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조직에 속하게 되고, 죽은 뒤까지도 조직에 속하는 존재이다. 조직의 한자는 組(짤조)織(짤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사로서 조직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짜서 이루거나 얽어서 만듦. 둘째,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개체나 요소를 모아서 체계 있는 집단을 이룸, 또는 그 집단. 셋째, 날줄과 씨줄로 짠 천의 짜임새'이다. 인간이라는 개체들은 생존과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여서 집단을 이루며 조직을 만들게 되고, 그 조직에 속함으로써 의미를 가지게 되며 인간의 삶이 시작된다. 이러한 인간은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조직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과 성장이 쉽지 않다.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가족뿐 아니라 여러 조직으로부터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속하게 되는 조직으로부터 어느 정도 배움의 기회를 얻느냐가 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으로부터 얼마만큼 인정을 받고, 얼마만큼 보상을 받을 것인가가 결정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조직에 얼마나 질적으로 속해 있는가를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본인이 죽은 뒤에도 계속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인정받기를 바라며, 살아 있는 인간도 죽은 자를 추모하고 기림으로서 본인의 죽은 뒤 모습을 유추하려고 한다. 이러한 점은 인간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죽은 뒤에도 조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벗어나고 싶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생각, 사유, 판단이 있을 수 있다. 종교, 철학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존재한 이후로 계속되어 왔다. 여기서 이러한 생각, 사유, 판단을 규명해 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에 근거해서 보면 조직에 속해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를 인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조직에 속해야 되고 또, 조직은 나를 어떻게 속하도록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조직 안에서 어떻게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노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도(道)는 이미 정해져 있는 기준을 근거로 나를 판단하는 것은 도(道)가 아니다고 말한다. 즉, 내가 누구인지는 나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사회에서 이미 규정되어 있는 기준을 근거로 나를 판단한다면 이는 나 자신이 나를 잘 못 판단하고, 재단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할 것이다.
조직에 속해 있는 인간으로서 그 조직이 요구하는 보편적인 기준을 무시하고 생존하기란 쉽지 않지만 나와 상관없이 정해져 있는 기준을 근거로 나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출발점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이래야 한다, 이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여러 기준들에 나를 맞추는 것은 나의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것에 큰 위협이 된다.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되고, 나의 삶은 타자의 기준에 맞추어 가는 과정일 뿐 나의 진정한 삶을 영위해 간다고 할 수 없다.
둘째는 날줄과 씨줄로 짜인 것이 조직(組織)이라는 사전적 의미에도 있듯이 우리는 조직 내 짜인 관계(關係)라는 틀에 위치하게 되고, 살아가게 되는데, 현재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관계의 틀을 벗어나고자 할 때 종종 기존 관계의 틀이라는 질서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고, 되돌려짐을 당하게 된다. 그때 얼마나 많은 좌절과 패배의 쓰라림을 맛보았는지의 기억은 아이, 어른 누구 할 것 없이 있을 것이다.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전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부모님의 반대라는 것이 무엇인가 기존 관계로부터의 반대인 것이다. 불효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명인이 되고자 위한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현재 관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래야 세상을 더 크게 보고,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르네상스 시대의 '융합(Convergence)'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역량으로 재조명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을 넘어서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셋째는 주체(主體)와 객체(客體)의 원활한 소통(疏通)이다. 그 소통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와의 소통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고민들이 해결된다. 그럼에도 종종 자신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비극을 우리는 접하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문제에 부딪혔을 경우 대부분은 자신과의 소통을 통해서 극복해 나간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소통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는데, 자기 자신과의 소통을 잘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솔직함이다. 솔직함은 모든 소통의 근본이다. 솔직함은 어디서 올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온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가족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조직에 대한 사랑을 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속해 있었던 조직, 지금 속해 있는 조직으로부터 받은 보호와 배움에 대한 보답이 된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지구에 대한 사랑, 자연환경에 대한 사랑, 가상 세계/인물에 대한 사랑도 중요하다. 즉,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뿐 아니라 인간과 객체와의 소통도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객체와의 소통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해 주고, 사랑이 바탕이 되는 객체와의 소통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이자, 역량이다.
우리는 죽어서도 조직(組織)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조직이라는 관계 안에 갇혀 운명론적으로 살아가기보다는 관계를 깨고자 하는 도전적인 자세를 가지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는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조직의 관계로 재단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주체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도전과 실행을 하는 것은 내가 속해 있는 조직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준다.
조직이라는 날줄과 씨줄 위에 서 있는 우리, 행복한 삶을 위한 시작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