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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상명 Jun 10. 2020

去彼取此(거피취차)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노자의 도덕경 38장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大丈夫處其厚(대장부처기후, 대장부는 두터움에 머물고), 不居其薄(불거기박, 얕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 處其實(처기실, 실함에 머물고), 不居其華(불거기화, 화려함에 머물지 않는다),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고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이 내용의 핵심은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일 것이다. 여기서 '저것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인 추상적인(Intangible) 것을 뜻한다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이것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현실적(Tangible)이고, 도달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추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하고 변할 수 있지만, 내가 실행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관념에만 머무르는 것을 추상적인 것, 내가 최선을 다하거나 혁신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을 현실적인 것이라고 보자.


조직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접하게 된다. 역량(Competency or Capability)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조직으로부터 어떤 일을 부여받게 될 때, A는 자신의 역량을 과소평가하여 역량보다 적게 일을 맡으려는 경향이 있고, B는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여 역량보다 크게 일을 맡으려고 한다. 두 경우 다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A의 경우에는 리더의 격려, 자신감 부여, 업무 수행에 대한 성공 사례를 축적하게 함으로써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것은 A의 去此取彼(거차취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B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과신을 리더가 분석적으로 지적해줌으로써 고쳐나가고, B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메우는 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고 노력함으로써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이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B의 去彼取此(거피취차)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정한 크기의 허황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허황된 꿈이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고, 삶의 메마름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탈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삶의 희망을 보고, 도전 의지를 키우게 되는 것을 보면 허황된 꿈도 삶에 꽤 플러스(+)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경계를 잘 살펴야 한다. 뉴스를 보면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 일들을 종종 목격한다. 그 해는 당사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또, 사회 전체에 해를 끼쳐서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그 손해는 보상받을 길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허황된 꿈이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가능하지 않은, 조직에서 용인되지 않는 방법을 구사하여 그 꿈을 이루고자 할 때 일어나는 일은 돈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去彼取此(거피취차)가 필요하다. 조직에서 용인되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방법을 구사하는 것은 버리고, 혁신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럴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은 정의가 작동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


내가 어려웠던 시기를 겪은 사람은 남의 어려움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면을 통하여 나에 대한 배려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남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조직 생활을 잘할 가능성이 크다. 조직 생활을 하는 중에 조직에서의 나의 운명은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어떤 경우는 나를 잘 아는 상사의 의사결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의 평판을 통해서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나를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관련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평가는 객관적 평가라고 생각해서 상당히 신뢰를 받게 된다. 나와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평가를 통해서 내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을 것이다. 나의 이익보다는 상대,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과 자세가 나의 운명을 내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익보다는(去彼) 상대,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과 자세(取此)가 去彼取此(거피취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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