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知人)의 이야기이다. A는 정기 인사이동 발표에서 개발부서에서 개발 지원 부서로 이동을 하게 된다. 개발 지원부서는 개발 현업부서를 지원하는 부서로서 하드웨어 설계 시 필요한 회로도를 CAD와 CAM를 이용해서 그려 주는 개발을 지원하는 부서였다. 개발 조직에 소단위로 운영되던 기능(조직)을 통합해서 전문화하고, 시너지를 내고자 정기 조직 개편 시 개발 지원 부서를 신설하고, 인사이동을 실시하였다. 그 부서는 하드웨어 개발자들의 설계에 따라 회로도를 그리는 것인 만큼 고급 기술자가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다. 부서원 전원이 고졸과 전문대졸 출신자로서 구성되어 있었다.
A는 내심 개발 지원 부서로 인사이동을 원치는 않았으나, 적임자가 A 밖에 없다는 설명에 개발 지원 부서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A가 개발 지원 부서로 발령받고 나서 지시받은 일은 조직개편 시 취지에 따라서 통합된 지원 기능 조직의 전문성 제고와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 방안 제출이었다. A는 난감했다. A는 박사 출신이었는데 여태까지 일했던 연구원들은 대부분 석사 이상 출신자들이었다. A는 상사를 찾아가서 석사 이상 출신 연구원 몇 명을 추가 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팀장인 상사는 현재 인원으로 성과를 내라는 말로, 우선 해보고 이야기하자는 말로, A의 요청을 들어줄 수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A는 내심 불만이 있는 상태로 상사와의 면담을 끝내고 부서로 돌아오면서 '고졸, 전문대졸 직원하고 어떻게 일하라고 하는 말이야?'라고 되뇌었다.
며칠을 고심했다. 회사일이라는 것이 주어진 일을 안 할 수는 없는터라 부서원들을 불러서 '시너지와 혁신'을 설명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Workshop을 실시하였다. A는 큰 기대가 없었다. '나는 여기서 성과를 내기는 힘들겠다'라고 속으로 탄식하면서 말이다. A는 Workshop이 끝나고 나서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여태 선입견이 강하고, 나 중심으로 생각했던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Workshop을 실시하면서 A가 시너지에 대해서 설명하자, 참석한 부서원들이 모두들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기 시작하고, 그동안 개발부서의 작은 기능으로 존재했을 때의 지원 기능 수행자로서의 의 힘들었던 사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에 그린 회로도는 다른 개발과제에도 조금만 수정하면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부서에서 진행하고 있는 개발과제에서도 처음부터 회로도를 그리겠지? 부서장한테 다른 부서에 회로도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맡은 일이나 잘하라는 피드백을 받았다는 사례 설명을 들으니 너무도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지만 여태까지 모르는 채 두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작성된 회로도의 이상 유무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 투자와 관련한 사례 이야기를 했다. 검사 장비를 투자하면 업무 효율이 30%는 향상될 수 있을 텐데, 개별 개발부서 입장에서는 개발장비 투자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 결정할 수 있지만 지원 업무와 관련한 장비 투자는 개별 개발부서 입장에서는 장비 투자에 대한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투자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참석자는 회로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제품 성능 효율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H/W 개발자들과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수시로 연구와 토의가 필요한데 개발부서에 속해 있었을 때는 지원하는 입장이라서 어려웠다는 설명이었다. 회로 설계 시 어떤 부분을 개발자들에게 피드백하고, 설명하고, 토의하고,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생각이 있다고 했다.
A는 여태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참석자들의 사례와 생각을 들어보니 너무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Workshop 이후 A는 지원부서 일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회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 A는 '학벌(學閥)이 일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계속 잘 나갔다. 상사에게 표현은 안 했지만 면담 때 우선 해보라고 했던 말이 고맙게 생각 들었다.
조직의 일과 관련해서 학벌(學閥)이 상징은 될 수 있으나 본질은 아니다. 석사, 박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일의 성과를 항상 더 내는 것은 아니다. 일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첫째, 일에 대해서 얼마나 진정성, 열정, 사랑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내가 그 일을 진정으로 대하고 있는가가 성과를 좌우한다. 억지로 하는 일에서 무슨 성과를 기대하겠는가? 좋아하지 않는 일에서 무슨 성과를 기대하겠는가? 내가 희망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회사에서 주어진 일인데 어떻게 모든 일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내가 희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에 대해서 진정성은 가질 수 있지 않은가? 그다음은 해보면 알게 된다. 둘째,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 여기서 경험과 노하우라는 것은 단순히 경력이 오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고, 이해를 바탕으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단순히 오랜 경력자라고 해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혜는 지식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문제의식을 갖고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개선점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개선점들이 쌓이게 되면 조직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는 발판이 된다. 셋째, 협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 모든 조직들은 기능적 분화를 바탕으로 일이 추진된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할 때 부분 최적의 합(合)이 전체의 최적이 아닐 때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점은 4차 산업 혁명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일의 성과를 창출하는 요소이다.
열심히 꽃을 찾는 벌(Bee)은 꿀을 많이 따온다. 학벌(學閥)은 꽃을 찾고 꿀을 따는 벌(Bee)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