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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Apr 13. 2018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북 리뷰를 빙자한 생각 정리

읽은 모든 책을 리뷰하진 않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솔직히 읽은 책들이 모두 인상 깊은 건 아니니까요. 나름 추천받거나 주변에서 평이 좋은 책들만 골라 읽는데 사람마다 취향 차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으면서 꼭 리뷰하고 싶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거의 15년 전에 읽어서 내용도 기억이 안 나지만(심지어 제목도), 이 책은 유난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읽으면서 간간히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 두고 싶었거든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고 되어있지만, 저기서 '소설가'라는 단어를 뭐든지 자기 직업으로 대체해도 대부분은 유효할 거라 봅니다. 그러니까, 제목에서 방점은 직업에 찍혀야 합니다. 직업으로서의          . 물론 저는 점점 글을 쓰는 삶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간 면이 크겠지만.


어떤 분야에서 프로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덤덤하게 읊는달까. 소설가라는 양반들이 얼마나 희한한 삶을 사는지 궁금했다면 '이게 뭐야' 싶은 내용이죠. 



히로시마의 선발 투수는 분명 다카하시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쿠르트의 선발은 야스다였습니다. 1회 말, 다카하시가 제 1구를 던지자 힐턴은 그것을 좌중간에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만들었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그때의 감각을 나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때마침 내 손안에 떨어졌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아무튼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顯現'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데이브 힐턴이 톱 타자로 진구 구장에서 아름답고 날카로운 2루타를 날린 그 순간에.


제가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때가 생각났습니다. 어쩌다 공대생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예전에도 한번 추상적으로 쓴 적이 있는데,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정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요.


제게 처음 브런치란 곳을 알려준 사람은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대학 동기이자 8퍼센트 CTO 이호성입니다. 저는 졸업하자마자 전공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서 (게다가 중국에 지내는 동안 SNS를 안 해서) 연락을 안 하고 지냈는데, 우연히 브런치 글을 보게 되면서 '나랑 같은 과인데 글 쓰는 재주가 있네'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도 나중에 글을 써봐야지 생각은 했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쓸까, 내가 쓰면 누가 읽어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럼 어쩌다 조직문화와 리더십 관련된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것도 어느 정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원래 컨설턴트로 경력을 시작해서 조직문화에 약간의 관심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임원이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 사이 안 좋고, 뭐 그런 거부터 시작해서 여러 회사를 떠돌다 보니 자연스레 회사의 분위기를 관찰하게 되었죠. 그러다 2015년 여름에 중국 이랜드의 조직문화 진단 결과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게 저한테는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큰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트리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2016년 여름에 KBS 스페셜에서 '사람에 집중하라'라는 편이 회사에서 이슈가 되어서, CHO님이 제게 꼭 보라고 추천해 주셨습니다. 프로그램에서 넥스트점프와 올세인츠 두 회사를 소개했는데, 사람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올세인츠가 여러 기술을 패션 매장/운영에 접목한 사례들이 나왔거든요. 당시 저는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들을 중국 이랜드에 적용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어서, 그 프로그램을 꼭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뭐 결론적으로 보긴 봤는데, 엉뚱하게 저는 그 프로그램에서 스치듯 소개한 어떤 책 한 권에 꽂혔습니다. 바로 <An Everyone Culture>. 제겐 애증의 책이죠. 제 브런치 첫 글의 소재이자, 출간도 못할 번역 하느라 시간만 날려버린 책입니다. 아무튼 그 해 여름 전 심한 기관지염에 걸려서 한국에 와있는 일주일 동안 장모님 댁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저 책을 읽고 점심까지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기침과 가래가 너무 심해서 정말 졸려서 죽을 정도가 되기 전엔 못 잤거든요. 읽으면서 아 이런 회사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이 책에 나온 개념들을 한국의 회사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글을 쓰게 되면 조직문화라는 주제로 써야겠다 생각했죠. 미친 듯이 콜록거리면서.


2016년 10월쯤에 조직문화 주제로 브런치에 첫 글을 씁니다. 역시나 주변 지인 몇 분들 외에는 거의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님 강연을 듣고 와서 브랜딩에 대한 글을 하나 썼는데 처음으로 꽤 높은 반응이 나왔습니다. 브런치 주제를 마케팅으로 바꿀까 잠깐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브랜딩 이야기' 매거진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나 다운' 글을 계속 쓰기로 했고, 그 뒤로 어찌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네요. (여기는 어디?) 





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최근에도 책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느꼈습니다. 보통 회사에서 6시 반~7시 정도에 퇴근하는데, 그럼 일단 회사 근처 커피숍에 가서 9시까지 글을 씁니다. (바로 집에 가면 길이 막힙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아이가 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10시 반~11시부터 두 시간 정도 글을 씁니다.


