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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Dec 09. 2017

리더에게 필요한 심리적 안정감

그들은 항상 외롭다

심리적 안정감. 성공적인 Google 팀의 다섯 가지 요소 중 가장 근본적인 전제조건. 아마 이 브런치를 구독하시는 분이라면 한번쯤은 심리적 안정감을 다룬 글을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들을 때 심리적으로 이입된다. 당장 연말 인사평가가 걱정되기도 하고, 얼마 전 자의반 타의반 협력사로 옮겨간 선배가 떠오르기도 하며, 늘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상무님이 생각나기도 한다. 조직에는 위아래가 있고, 그렇게 우리는 보통 약자의 입장에서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윗사람은 과연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불안하다. 그리고 외롭다. 다른 사람이 대신 고민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리더를 불안하게 할까?



조직을 변화시켜야 할 때 조직원들이 따라와 줄 것인가?


리더는 말 그대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다. 어떤 경우에는 지금껏 굴러오던 궤도를 잘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조직에 변화를 줘야 할 때가 있다.


컨설팅 시절에 들었던 일화다. 고객사의 회장이 아버지로부터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 지 몇 년 안되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선대 회장 시절부터 임원이었던 그룹 경영진들이 공공연하게 "회장님이 설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하는데..." 같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조직에서 직급은 다 이면서 다가 아니다. 리더가 무언가를 변화시키려 해도 조직원들이 그것을 은근히 방해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대놓고 방해하는 방법도 많다)


직급으로 찍어 눌러서는 진정한 체질 개선을 이룰 수 없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지만, '혁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저 상사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다 해주기 싫은 부하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을 얼마 전 읽었다. 기대효과가 명확하고 심지어 그 방향성에 동의가 되더라도 그냥 발제자가 싫어서 온갖 핑계를 대고 동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명시적인 권력(직급)과 암묵적인 권력(조직의 관습,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이 충돌할 경우 후자가 이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리더 입장에서는 '나보다 직급이 낮은 것들이 왜 말을 안 듣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아니라 조직의 관성과 싸우고 있던 것이다.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 할까, 들어야 할 말을 해줘야 할까?


조직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관계는 리더십과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직 내에 갈등이 생기면 구성원 모두가 영향을 받고, 무엇보다 리더가 가장 골치 아파진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갈등을 피하려고 하는 리더도 있다.


어댑티브 리더십에서는 이를 '방안의 코끼리'라 표현한다. 방안에 코끼리가 있으면 어떨까? 당연히 좁아터지고 불편하다. 물건을 놓을 자리도 없고, 사람이 쉴 자리도 없어진다. 그런데 그 코끼리를 방에서 어떻게 내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고, 모두가 그 코끼리 때문에 불편해 죽겠는데 코끼리 이야기는 안 하고 방 안에 다른 짐들을 어떻게 줄여서 좀 더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어떤 중간 관리자가 심각한 마이크로매니저 성향이 있고, 그 사람 때문에 이미 팀의 여럿이 퇴사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다면 그 관리자가 코끼리다.


우리 회사가 지금 돈을 못 벌고 있고, 앞으로도 어떻게 벌지 비즈니스 모델이 불명확하고, 투자받은 돈도 곧 바닥이 보이는데 저번 주에 출시한 새로운 앱 기능을 놓고 그걸 어떻게 개선할지에만 몰두해 있다면 비즈니스 모델이 코끼리다.


코끼리 이야기는 리더도, 조직원도 하기 싫다. 그러다 보니 코끼리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조직의 암묵적인 규칙이 된다. 그렇게 지내다 누군가 코끼리의 존재를 언급하면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은 갑자기 당황하면서 언급한 사람을 비난하고(여기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돼), 리더조차도 코끼리 이야기를 하기 어렵게 된다.



조직이 아닌 개인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과와 팀워크에 문제를 일으키는 조직원의 단점이 보이더라도 분위기를 해치기 싫어서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이건 직급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의 문제이다. 큰 사고를 치지 않은 이상 그러려니 하고 방치한다.



방 안의 코끼리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물건들을 아무리 옮겨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조직원들의 단점을 내버려두는 것은 그만큼 팀의 성과를 희생한다는 뜻이며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리더로서의 직무유기이다.


리더는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리더는 신뢰를 관리해야지 인기를 관리해서는 안된다.

