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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Aug 07. 2020

부끄러운 고백

인생의 번역기를 다시 돌려보면서...

친절한 상담사와 마음 공감을 하는 상담사 사이에서 늘 고민을 합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친절한 상담사는 아닙니다.

상담사로서의 제 삶을 돌아보며 2년 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뒤늦은 후회 인지 모르지만 맘을 덜어내고 싶습니다. 그때의 일은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 되었답니다. 지금도 그때의 그 사건은 제가 상담하는 상담부스 안에 자리할 때마다 상담사로서의 저를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맘속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는 부끄러운 고백을 적어봅니다.

    


오후 3시쯤이 되어갈 무렵 20대의 한 청년이 전화를 했습니다. 방문했던 고용센터 담당자에 대한 불만 제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죠. 내용인즉 취업성공 패키지를 참가하기 위하여 본인의 거주지역 관할 고용센터를 방문했었고 이전에 참여한 이력이 있던 터라 참여 제한기간이기에 참여가 불가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해당 고용센터에서 참여 제한 기간이 있어 참여가 안된다는 말을 듣고는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담당자에게 물어봤지만 지금은 참여 불가 상태이니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하더군요. 담당자는 제한기간이 지난 후에 재방문하시라고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재차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담당자도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제한기간 이후에  방문하라며 차갑게 굴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 담당자의 불친절을 신고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불친절 신고는 상담센터에 접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죄송하다며 불친절 신고하는 사이트를 안내하고는 종료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맘이 속상했는지 계속 담당자의 불만 건에 대해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며 상담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처음 이야기할 땐 '참 속상했겠구나!' 싶었지만 계속 답도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슬슬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지금이야 청년이 참가할  수 있는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제도나 청년 디지털 일자리 제도, 청년 일경험 제도 등이 있어 취업성공 패키지가 안되면 이렇게 다른 제도가 있으니 이용해 보라고 대체 안내가 가능하지만 그땐 청년을 위한 제도가 취업성공 패키지 사업이나 내일 배움 카드제 외에는 딱히 안내해 줄 제도가 없었습니다.



불만을 제기하는 민원인 십중팔구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속상한 맘을 공감해주면 대개는 본인도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끊는데 그 청년의 푸념은 2시간째 이어지고 있었죠. 답을 줄 수도 없는 그 청년의 이야기가 도돌이표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머릿속엔 '답도 없는 얘기를 제발 그만 좀 하고 종료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답니다. 그의 이야기에 의무적으로 들어주고만 있다가 끝난 듯 느껴지면

 "그렇군요~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제가 도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했었죠. 마치 기계처럼 그도 했던 말 또 하고 저도 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공감의 맘은 1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퇴근 시간인 6시가 넘어서도 그는 통화를 종료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죠~ 6시 퇴근 시간에 동료들이 가고 없는 사무실에 저만 덩그러니 남아 답도 없는 얘기에 사무적인 반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얘기를 기계적으로만 듣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3시간 반가량을 시달리고 있을 즈음 소속 팀장인 상급자가 그제야 콜 청취를 하더군요. 그 청년은 모르겠지만 삼자 간 통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죠. 그렇게 6시 40분쯤 되었을까 미안하단 말과 함께 자신의 푸념을 장시간 들어줘서 고맙다며 종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딸칵~ 소리가 들리길래 당연히 그가 종료한 줄 알았던 저는 4시간가량을 시달렸다는 생각에

"아! 짜증 나~ 답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뭐야 정말!"


이라고 짜증 내면서 화를 표출했습니다. 그런데 아! 뿔! 사! 그가 종료했던 것이 아니라 저의 소속 팀장이 삼자로 듣고 있던 통화를 종료했기에 딸칵~ 소리가 들렸던 것이었죠. 제가 했던 말이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그에게 전해졌답니다. 그는 무섭게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내더군요.

하늘은 노래지고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이젠 끝이구나!


전화 상담은 상담사가 먼저 종료할 수 없기에 상대가 종료를 해야만 전화가 끊어집니다. 화가 나서 뭐라 하는 그에게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롯이 제 잘못이고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기에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당시  미안한 맘보다는 시달렸단 생각이 더 컸기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는 없었죠. 별다른 말을 전하지 못하는 저를 대신해 당시 소속 팀장이 전화기를 다시들어 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 해당 소속 팀장 김 ** 팀장입니다. 저희 상담사의 잘못을 대신 사과드립니다. 팀장으로서 이런 불찰이 있었던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장시간 통화로 선생님께서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지금부터는 팀장인 제가 상담드리겠습니다."

소속 팀장이 그와의 상담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업무 메신저로  헤드셋을 벗고 어서 퇴근하라고 지시를 했었죠. 그러나 저는 제 상담부스를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큰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팀장과 그 청년과의 통화가 마무리되길 기다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둘의 통화도 끝이 났고 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어서 퇴근하세요! 내일 얘기합시다"라며 제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등을 떠밀고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졌으니 얼른 집에 가라고 얘길 했죠. 


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후에 크나 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 청년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단순히 담당자에 대한 불만사항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죠. 이전에 참여를 했을 때 도움을 받았지만 취업이 되지 못했고 추가로 참여하여 더 도움을 받고 싶었을 텐데 제한기간 때문에 참여가 안된다고 했을 땐 부푼 마음이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그의 마음을 깊게 보지 못했던 저의 잘못된 생각정말로 후회스러웠습니다.  


인본주의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내담자 중심 상담에서 상담사의 기본 상담기법으로 진실성, 무조건적 긍정, 공감적 이해! 이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상담사로서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지에 대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봤습니다. 저는 그 청년과 상담하면서 진실하지 못했고, 그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랬으니 당연히 공감적 이해가 될 리 만무했던 것이죠.


그 청년은 팀장과의 통화 시 상담사 말에 버럭 화를 내서 미안하고 자신이 아무답도 없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상담을 해서 괴롭힌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자신도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해서 누구 하나쯤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진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연락했던 거라고.... 자기는 민원을 접수할 것도 아니니까 상담사 혼내지도 말고 사과 전화하지도 하지 말라며 종료했다더군요. 다음 날에 저는 시말서도 써야했고 상담사 CS교육도 다시 받아야 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는 오롯이 저의 잘못이었기에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제가 근무하는 상담센터에서는 업무 개선도 이루어졌습니다. 장시간 통화의 경우 20분이 넘어가면 상담사는 감정 휴게시간을 요청해 쓸 수 있도록 바뀌었고 소속 팀장은 15분 이상 장시간 통화의 경우 바로 삼자통화를 하며 상담사에게 피드백을 줘야 하는 것으로 개편이 되었답니다.  저는 그 청년 덕분에 얻은 게 있었지만 그는 저로 인해 큰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겠죠? 상처 받았을 그 청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사람처럼 무겁습니다. 이게 그 청년과 통화한 후 제게 내려진 벌이라면 벌이겠죠? 여전히 상당 부스에 앉을 때마다  제 마음엔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으니까요.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싶어 합니다. 청년 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요즘엔 취업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려운 때입니다.
어쩌면 그때의 제가 칼 로저스의 인본주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상담하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적극적인 공감의 맘으로 진실성을 다해 긍정의 언어로 상담해줄 수 있었겠죠?
그에게 상처를 남겼던 그 일이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고 있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매일매일 상담부스에서 헤드셋을 장착할 때면 수화기 건너편에서 전해져 오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에 밝게 화답합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적극적인 경청의 자세로 공감적 이해를 전하는 상담사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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