저는 '모든 것이 되는 법'이 이야기하는 multipotentialite입니다.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찝쩍대기를 좋아했는데, 사실 게임과 숙제 외엔 어느 하나도 이렇게 밤새워가며 자발적으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번에 퍼블리 리포트 원고를 쓰며, 그리고 이번에 책 원고를 마무리하며 생각했습니다. 1)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2)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긴 하나보다.


참고로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회식자리엔 꼭 끝까지 남았습니다. 그리고 누가 보면 저도 술을 마신 것처럼 사람들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술을 몇 잔 마셔야 용기가 나는 듯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됩니다. 어쩌면 그래서 제가 솔직한 조직문화에 더 민감한지도 모르겠군요. '술을 마시지 않지만 평소에도 취해있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는데, 사실 그건 절반쯤은 팩트입니다. 딱 절반쯤.




하지만 그 작품을 써낸 시점에는 틀림없이 그보다 더 잘 쓰는 건 나로서는 못 했을 것이다, 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시점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쏟아붓고 싶은 만큼 긴 시간을 쏟아부었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입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총력전'을 온 힘을 다해 치른 것입니다. 그러한 '모조리 쏟아부었다'는 실감이 지금도 내게 남아 있습니다. (중략)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때에 쓰고 싶은 만큼 썼습니다. 그것만은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부분은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후회하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일을 마치고도 밤늦게까지 글을 썼다고 방금 이야기했는데, 마감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퍼블리즌 이번 원고든 원래 요청받은 날짜보다 몇 주 혹은 몇 달 먼저 썼습니다. 남이 저에게 '뭘 언제까지 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퍼블리 리포트를 지금 다시 읽으면 여기저기 부족한 부분이 보입니다. 종이 책으로 다시 내게 된다면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 리포트가 부끄러운가, 그것은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총력전' 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점에 제가 쓸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은 리포트를 완성한 이후에 읽은 책들과 경험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렇다고 읽어야 할 책들과 쌓아야 할 경험을 다 마쳐야만 글을 쓸 수 있다면 아마 죽기 전날에나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죽음에 대한 경험도 쓰려면 죽은 다음에 써야겠네요.


어느 출판사 분과 이야기하다가 '졸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겸손하게 보이려고 자기 저서를 '졸작'이라 표현합니다. 그리고 어떤 작가는 자기 입으로 홍보하기 부끄러워서, 혹은 진짜 자기 글이 부끄러워서 책을 사달라는 홍보도 잘 하지 않습니다. 책을 팔아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진짜 부끄럽다면 책을 내지 말았어야죠. 책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작가 본인과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거기서부터 대화와 배움이 시작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 아닐까요? '책을 내긴 냈는데 내가 생각해도 부족하니 읽고 싶으면 읽고 아님 마세요' 같은 자세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면 장편소설 작가든 단편소설 작가든 지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줄 만한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중략) 
어쨌거나 작가에 대해 그런 '반세속적인 이상상'을 원하시는 분께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그리고 - 누차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 어디까지나 나로서는 그렇다는 얘기지만, 육체적으로 절제하는 것은 소설가를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일입니다.


이번에 쓴 책에 '운'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성과의 상당 부분은 운입니다. 일이 잘 될 때는 자기가 잘한 줄 알고 일이 안 될 때는 상황 탓을 하기 마련이지만, 원래 운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1) 시도의 횟수를 늘리고 2) 시도 하나하나의 성공/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윤종신입니다. 노래도 잘하긴 하지만 아마 노래로만 따지면 더 잘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예를 들어 임재범이라든가. 제가 윤종신을 존경하는 이유는 '월간 윤종신'을 벌써 만으로 8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월간 윤종신을 접했을 때가 직장생활 3년 차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실험 삼아 몇 달 해보고 그만 둘 줄 알았습니다. 그랬던 게 제가 회사를 세 번 옮기고 결혼하고 내년에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지금 시점까지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브런치 글도 꾸준히 쓰지 못하는 제가 보기엔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지금까지 포기하지도, 쉬지도 않았다는 그 자체만으로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좋니'가 역주행하며 크게 성공한 것은 어느 정도 운이 따랐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8년 동안 꾸준히 한다, 그것은 운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아마 윤종신은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피지컬한 힘을 획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성대만큼은 충분히 자기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겠지요. 