* 이 말은 '어댑티브 리더십'을 인용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밝혀도 괜찮을까?


리더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할까?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자기 부서의 일이라도 담당하는 업무가 늘어날수록 세세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기술이 워낙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위로 올라갈수록 실무진에 비해 디테일한 지식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리더 입장에서 자기가 부하직원보다 모른다는 사실을 밝히기 어려울 수 있다. 부하들에게 무시당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더가 잘 모르는 주제를 여기저기서 들은 단어들을 이어 붙여서 아는 척 이야기한다면 부하들은 뻔히 안다. 그럼 부하들은 앞에서는 네네 그렇습니다 하겠지만 속으로 리더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리더를 조종한다. 리더 입장에서는 적당히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싶겠지만 사실 부하 입장에서는 리더의 지식수준이 어디인지 파악한 것이다.


배움엔 높고 낮음이 없다. 그리고 배움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부하 말만 듣고 의사결정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부하들에게 제대로 배운 상태에서 결정하는 것이 조직에 이로울 것이다.



실무 지식을 잘 모르는 대신 회사 정보를 쥐고 있으려 하는 리더도 있다. '내가 기술은 잘 모르지만 회사 내부의 정보들을 쥐고 있으니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같은 심보인데, 이런 회사 내부의 정보(일의 맥락)가 실무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경우가 많다.


리더가 자신의 권위를 위해 정보를 담보로 잡고 있는 경우인데, 잘 생각해보면 리더는 맥락이 있는 대신 실무 지식이 없고, 실무자는 지식이 있는 대신 맥락이 없다. 그 팀의 성과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해도 괜찮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이전 글 '리더가 책임을 진다는 것'에서 이미 언급했다. 무결점의 사람만이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없다. 잘못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서 배우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면 부하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까 봐 두려울 수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다고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인정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누구 잘못인지 알고 있다.



훗날 자신을 대체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키워줘야 할까?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미래의 위협이 될만한 인재를 미리 싹을 자르는 사람들도 있다.


십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래프가 하나 있다. 이전에 모 그룹을 컨설팅하면서 그린 그래프인데, 그룹 임원들이 임원을 몇 년 동안 했는지를 히스토그램처럼 그린 그래프였다. 얼핏 생각하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일 것 같지만 실제론 임원 3년 차 이상 구간부터 거대한 절벽이 있고 10년 차 이상에 갑자기 몇 명이 나타난다. 10년 차 이상의 사장단들이 잠재적인 경쟁자 싹을 자른 것이다.


이건 모든 사람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데서 보람과 희열을 찾는 부류도 있지만, 그 사람이 내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리더의 역할 중 하나는 팀원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원과 경쟁을 해서는 안된다. 리더가 승진하고 더 높은 직책을 맡으면서 자기 자리를 자신이 성장시킨 팀원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마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은 조직 차원에서도 제도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후계자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적절한 경험을 쌓고 코칭을 받고 있는지 관리하며 그것을 인사 시스템에 반영한다면 자연스레 팀원들을 키우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부하 직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면 부하 직원들이 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 자체가 불안 요소는 아니다. 사고라도 치면 모를까.


다만 조직의 분위기에 따라 부하 직원이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깨지는 경우가 있다. 마치 직원 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처럼 찍히는 것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상사에게 먼저 보고하지 않고 상사의 상사와 이야기하는 것이 철저하게 금지된다. 그 자리에서 상사가 몰랐던 이야기가 나오면 상사가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조직의 위계질서 상 그래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보가 원활하게 돌지 않고 조직 간 정보의 사일로가 생기는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조직은 점점 마이크로매니저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하직원이 뭐 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알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니 모든 관리자들이 부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느라 하루를 다 보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실무진이 신경 써야 할 일이 있고, 리더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다. 중요한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것, 그리고 부하직원들을 키워주는 것이 리더의 과업이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은 리더의 핵심 과업이 아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자기 자리와 조직 전체를 더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리더는 혼자라는 느낌에 빠질 수 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혼자가 될 수도 있고, 조직원들이 당신의 짐을 나누어줄 수도 있다.


'나는 혼자다', '조직에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정말 아무도 당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조직의 일원이며 조직원들이 나와 함께 고민해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정말 따라와 줄 것이다.


리더가 불안하면 조직 전체가 불안에 빠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때에, 마음에도 안정을 갖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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