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콘텐츠를 종이책으로 볼 것인가 전자책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서 와, 리더는 처음이지?' 책을 내고 디파지트에서 열린 첫 북토크에서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다.
퍼블리 리포트도 내보시고
종이책도 내셨는데
저자 입장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러고 보니 정말 우연히 전자 콘텐츠 하나와 종이책 하나를 냈고, 서점까지 오픈했다. 이런저런 입장에서 앞으로 종이책이 어떻게 될지 끄적거려 보았다.
책은 무겁다. 대신 줄 치고 메모하기 좋다. 너무 뻔한 이야기는 빼고 주로 작가 입장에서 장단점을 썼다. 물론 작가도 케바케다. 나 같은 초짜 작가와 유시민 작가의 입장은 매우 다를 것이다. 종이책 위주로 정리했는데 뒤집으면 온라인 콘텐츠의 장단점이라고 보면 된다.
우선 책은 물성이 있다. 그게 매우 크다.
1) 작가라고 하면 대하는 게 달라진다
어쨌든 책을 낸 작가라고 하면 상대방도 나를 대하는 관점이 달라진다. 온라인 플랫폼 중 가장 유명한 퍼블리를 예로 들어도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퍼블리 리포트를 냈다고 하면 블로그 같은데 좀 긴 글 썼나 보다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유료로 팔리는 거라고 생각 못하는 경우도 있다.
2) 선물할 수 있다
친구에게 선물할 수 있다. 기업 담당자를 만났을 때 선물할 수 있다. 특히 영업하는 입장에서 누구를 만났을 때 '퍼블리 리포트를 썼으니 가입해서 한 번 읽어보세요' 하는 것과 손에 내 책을 쥐어주는 것은 매우 다르다.
이건 사실 작가 입장이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은 읽어보고 좋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거나 읽어보라고 추천할 수 있다. 퍼블리 리포트는 주변에 추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알더라도 가입을 아직 안 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퍼블리 하나를 예로 들고 있지만, 앞으로 유사한 플랫폼이 더 많이 생긴다면 더 추천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
이건 사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출판업의 문제 같기도 하다.
1) 얼마 팔렸는지 작가가 알기 어렵다
출판사는 집계하고 있겠지만, 어떤 시스템에 접속해서 자기 책이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인지, 작가가 그걸 알지 못했으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다 한번 정산할 때나 그동안 얼마나 팔렸는지 알 수 있다. 종이책이야 그렇다 치고 전자책까지 알 수 없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 퍼블리의 경우 매달 정산일이 되면 시스템에 접속해 멤버십 고객 몇 명이나 내 콘텐츠를 보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2) 알아도 어차피 취할 수 있는 액션이 별로 없다
작가는 원고를 작성하고 책이 나오면 강연을 하며, 출판사는 책을 편집하고 인쇄하고 유통하고 마케팅하는 역할을 맡는다. 1) 하고 연결된 문제인데, 자기 돈 태워서 페이스북 광고라도 돌리지 않는 이상 작가가 자기 책 판매량을 안다고 해서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온라인에서는 뭘 팔든지 그로스 해킹이 기본이지만, 종이책이란 동네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3) 인세가 짜다
책은 가격 자체가 높지도 않은데(다른 나라에 비해) 중간 단계가 많고, 그 중간 단계가 모두 마진율이 짜다. 작가 인세율은 보통 8~10% 선이다. 책 한 권 팔면 작가 입장에서 보통 천 원 남짓 남는다. 작가마다 다르지만 강연 한 번에 30~50만 원은 받을 텐데 인세 이만큼 받으려면 책을 300권은 팔아야 한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퍼블리도 작가마다 정산율이 다른데, 어쨌든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정산받고 있어서 가정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솔직히 처음 리포트 쓸 때는 발간 전 크라우드 펀딩 정산이 크고 이후의 멤버십 정산은 얼마 안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매달 멤버십 정산을 많이 받는다. 퍼블리 만세!
