추측하더라도 어느 정도 철학 공부는 했었기에 그는 아마 학교라는 공간을 그리스 시대 플라톤이 제창한 '이데아'라는 현상계의 호칭으로 비유했을 거라 미루어 짐작한다. 결코 작금에 와서 정체불명의 음악성의 콘서트로 돈만 벌어가는 딴따라는 아녔었다고 말이다.


8*)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한 것처럼.


9*) 그렇다고 필자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의 공리에 침해하는 행위를 지금까지 이 매거진​을 통해 했었다고는 생각 안 한다.


10*) 초과수익 운운한다고 작자는 좌파성향의 XX이가 아니다. 다만 박노자 작가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즐겨 읽었다.




참조 서적 및 명사강연:

1) John Stuart Mill. 권기돈 옮김. 자유론 On Liberty. Penguin Books Ltd, 2015.

2) Ken Robinson. Do schools kill creativity? YouTube, 2007

Do schools kill creativity? | Sir Ken Robinson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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