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그릇이 있었다. 그 그릇은 물이 없으면 기울어지고, 물이 반쯤 차면 똑바로 서기 시작하고, 물이 가득 차면 엎어지는 그릇이다. 실제 어떻게 그런 그릇이 있겠는가? 그릇에 물이 가득 차면 그릇이 엎어진다는 것은 과욕을 경계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그릇인 것이다. 욕심을 부리게 되면 그 자체를 그르치게 되니 이는 지금도 우리가 충분히 되새겨야 하는 금언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지금도 물이 가득 차면 넘친다는 말을 종종 쓴다. 이때의 뜻은 과욕을 경계하는 뜻과는 다르게 일의 준비가 충분하면 자연히 그 일의 완성도가 높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나, 사람의 자질과 역량이 충분하면 그 자질과 역량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우리는 조직 생활하는 과정에서 과욕을 경계하는 뜻을 가진 의미로서 또, 준비가 충분하다는 뜻을 가진 물이 차면 넘치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과욕을 경계하는 차원에서는 조직이나 개인이 추진하는 일의 목표를 과다하게 설정하여 결국은 그 일 자체를 그르치는 경우다. 일의 목표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고 욕심이 앞서 있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멈추어야 할 시기와 멈추어야 할 곳에서 멈춰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멈출 수 있는 역량 또한 조직과 개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역량인데 이것이 욕심 때문에 발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욕심 때문에 넘치는 그릇에 계속 물을 붓는 격이다.
사람의 자질과 역량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차원에서 기업의 채용 과정을 예로 들어 보자. 기업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제일 우선하는 기준은 도덕성과 발전 가능성이다. 그 기업이 현재만을 생각하고 경영하는 기업이 아닐진대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채용 기준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도덕성은 공동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가치이다. 그래서, 도덕성이 기업이라는 공동체에서 같이 일하게 되는 구성원을 채용할 때 당연히 우선해야 하는 채용 기준이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채용 기준은 채용 대상자의 발전 가능성이다. 현재 맡기고자 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현재 맡기고자 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채용 대상에 선발되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 일하는 방식의 변화, 리소스를 소싱하는 방식의 변화 등으로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사원 채용을 선호하는 경향을 기업들이 보이고 있지만, 어찌 됐든 기업은 채용되는 구성원들이 조직에서 일하면서 역량을 발휘하여 성과를 내고 조직 내에서 계속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조직을 성장시키는 길이기 때문에 채용 대상자의 성장 가능성을 채용 기준으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채용 기준을 가지고 기업들은 면접을 통해서 채용 대상자를 선별하는데, 면접 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과정 속에 면접 대상자가 자격을 갖추었다면 그릇에 물이 차면 넘치듯이 면접 대상자의 자격이 자연스레 나타나게 된다.
또, 일정한 규모 이상의 조직은 아니 모든 조직은 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하여 조직 체계를 가지게 된다. 그 안에 직급체계가 있게 되고, 직위도 있게 된다. 이것을 통하여 업무 수행을 효율적으로 관리(Management)하고, 이를 통해서 조직의 성과를 창출하게 한다. 이러한 조직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은 일정한 역량을 인정받으면 현재 직급에서 다음 직급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승진을 한다. 승진의 의미는 현재 보다 더 큰 범위(Span)의 일을 담당하게 되고, 더 많은 구성원을 이끌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진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회적 지위도 같이 획득하게 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조직 구성원 개인들은 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조직 내에서 열심히 성과를 내고자 노력한다.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승진을 했을 때의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조직에서 누구나 승진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직이라는 특성상 승진할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한정된 자원을 투입하여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인 것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어떤 조직도 승진할 수 있는 기회는 위로 가면 갈수록 적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진은 한정된 경우에 가능한 것이 보통이다. 자리가 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조직에서 승진을 원치 않는 구성원은 없다. 누구나 다 승진을 희망한다. 그러나,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판단을 조직에서 할 때 그 판단은 구성원 각자의 희망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누가 그 자리에 적합하고, 누가 더 조직을 잘 이끌 것인가를 보고 승진자를 결정하게 된다. 승진의 판단 기준 요소들은 승진 대상자의 그동안 업무 성과, 전문 지식, 커뮤니케이션 역량, 리더십, 로열티, 평판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중요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여건이 비슷하다고 하다면 중요한 요소가 승진 대상자의 평판이다. 평판 조회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있기도 하니 많은 조직에서 이를 중요한 평가 요소로 생각하는 것의 반증이다.
평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나의 평판을 잘 만들기 위해서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나의 평판은 잘 만들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최소한 몇 년간 나의 일상적인 행동부터, 일에 대한 열정, 실력,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등 모든 것이 종합되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판은 어느 누구한테 잘 보인다고 해서 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도 나에 대해서 평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평판은 내가 평소에 꾸준히 쌓아가고 있다.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승진 결과가 발표가 되면, 내가 승진 대상자였다면 승진이 안되었을 때의 아쉬움은 무엇과 비교해도 크게 느껴진다. 내가 왜 승진이 안 됐을까? 이러한 성과가 있고,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되새겨 본다. 그리고, 그러한 점들을 조직에 다시 어필해 보기도 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판단과 조직이 판단하는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릇에 물이 차면 넘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릇에 물이 차면 더 많은 물을 담기 위해서는 더 큰 그릇으로 옮겨야 그 물을 담을 수 있음이 자명하다. 조직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충분히 차면 당연히 조직에서 더 큰 그릇에 담으려고 하는 조치 즉, 승진을 시킬 것이다. 나의 그릇이 아직 차지 않았는데, 내가 더 큰 그릇을 원한다면 그것은 나도 힘들고, 조직도 힘들게 하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