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 소프트랜딩 하기 (2) ...이길 확률 거의 없다
최근 경력직으로 입사한 회사에 실적이 좀 많이 부진한 부서가 있는데, 이 부서의 전략을 새로 수립하라는 지시를 경영진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필요하다면 기존 조직장으로부터 팀원들을 받아서 TFT를 구성하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기존 조직장과 경쟁하는 구도가 되어서 좀 난감한데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거 정말 난감하시겠는데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경력직이 입사하자마자 기존 직원과 경쟁을 시키는 회사가 있습니다.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 중에 그런 경우가 많은데요. 기존 사업부의 조직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력직에게 TFT를 만들어 사업부 전략을 수립하라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죠. 심지어 기존 조직장의 권한이나 조직을 일부 떼어내 한시적으로 경력직에게 주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얘기하죠. "네 뜻을 한 번 마음껏 펼쳐 봐라." '메기 효과'를 극단적으로 적용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기 효과(catfish effect)
미꾸라지 수족관에 메기 한 마리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은 도망 다니느라 튼실하게 자란다는 이론.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역사는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처음 사용.
삼성에서 '경력직을 채용하면 기존 직원들이 자극받아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경영이론으로 발전시킴.
하지만 경력직 입장에서는 입사하자마자 이런 식의 경쟁구도가 형성된다면 당황스럽기 그지없죠. 소프트랜딩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 판에 이런 식으로 하드랜딩을 시키면 1~2년 내에 퇴사할, 아니 '퇴사당할' 가능성이 높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경력직을 활용하는 회사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경력직은 한낱 메기에 불과하니까요.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경쟁구도가 형성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입니다. 왜냐? 이길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존 직원과의 경쟁구도는 무조건 피해라.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
1. 일대일의 싸움이 아닌 일대다의 싸움이다
만약 경력직과 토박이 조직장이 경쟁하게 되면 다른 직원들은 누구 편을 들까요? 아마 다른 사업부 조직장들은 거의 대부분 토박이를 심정적으로 동조할 겁니다. 바로 어제까지 한 솥밥을 먹던 동료였으니까요. 그리고 경력직들이 토박이 조직장의 자리를 하나씩 꿰차기 시작하면 모든 사업부 조직장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경력직의 승리를 바라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싸움은 일대일이 아닌 일대다의 싸움이 되겠죠.
2. 경력직을 따르는 부하직원은 없다고 보면 된다
사업부의 팀원들은 현재 조직장이 싫든 좋든 그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팀원들로 TFT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연말 평가권과 인사권은 토박이 조직장에게 있으니까요. 그걸 아는 직원들이 경력직의 말을 들을 리 만무하죠.
기존 직원들은 경력직의 말을 듣지 않는다.
평가권, 인사권이 토박이 조직장에게 있으니까.
기존 사업부 조직의 일부를 떼어서 경력직에게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확정된 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직원들도 눈치가 있으니까요. 토박이 조직장과 경력직 간 경쟁이 벌어졌고 여기서 이기는 사람에게 조직이 넘어갈 것이란 걸 모르는 직원은 없습니다. 어차피 직원들은 이길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편을 들 수밖에 없겠죠. 이길 확률이 반반이라면 토박이 조직장의 편을 드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3. 경력직은 토박이만큼 인맥이 없다
토박이 조직장은 경력직과의 경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안 보이는 곳에서 경력직을 '디스'하고 다닐 겁니다. 그것도 아주 집요하게. 식사 자리에서. 술자리에서. 보고 자리에서.
토박이만큼 인맥이 없는 경력직은 뭐, 그냥 당해야죠. 방법이 없죠. 아니면, 매일 술 먹든가. 술값까지 모두 부담하면서요.
4. 경력직은 토박이만큼 '게임의 룰'을 모른다
다음은 일종의 'What if~' 즉, '만약의 상황'에 불과합니다.
경력직이 정말 운 좋게도 토박이 조직장이 수치를 조작해서 허위 보고를 하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경력직은 그걸 경영진에 일러 바쳤...아니, 보고 드렸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회사에서는 조직장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수치를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경력직은 동료의 약점을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라는 악명을 얻게 됐고 모든 조직장들로부터 왕따가 됐습니다.
이번에는 토박이 조직장이 거래처로부터 뇌물을 받는 사실을 발견해서 경영진에 일러 바쳤...아니, 보고 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알고 보니 그 정도 비리는 이 회사에서 비일비재해서 '애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걸 터뜨린 경력직이 출세를 위해서라면 동료의 허물을 들추는 것도 서슴지 않는 비열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위의 가정에서처럼 경력직이 악수를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경력직이 그 회사의 '게임의 룰'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느 선까지 허용이 되고 어느 선까지 반칙으로 인정되는 지를 몰랐기 때문에 자기 딴에는 '한 건' 터뜨렸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결국은 악수를 둔 셈이죠.
5. 어쩌면 경영진이 경력직의 승리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메기 효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메기 효과에서 메기의 역할은 미꾸라지들을 자극해서 더 열심히 헤엄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다죠. 그런데 메기가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너무 나가서 미꾸라지들을 잡아먹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자기가 키운 미꾸라지들을 메기가 잡아먹게끔 놔둘 주인은 아마 없겠죠.
메기가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너무 나가서 미꾸라지들을 잡아먹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경력직을 채용해서 기존 직원들과 경쟁을 시킨 경영진의 의도는 앞서 말씀드린 '메기 효과'처럼 기존 조직장들에게 자극을 주려는 것에 불과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경력직에게 그 조직을 넘기려고 한 게 아니라.
그런데 경력직이 앞의 메기처럼 주제 파악도 못하고 그 조직을 접수할 생각으로 토박이 조직장의 약점을 들춰내기 시작하면... 그런 과정에서 회사의 숨기고 싶은 측면까지 까발리기 시작하면... 경영진은 당황하겠죠. 경력직은 어느 정도 임무를 완수했다고 판단되는 순간 '토사구팽'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여기서는 메기 매운탕이 되겠네요.
경력직은 토박이와 경쟁을 해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든 경쟁을 피하십시오. '그 일 말고 다른 더 중요한 일을 해야 된다'라고 경영진을 설득하십시오. 회사의 시급한 이슈를 들고 경영진을 찾아가십시오. 아니면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어필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하게 된다면, 뭐 어쩔 수 없습니다. 특단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토박이 조직장과 '쇼부'치십시오. 그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당신 조직에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 실행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 조직을 턴어라운드 시켜야 한다. 그러면 나는 이 회사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맡아서 할 수 있다. 결국 당신도 살고 나도 살기 위해서는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당신 조직을 살리는 길 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미련 없이 다른 일을 하겠다. 나를 믿어 달라."라고
그것마저 안된다면? 경영진도 설득하지 못하고 토박이 조직장과 쇼부치는 것도 실패했다면? 그럼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네요. 더 늦기 전에 이직 준비하십시오. 안 그러면 나중에 정말 더러운 꼴 당합니다. 그런 경우 많이 봤습니다.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1.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 중에는 경력직과 토박이를 경쟁시키는 회사가 많다.
2. 만약 입사하자마자 이런 경쟁구도가 형성된다면 무조건 피해라. 이길 확률 거의 없다.
3.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토박이와 '쇼부'쳐서 한편이 되거나, 그것마저 어려우면 더 늦기 전에 다른 직장을 알아봐라.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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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소프트랜딩 하기 시리즈
(1) 입사 초기에 성과 내려고 하지 말고, 먼저 신뢰를 얻은 뒤 성과에 도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