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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 이야기
by 장영학 Oct 15. 2017

리더가 책임을 진다는 것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우리는 조직에서 '책임'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으며 살아간다. 의사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는 모습도 가끔씩 본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안 좋은 평가를 받고 보너스가 줄어들며, 문제를 일으켰다면 징계를 받고 감봉, 정직, 심할 경우 강등도 당할 수 있다. 물론 직장인이 두려워하는 가장 큰 징계는 해고겠지만.


그런데 여럿이 협업하는 조직에서는 누구의 책임인지 명확하게 따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더 애매한 경우는 시킨 사람(혹은 결정한 사람)과 실행한 사람 중에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하는 문제이다.


예전 직장은 경영진에 마이크로매니저들이 수두룩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고가 많았고, 중간관리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얽힌 예산의 크기가 조금만 커져도 최고경영진까지 거쳐야 의사결정이 났다. 즉, 그룹의 어지간한 의사결정은 다 최고경영진이 내린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 상황이 나빠졌고, 실적이 꺾이기 시작했다. 성장이 둔화되면 그동안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많은 문제들이 진짜 문제가 된다. 그러면서 과거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하나씩 표면 위로 드러난다. 진출하면 안 되는데 진출한 사업, 잘못 잡은 기존 사업의 전략방향, 사면 안되는데 산 회사나 부동산, 적합하지 않은 자리에 세워진 리더 등. 


그리고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해 직원들은 책임을 따지기 시작한다. 결정을 잘못한 사람들은 징계를 받는다. 그런데 결정을 내린 사람이 직원이 아니라 회장님(=오너)이라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오너는 어차피 월급이 문제가 아니니 감봉도 의미가 없다. 정직이든, 강등이든 마찬가지이다. 오너가 자신을 해고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경영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본인이 오너이기 때문에 언제나 물릴 수 있는 이야기이고, 공식적인 직책이 없어도 어차피 주요 경영진들이 다 자기가 세운 사람들이므로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책임질 일만 없어질 뿐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적지 못했다. 나도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늘 답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 생각이 하나는 있어야 뭐라도 글을 쓰지 않겠나. 




이 문제를 두고 자기 사업을 하는 친한 형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 사람은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회사 상황이 그렇게 되었으면 이미 자기 지분의 가치는 수십, 수백억이 날아갔을 텐데 그 심정은 오너가 아니면 모르는 것이라고, 직원들이 뭐라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완전히 납득하진 못했다. 자산이 줄어서 자기 속이 쓰린 것은 알겠는데 그 사람이 잘못 내린 결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들, 비상경영이란 명목으로 월급이 깎이고 자리를 위협받는 직원들에게는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




그 당시 나는 조직문화를 진단하는 워크숍 결과물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인사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자료들을 집에 가져가 몇 번을 읽으면서, 마치 그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한탄(?)이 다 나에게 전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거기엔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고도 책임지지 않는 리더들, 대책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쪼기만 하는 리더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을 따지다 보면 결국 화살은 오너와 몇몇 최고경영진들로 집중되었다.


일반 직원이 아니라 리더, 그것도 오너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중간한 임원은 직원보다도 자르고 교체하기 쉽지만, 창업 초창기부터 함께한 핵심 경영진들은 자른다고 쉽게 외부에서 대체 가능한 사람들이 아닌 것엔 동의한다. 하물며 오너가 문제였다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도 대체 저 사람이 무엇을 해야 책임을 지는 것이 될지 떠올리기 쉽지 않다.




다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결국 듣고 싶었던 것은 '내가 잘못했다'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그때 의사결정을 잘못 내려서 회사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보너스도 줄어들게 되었고, 인원을 감축해야 할지도 모른다, 복리후생도 당분간은 줄여야 할 것 같다, 다 경영진들이 잘못한 것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힘을 합쳐서 이 상황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뭐 그런 말들... 


아마 그때 경영진들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으면 회사 분위기가 그 지경까지 가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위계적인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리더가 자신의 약점이나 잘못을 인정하면 권위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 우리 회사도 리더들은 절대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는 제대로 지시했는데 실행한 사람들이 제대로 못했다고 탓하거나,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목표를 달성 못한 사람들을 탓하거나, 심지어 자기가 결정을 제대로 내릴 수 없도록 잘못 보고한 실무자들을 탓했다. 수많은 대책 회의를 열고, 실무자들에게 윽박질렀다.




리더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감봉이건, 정직이건, 강등이건, 해고 건 그다음 이야기다. 자신에게 오는 책임의 화살을 피하지 말고 일단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면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리더들은 사람들이 따른다. 반대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리더는 무너지고 무릎 꿇는 꼴을 보고야 만다.



이제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이후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리더를 수도 없이 보고 있다.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같은 사람들부터 최근엔 남 탓만 하는 축구협회까지. 언제쯤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들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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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태니지먼트 직업출간작가
강점 기반의 코칭/HR 교육 플랫폼 태니지먼트 대표. 가로수길 북까페 디파지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연/기고 문의 : younghak.j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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