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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May 02. 2017

한국 사회에서 '다르다'의 의미

우리와 다른 것을 참을 수 없는 세상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난 남들과 다르다'란 생각을 가지고 커온 것 같다.


우선 이름이 특이하다. 살면서 (오프라인에서) '영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실제로 마주친 적이 없고, '장영학'은 더더욱 없다. 그리고 나는 키는 꽤 큰 편인데 머리가 매우 작다. 자랑은 아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걸로 엄청 놀림을 당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 별명 중 하나가 '십등신'이었는데 발음을 잘해야 한다. 원래 특이한 캐릭터였는데 6학년부터 잠시 미국에 살다온 것까지 더해져(그 당시 중학생 중에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꽤 특이한 경험+성격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 인생의 모토 중 하나는 '희소성'이다. 왠지 길거리에서 나랑 똑같은 옷 입은 사람 발견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나는 내 커리어를 생각할 때도 항상 '나 같은 사람이 별로 없을듯한' 길을 찾는다. 이전 직장들에서도 항상 나는 그 회사의 유일한 우리 학교 출신이었으며, 나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난 '남들과 다르다'라는 말을 듣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지금은 그래도 나 같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곳을 다니고 있지만, 대신 나는 이제 브런치에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보고 싶은 이유도 '조직문화에 대한 책을 쓴 공대생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한번 돼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분들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실히 손가락에 꼽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다르다'는 묘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나는 전 직장에서 중국 주재원 생활을 하다 퇴사했다. 대부분 회사는 한 법인에 주재원이 그리 많지 않지만, 우리 회사는 좀 특이하게 중국 주재원이 몇 '백'명 단위로 있었고, 지방의 영업지사들까지 해서 10여 곳의 중국 도시에 흩어져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상해). 나는 계속 상해에서만 근무했었는데, 퇴사를 고민하고 있던 시점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도시에서 근무하시다 상해 본사로 오신지 얼마 안 된 어떤 분과 마주쳤다. 그분과 나는 서로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이고, 몇 년 전 업무상 두세 번 통화한 적이 있으며 실제 면대면으로 말을 나눈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서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그분이 내뱉은 한마디가 꽤 충격이었다.


아직도 버티고 있네요. 금방 나갈 줄 알았는데.


그분이 무슨 의미 혹은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것이 그 회사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른 사람. 그래서 우리처럼 바뀌든지, 아니면 못 버티고 회사를 나갈 사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며칠 후 회사를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조직문화와 다양성의 관계


우리는 사실 다른 것에 익숙지 않다. 단일 민족임을 강조하며, 조금이라도 다른 스펙이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겐 지극히 배타적이다. 아예 '조금'이 아니라 '꽤 많이' 다른 사람들 - 외국인, 혼혈, 장애인, 성소수자 등 - 이 나타나면 적대시하다시피 한다. 혹은 자기가 도망치거나. 사실 냉정히 바라보면 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가 우리나라이고, 같은 국민들끼리도 온갖 종류의 편 가르기가 몸에 배어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그런데 조직문화와 다양성은 어떤 관계일까?


조직문화는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가치관이나 행동 규범들을 의미한다. 즉,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교집합'이 조직문화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성립하는 명제가 한 가지 있는데, 조직문화(교집합)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면 조직원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에 동의한다면 비본질적인 것에는 개개인의 자유, 혹은 다름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데, 본질이 약하거나 애매하게 정의되어 있으면 모든 면에서 (기존 멤버와)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된다. 웬만한 회사들마다 경영진엔 '제2의 회장님', '회장님 판박이' 같은 경영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윗분들과 '모든 면에서 비슷할수록' 빠른 승진이 보장되는 것이 예전의, 어쩌면 지금도 우리나라 조직들의 모습이다.


아직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의사결정의 속도와 실행의 일사불란함을 위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놓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규모가 꽤 커져버린 중견/대기업에서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비슷한 사람만 존재한다면 그 회사가 과연 건강한 회사일까? 


이런 회사들이 비슷한 사람들만 찾으면서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짐 콜린스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 나오는 '사교(私敎) 같은 기업문화(Cult-like Cultures)'다. 하지만 단언컨대 짐 콜린스가 말하는 기업문화는 다양성이 기본에 깔려 있는 강력한 기업문화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책은 미국인이 미국 기업들을 연구하고 쓴 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릴 적부터 나와 다른 국적,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놀고 배우고 자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장애인들도 웬만하면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그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강력한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라고 해도 미국 기업인 이상 다양성에 대한 배려는 기본적으로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


기업문화가 강력하다는 것을 모두가 비슷하다는 것과 착각하면 조직에 다양성이 사라지게 된다. 위 그림에서 '같아야 하는 부분'을 엄청 크게 그려놓고 '달라도 되는 부분'을 매우 작게 그린다고 그게 강력한 기업문화란 뜻은 아니다. 이런 조직은 단순히 인력 구성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조금 지나면 아예 '다른 의견' 자체가 사라진다.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곧 다른 사람으로 취급되고, 그런 사람은 금세 조직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해묵은 떡밥 공채 vs 경력직