4) 다른 일을 하면서 읽기 어렵다
이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 관점. 종이책을 전자책 보다 선호하는 편이라 리디 셀렉트 가입할지 고민했는데 결정적으로 TTS(Text To speech) 기능 때문에 가입했다. 출퇴근에 자차 운전을 하기 때문에 종이책은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음악을 틀어놓았었는데 리디 셀렉트로 가벼운 책을 들으니 나쁘지 않다. 물론 운전하느라 절반 정도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 정독하고 싶은 책이 아니라면 들으면서 '아, 이런 내용의 책이구나' 하고 넘기기 딱 좋다.
5) 출간까지 오래 걸린다
원고를 다 썼다고 하더라도 책은 출간까지 적어도 3개월은 잡아야 한다. 순수하게 편집이나 디자인 같은 일처리 하는데만 그 정도 잡아야 하고, 그마저 출판사가 좀 큰 곳이면 일 년 치 출간 일정이 이미 잡혀서 더 길어진다. 계약하기도 힘들지만, 계약에서 출간까지 일 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나는 계약에서 출간까지 6개월 정도 걸렸는데, 디파지트 오픈 시점에 맞추고 싶어서 솔직히 출판사를 마구 닦달했다.
쓰다 보니 책의 장점이 두 가지, 단점이 다섯 가지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종이책보다 전자책 혹은 온라인 콘텐츠가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 같이 기업 강의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단점을 감안하고라도 종이책 발간을 우선 고려할 만큼 책의 장점 두 가지가 크다.
앞서 쓴 내용은 주로 작가 입장에서 어떤 콘텐츠를 종이책으로 냈을 때와 온라인으로 냈을 때의 장단점을 고민한 것이다. 종이책 vs. 전자책/온라인 콘텐츠의 구도로 확장해서 보면 또 다른 관점이 등장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책 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있어빌리티다.
꽤 오래전 광고지만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 하는 말에 그랜저 깜빡이를 '딸깍' 하는 광고가 히트(자 논란거리)였다. 그래서 자동차는 승차감보다 하차 감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집과 차의 역할은 앞으로 점점 줄어드리라 생각한다. (없어지진 않겠지만)
특히 집은 내가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산다를 드러내는 것에서 점점 우리 집을 어떻게 꾸며 놓았는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갈 것 같다. 남의집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결국 '내가 돈이 많아'라는 메시지보다 '내가 이런 취향을 가졌어'가 먹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책과 서가가 있다.
책꽂이에 어떤 책들이 꽂혀있는지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이 사람은 자기 책꽂이가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 어떤 분야, 주제, 장르의 책이 어떤 식으로 정리되어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역할은 오직 종이책만 할 수 있다. 자기 서가를 보여주는 사람은 봤지만 자기 리디북스 전자책 리스트를 보여주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나 퍼블리 멤버십 있어"라는 멘트도 그 자체로 암시하는 메시지가 있겠지만, 퍼블리에서 어떤 리포트들을 읽었는지 하나하나 이야기하지 않는 한 서가를 보여주는 것만큼 취향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종이책의 미래는? 희망적으로 본다면 앞으로도 종이책은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로써 계속 사랑받을 것이다. 그리고 서점은 책을 큐레이션 하여 취향으로 제시할 수 있는 곳만 살아남을 것이다.
비관적으로 본다면 큐레이션 전장에서 최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유시민 작가의 서가를 리디북스에서 그대로 구현한다면? 단순히 그가 보유한 책을 가나다 순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책을 어떻게 분류해서 어떤 순서로 꽂아두었는지까지 말이다. 유명인들의 서가를 그대로 구현해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 만들듯 누구나 자신의 서가를 온라인에 구현해서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된다면?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전자책들의 UI/UX 고민은 어떻게 하면 종이책과 비슷해 보일까 밑줄 긋기 편해질까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대가의 서가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을 구현할까 하는 것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콘텐츠의 싸움은 아직 본 게임이 시작하지도 않았다. 종이책이 종이책으로써 존재해야 할 최후의 보루가 공격당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