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람 Jul 31. 2020

그녀의 폭탄 돌리기

그러면 안돼!

상담을 하면서 민원인의 정보를 조회할 일이 많습니다. 조회를 하다 보면 상대가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가 있죠.

오늘의 민원인은 저와 같은 상담사 업무를 하는 사람이었죠. 무자비한 폭탄을 투척한 그녀의 행태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적어봅니다.

상담사로 근무를 하면서 제일 씁쓸한 순간이 있습니다. 같은 상담을 하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악성 민원(욕설을 하거나 무개념 민원인을 일컫는 말)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할 때이죠.


예전에 가족 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검은색 폭탄처럼 생긴 것에 제한 시간을 정해두고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하며 옆사람에게 폭탄을 돌리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제한시간이 있기에 이어받은 사람은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다음 사람에게 폭탄을 돌려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가  있습니다. 이윽고 제한 시간이 다 되었을 때 펑하고 터져버리는 게임이었죠.


흔히들 상담업무를 하는 사람이 또 다른 감정노동자에게 자신이 당한 일 그대로를 자행하는 행태를 꼬집에 '폭탄 돌리기'라 일컫습니다. 그날의 민원인인 그녀는 저와 같은 상담업무를 했던 사람이었죠.


그녀는 상담업무를 봤던 업체와의 계약 파기로 퇴사를 했고 실업급여 문의를 했던 것이었죠. 반가이 맞이 인사를 했던 순간부터 반말로 시작을 하더군요. 무개념이신지 말을 반토막으로 해버리는 민원인이 가끔 있는데 그런 무개념 민원인과 똑같은 행태를 저지르더군요. 꾹 참고 신청 절차를 안내하는 과정에서 제 말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 말을 자르며 자기와 말 겹침이 생겼다며 어이없는 말을 하더군요.


상담사가 말 겹침이 있으면 안 되는 거 몰라?
어머 교육을 제대로 안 받았나 봐?
이봐! 교육받은 대로 제대로 해야지~

어이없는 그녀의 말에 되받아 치고 싶었지만 속으로 얼마나 민원인들한테 당했으면 악성 민원인들이 하는 짓을 똑같이 할까?

불쌍한 생각이 들더군요. 꾹 참고 안내를 다 마치고 나서 종료를 하고는 맘속에서 열불 천불이 났습니다. 똑같은 상담업무를 했던 사람인데 왜 그렇게 살까? 한편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그녀도 나처럼 상담업무를 보면서 악성 민원인들한테 많이 시달렸나 보구나! 그래서 그런 짓을 하는구나! 하고 안타까운 맘도 들더군요.


저처럼 상담업무를 하는 사람은 두 부류가 존재합니다. 제게 전화했던 그녀처럼 자기가 당했던 일들을 그대로 답습해 다른 상담원에게 똑같이 폭탄을 돌리는 부류와 내가 그리 당했으니 다른 상담원에겐 최대한 예의를 갖춰 상담하는 부류가 있답니다.


저는 전자의 경우의 사람을 만나면 인간으로서 불쌍한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정말 미성숙한 인간이고 사람 같지도 않은 생각마저 들죠.

마치 시집살이를 당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더 호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말처럼 꼭 같습니다. 씁쓸한 그녀와의 상담을 뒤로하며 인생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당한 일들을 똑같이 남에게 폭탄 돌리기를 하는 치사함이야말로 미성숙한 행태입니다.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그 존재 이유를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데에는 타인을 생각하는 소소한 배려가 있기 때문인 것이죠.


이전에 GS칼테스가 콜센터 가족들의 음성으로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을 했던 적이 있었죠.

사랑하는 우리 아내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해당 캠페인이 진행되었을 때 연결음 멘트를 듣고 상담하는 수많은 고객들이 상담사를 배려하며 상담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접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마음이음 연결음" 멘트를 듣고 난 후 연결된 고객들은 상담사에게 상담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상담사 역시 따뜻한 마음으로 응대할 수 있었다는 후일담이 있었죠.


수화기 너머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악성 민원은 사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늘 사소한 배려의 말로 훈훈한 향기를 전해오는 수많은 민원인들 덕에 저는 오늘도 수화기 너머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저는 그녀를 통해 인생을 깨닫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타인을 향한 소소한 배려가 세상을 따뜻하게 비춰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에선 늘 관계 속에 살아갑니다. 그 관계의 끈을 향기롭게 이끌어갈지 단절해 버릴지는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건 늘 타인에 대한 배려의 끈을 연결 지어 갈 때만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소소한 배려의 끈으로 마음을 잇는 수많은 배려 천사들 덕분에 오늘도 수화기 너머의 사람향기 나는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상담사 #상담이야기

#배려 #연결음 #멘트  #캠페인 #폭탄돌리기


매거진의 이전글 부끄러운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