저는 글을 쓴 지 일 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직장에 다니며 들쑥날쑥하게 써왔습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시간을 글을 쓰며 보내게 될 텐데,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습관을 만드는 것. 몸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




그 재능이 땅속의 비교적 얕은 곳에 묻힌 것이라면 그대로 놔둬도 자연스럽게 분출할 가능성이 있겠지요. 그러나 만일 그것이 상당히 깊은 곳에 묻힌 것이라면 그리 쉽게는 찾아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풍성하고 뛰어난 재능이라고 해도, 만일 마음먹고 '좋아, 이곳을 파보자'라고 실제로 삽을 들고 파내지 않는다면 땅속에 묻힌 채 영원히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장 공감했던 대목 중에 하나입니다. 글쓰기가 제 재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직 부끄럽긴 하네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정말 우연히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전까지 34년 동안 제가 남들이 읽어줄 만한 글을 쓸 수 있다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공대생인 데다가 심지어 그 흔한 논술시험 따위도 본 적이 없어서, 저희 아버지는 항상 제게 '너는 수학, 과학은 잘하지만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글 쓰는 것을 잘 못한다'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아버지는 물론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지만, 저는 '너는 글을 못쓰니까 수학하고 과학이나 해라'라는 의미로 멋대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늘 이야기 해왔습니다. '너는 글을 잘 못쓴대'라고.


제게 있어 '좋아, 이곳을 파보자'가 아마 퍼블리 리포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라, 여기가 파지네' 정도였달까요. 저는 쭉 전략/마케팅 관련된 일을 해왔고, 최근까지도 데이터 분석이나 마케팅 프로세스 분석 같은 글쓰기와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을 본업으로 해왔습니다. 이곳을 파보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글쓰기와 상관없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아찔하다'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 생각을 하면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여기가 제 인생의 중요한 고비입니다. 저는 이제 곧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준비해온 다른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또 소개드릴 예정입니다. 이런 공개적인 글에서 자세히 쓸 내용은 아니지만, 아무튼 재정적인 타격이 꽤 큽니다. 오랫동안 고민도 했지만, 역시나 도전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얼마 주면 군대 한번 더갈래?' 같은 질문입니다. 2년 정도 결정을 미루면 재정적인 피해가 줄지만, 2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느니 그냥 대가를 치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진로를 놓고 여러 옵션을 고려했는데, 가장 와 닿은 조언이 있었습니다. 


여러 단계를 거친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고, 그냥 그 일을 지금 해라


아직 30대 중반밖에 안되었지만, 최상의 컨디션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승려와 수수께끼>에 보면 'deferred life plan'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데 그 일을 할 준비를 한답시고 다른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돈을 많이 벌면 ~~ 을 하며 살고 싶어' 하면서 돈을 벌다가 죽어버립니다. 아니면 돈을 벌다가 자기가 뭘 하고 싶었는지 까먹습니다. 그래서 deferred(지연된) life plan입니다. Plan은 있는데 계속 지연시키고 있는 거죠. 지금은 할 수 있겠다 싶을 때까지. 그 날이 언제 올까요?


어쨌든 전 deferred life plan을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몰라요. 정 안되면 뭐 본업으로 돌아가야겠지만 그전까지는 닥치는 대로 다 해볼 생각입니다. 적어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건 다 했다 생각이 들 때까지 말입니다.




번외 편 : 

서로 다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행동을 취하고, 그런 것이 맞부딪치면서 상황이 굴러가고 얘기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니까 얼른 한 번 보고 '이 인간은 영 마음에 안 드네'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눈을 돌리지 말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어떤 식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가' 등의 요점을 머릿속에 담아둡니다.


좀 맥락이 다른 인용구인데 공감이 되어서 가져왔습니다. 예전 직장에 입사한 지 두어 달 되었을 때 일입니다. 제가 뭔가 윗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했고, 아주 높으신 분한테 불려 가 엄청 깨졌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게 그분이 나중에 '이 친구는 혼나는 자세가 좋다'라고 이야기하셨답니다. 뭐 어떤 혼나는 자세가 좋은 자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는 무슨 일이 펼쳐지느냐? 저는 혼날 때 잠시 유체 이탈합니다. 그러니까 제정신은 혼내는 사람과 혼나는 사람(저) 곁에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관찰하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지금 무엇 때문에 화가 났고, 그것은 이러이러한 가치관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음번엔 이런 부분을 맞춰주면 되겠다. 그런데 그 가치관은 올바른 것인가? 윗사람들이 다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조직에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인가?


제가 조직문화에 대한 글을 어떻게 쓰는지 대충 짐작이 가시지요? 뭐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정신이 육체를 떠나기 전에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놓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혼나고 있는데 무표정하거나 심지어 비웃는 표정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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