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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Jul 31. 2020

저물어 가는 인생길 위에서

이유 있는 눈물

고용노동부 콜센터에서 수많은 민원인과 통화를 하며 실업급여 신청이나 각종 기업지원금, 모성보호 급여, 외국인 고용 허가제 등의 신청 절차를 상담하는 일이 저의 상담업무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수화기 너머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게 되는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글을 씁니다.

오늘의  민원인은 정년퇴임으로 실업급여 신청 절차를 문의하셨던 분입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민원인이 전화를 주셨죠. 정년퇴직을 하셨다며 실업급여 신청절차를 문의하시기에 전산 조회를 통해 확인을 먼저 해드렸습니다. 


고용보험에 실업급여제도가 1995년 7월에 시작이 되었는데 해당 민원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25년간을 한 사업장에서만 근무를 해오다가 정년퇴임을 하 된 것입니다. 6년간 수많은 민원인의 정보를 조회했었지만 이 분처럼 한 직장만 다닌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고용보험제도 시행 전부터 다녔다고 했으니 족히 반평생을 해당 사업장에서만 근무를 해오신 것이죠. 연세 드신 분 중에 더러 몇 명은 10년  이상 재직을 하다가 퇴직하신 분은 있었지만  한 직장만 오롯이 반평생다니는 게 쉽지만않았을 텐데 정말로 대단하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통화를 하는 동안 실업급여 신청절차를 모두 안내해드렸습니다. 안내를  다 받고 나서 긴 한숨을 내쉬고는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살짝 물기 어린 목소리가 전해졌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직장에서 묵묵히 일해 왔을 민원인의 어깨가 눈물로 들썩이고 있음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계속 울먹이며 눈물을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맘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괜찮아지면 말씀해주세요"


적잖이 맘이 헛헛하실 거라 짐작을 할 수 있었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열심히 일했을 것이고 나라의 일꾼으로 경제를 일으킨 산업역군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직장에서만 근무를 하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을 거예요.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단단하게 견뎌내신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요?

정말로 존경스러울 만큼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일들을 견뎌내신 끈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춘을 바치면서 열정을 다해 일하셨을 것이고 중년을 이어오는 동안 승승장구하며 몸 바쳐 일 해온 것을 자랑스러워하셨을 테지만 이제 노년이 되어 퇴임을 하셨으니 그 맘이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잠시 후 진정이 되셨는지 울음을 그치신  같아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제가 6년간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처럼 한 직장만 다닌 분은 처음 뵙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아버님이라면 정말 존경스러울 것 같아요! 자녀들이 이렇게 든든한 아버님이 계셔서 자랑스러워할 것 같네요"


 조심스레 이야기드렸더니 당신의 아들이 의사이고 딸이 학교 선생님이라며 자녀들을 올바로 키운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자녀들 자랑을 하시면서 기분이 좀 나아지신 듯 느껴지기에

"지금껏 쉼 없이 일하시다 퇴임하신 게 많이도 섭섭한 맘도 들겠지만 실업급여받으시며 잠깐 동안은 선생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요즘엔 제과 제빵이나 바리스타 같은 훈련을 받아서 시니어 제빵사나 시니어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직업 훈련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국민 내일 배움 카드제도가 있어서 다른 직업을 찾아보신다면 이용해 보실 수 도 있거든요."


 상세히 국민 내일 배움 카드제 발급받는 방법도 알려드렸더니 침울했던 목소리가 다시 밝아지셨고 제게 상담 잘해줘서 고맙다며 전화를 종료하셨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저물어 가는 인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한평생을 몸 받쳐 일하는 일이 좀 특별한 일이 된 세상을 우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살아갈 시대에는 평생직장이나 평생 직업이란 없다고들 합니다. 언젠가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죠. 그  속에선 한 직장을 꾸준히 다니면서 본인 나름의 업무 노하우를 축적하여 생활 속 달인으로 거듭난 분들의 사연이 방송되었어요. 그런 분들을 볼 때면  꾸준함을 무기 삼아 끈기 있게 사는 인생의 을 생각해봅니다. 인생이 저물어 가기 전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꾸준히 끈기를 가지고 소명을 다하는 사람으로 한 번쯤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 민원인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키우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입니다. 한평생 꾸준한 끈기로 삶을 이어오셨던 그 맘으로 남은 생도 꾹꾹 눌러 담아 채워가시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남은 삶 속에서 지금보다 더 행복하시길 살짝 기원합니다.


제가 찾은 이 분의 인생 지혜는 무엇이든 꾸준한 마음으로 끈기 있는 인생을 살자!입니다.
우리는 늘 삶을 살아갈 때에 도전은 쉽게 외쳐보지만 그것을 꾸준히 지켜내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꾸준히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반평생을 꾸준함으로 끈기 있게 지켜오신 삶의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저도 제 업무에 "끈기" 한 스푼 추가해봅니다.


#끈기 #꾸준함 #용기 #상담이야기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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