경력직은 공채와 다르다. 당연하다. 공채와 똑같은 사람을 굳이 외부에서 데려올 필요가 없다. 그래서 여러 모로 경력직은 편 가르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우리나라 조직에서 경력직을 대하는 자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력직이 차별 없이 조직에 녹아들어 공채 출신과 똑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모든 인사팀은 경력직을 뽑을 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문제는 조직의 기존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것이다. 인사팀이야 경력직을 뽑아놓고 그 사람이 금방 퇴사하면 자신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니 그렇다지만, 기존 멤버들은 어디서 굴러온 돌이 불편할 뿐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뭔가 자신보다 나은 면이 있어 보이면(그러니까 뽑았겠지) 금세 벽을 치고 그 사람을 조직에서 고사시킬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애초에 이러한 자세는 말이 안 되는 것이, 다른 background를 가진 사람을 뽑아놓고 공채와 같아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모순된 태도다. 회사가 성장하다 보니 관리자 역할을 해줄 사람이 모자란데, 공채를 키워다 쓰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경력이 충분히 있되 공채와 충분히 비슷한 사람을 뽑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날로 먹는 심보(?)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과정은 bipass 하면서 이미 성장한 (그러면서 공채 출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겠다는 것인데, 행운을 빈다.


경력직은 회사의 성장보다 직원들의 성장 속도가 느릴 때 쓰는 땜빵(?)용 지름길이 아니다. 경력직은 많은 면에서 기존 직원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채용 과정 중에 조직문화(공통분모) 관련 부분을 충분히 검증하였다면, 나머지 부분에서의 차이는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경력직이 모든 면에서 공채化 되길 원한다면 결국 그 회사는 조금의 다름도 인정하지 못하는 조직이다.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It doesn't make sense to hire smart people and tell them what to do; we hire smart people so they can tell us what to do.


경력직에게 우리 회사의 방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직이 가진 다른 경험과 지식을 조직에 녹여내는 melting pot이 되어야 뽑은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러려면 기존의 방식, 기존의 생각과 다른 면이 있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먼저 필요하다. 경력직의 다른 면을 어떻게 회사에서 받아낼지 준비가 안된 조직이라면 여러 사람 인생 망치지 말고 경력직을 뽑지 말라. 아니면 적어도 채용과정에서 명확히 밝혀라. 완전히 우리와 똑같아질 사람을 찾고 있다고.



두 번째 자세는 대놓고 경력직을 '용병' 내지는 '자극제' 용으로 쓰는 것이다. 주로 임원이나 조만간 임원을 목표로 할 수 있는 급의 경력직이 여기에 해당하지 싶다. 신사업처럼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영역이 있는데 공채들은 경험이 부족하다면 경력직을 떠올리게 된다. 혹은 경력직을 뽑음으로써 '너 자리도 경력직도 대체될 수 있어'라는 신호를 기존 조직에 주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자극을 주기 위해' 이 경력직이 기존 조직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인정해줄 수 있다. 어디까지나 당분간은 말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난 이후에 이 경력직을 어디에 쓸까이다. 입사한 지 2~3년이 지나서도 계속 이 사람이 기존 조직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면? 우리나라 조직에서는 곧 '아직도 적응을 못했다' '아직도 자기가 ~~(이전 회사) 사람인 줄 안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찰리 브라운님이 쓰신 글 중에 '토박이와의 경쟁은 무조건 피해라'라는 글이 공감이 된다. 제목 그대로 경력직은 절대로 기존 조직 사람들과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면 안 된다는 조언인데, 그 이유 중 '경력직은 게임의 룰을 모른다'와 '경영진이 경력직의 승리를 바라지 않을 수 있다'가 있다. 경력직의 '다름'은 금세 게임의 룰에서 '반칙'이나 '감점'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혹시라도 경력직이 '다르면서도' 좋은 성과를 내면, 기존 경영진들은 바보가 된다. 그래서 조직은 곧 모든 면에서 비슷해진다. '다르면 안 된다'가 우리 사회의 거대한 게임의 규칙이니까.






조선일보 한현우 님(주말뉴스부장)이 쓰신 '우리는 젊을 때부터 꼰대였다'라는 글을 보았다. 그분이 정의한 '꼰대'는 다른 사람과 공감(empathy)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상당수 조직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꼰대'들의 모임이다. 


멀쩡한 한국인끼리도 연대/고대를 나눠놓고, 영남/호남끼리 따로 모인다. 소위 말하는 '스펙'에서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으면 저 사람은 '다르다'며 뒤에서 수군거린다.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역감정이 별로 없다는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데, 결국 편 가르기의 대상이 지역에서 연령대나 성별 같은 다른 기준으로 넘어갔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역감정 자체는 줄었을지 모르나 풍선 한쪽을 누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평범한 한국사람들끼리도 그런데, 만약 외국인 혹은 혼혈이거나, 조금이라도 장애가 있으면 아예 낄 자리가 없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다른 조건들이 다 비슷하더라도 뭐하나 의견만 달라도 잘 참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당신의 조직은 어떤가? 당신의 조직에는 소수자(minority)에 속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장애인 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여성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 부장 이상으로 보면 어떤가?


당신 스스로는 어떤가? 만약 주말에 길거리를 지나다 어떤 부부가 유모차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보았는데 부부 중 한 명은 한국인, 한 명은 외국인이었다고 하자. 그 외국인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고 다른 스펙들이 충분하다면 당신의 회사에 뽑을 수 있는가? 그럼 만약 그 유모차의 아이가 자라서 당신의 아들/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심지어 미국에 살다왔으면서) 자신 있게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처럼 '차별금지법' 같은 것이 생기면 좀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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