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리 그리고 트라우마(2회)

강남구와 관악구를 넘나들다.

by 권영학

사이클선수가 되겠다고 다짐 후 찾고 찾아간 곳이 강남에서 주로 활동하며 반포 뉴타운 앞에 매장을 운영하는 정‘사이클이었다.

사장 정연풍씨는 동로인 중 꽤 자전거를 잘 탔던 인물로 상술이 뛰어나며 장사에도 능했다.

나는 정‘사이클에서 자전거를 구입하며 자연스럽게 회원이 되었다.

클럽 이름도 없는 그냥 젊은이들 몇 명이 모여 타거나 정‘사이클에 사이클을 정비하거나 자전거를 구입 한 사람이면 회원처럼 활동했었다.

빨간색 재킷 입으신 분이 정, 사이클 대표 정연풍 사장 필자는 빨간색저지 왼쪽에서 첫 번째.

사이클 가게가 강남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고객들이 많았었다.

회원 중에는 가수 산울림 형제들이 있었다. 워낙 사이클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형제들이다.

내 자전거 이야기에는 장남 김창완 님에 이야기가 종종 나올 것이다.


나는 정‘사이클에서 일본산 사이클프레임 듀라올(Dura-all)이라는 일본산 알루미늄 자전거를 구입했었다.

그동안 형님에게 빌린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강남에 있는 정’ 사이클에 드나들며 장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유독 그 사이클이 눈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알루미늄 색상에 옅은 폴리쉬 된 제품이었는데 당시를 기억해 보면 아주 가벼웠었다.

잠을 자려고 할 때도 틈이 나는 시간만 있으면 눈에 아른 거렸다.

변변하지 못한 나의 직업에 거금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내고 단박에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1989년 당시에도 사이클을 구입하기 에는 꽤 나 큰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매형과 내 위 권영우‘형이 돈을 좀 보태줘 사이클을 구매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나의 멋짐을 만들어줬던 첫 사이클 듀라올 알루미늄.


그동안 30만 원짜리 생활형 자전거에서 거금이 들어간 장비로 바뀌고 나서 운동하는 맛도 좋았고, 실력도 향상되었다. 진짜 사이클 선수가 된 기분이 들었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미안한 감정도 있었는데 서울대 입구 삼천리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며 관악구 사이클클럽 회원이신 최우용‘ 사장님에게 사이클을 사지 않고 관악구 조기 운동에 계속 나가게 되어 미안한 감정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사이클은 강남에서 구입하고 클럽 활동은 관악구 소속으로 하게 되었었다.

나는 관악구 사이클 모임에서 이쁨을 받았다.

빠지지 않고 잘 나가는 것 많으로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좋아했다. 틈만 나면 강남 정‘사이클 회원들과 관악구 회원들 사이를 오가며 실력을 키워 나갔다.

나의 그런 사실을, 서로의 클럽 회원들끼리는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강남 클럽을 더 자주 드나들었다.

정’ 사이클회원 둘 중 연장자들은 연장자끼리 탔고

정비사로 일하던 김영선 씨를 주축으로 자연스럽게 젊은 회원들 위주로 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김영선 씨는 우리와 함께 자전거를 많이 타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전거 타는 것 을 좋아하지는 않았고, 폼을 많이 즐겼던 것 같다.

이때 함께 했던 멤버들은 지금도 자전거 계를 떠나지 않았거나 자전거계를 떠나 잊힌 인물도 있다.

정‘사이클 미케닉 김영선.(현 자전거인대표)

한신기업대표 노기탁.(현 거러 바이크대표)

한신기업 직원(고 박용만)

(현) 경륜선수 김우병.

경륜선수 MTB1세대 박진. (현 일산사이클아카데미)

(전) 경륜선수 전남훈.

(현) 운수업 허장욱.

(현) 자전거업종사 고윤정.

(현) 자전거정비소운영 이승.

(현) 수입자동차부품판매업 조성희.

당시 동대문 사이클복 제조 공장에서 일

하는 친구들을 알게 됐는데 고윤정과 김도하이다.

두 친구들의 처음 만남이 인상에 남아있다.

고윤정은 검은색 뿔테 안경에 모범생 같은 여리한 느낌이었고 김도하는 퉁퉁하며 검게 그을린 피부 하며 힘 좀 쓰게 생겼었다. 김도하는 사이클복을 만드는 패턴과 디자인을 담당했고 고윤정은 단체복 영업과 납품을 담당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이클복 단체납품, 맞춤유니폼 전문점이 KG 스포츠 김광기 사장님 회사였었다.


사진 뒤 시계방향으로 연세 드신 분 이름 모름. 노기탁, 김우병, 박진, 조성희, (고) 박용만, 허장욱, 전남훈, 고윤정, 앞줄 정연풍 사장, 이름?, 이승, 권영학.


김일국(행방모름)이라는 친구가 이었는데 정말 자전거를 잘 탔었다. 당시 트렉용(픽시드기어) 요즘 픽시라는 자전거를 타고 강남 터미널 많은 차를 추월하며 자전거를 탓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몇몇이 모여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며 클럽명도 없이 활동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주도해 클럽명도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이

TRACK 트랙이라고 클럽명을 만들고 단체 유니폼도 만들어 입고 다녔다.

지금도 당시 클럽명이 왜 TRACK였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아니 기억을 못 할 것 같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려고 했었던 의도는 있었다.

당시 유행 하지도 않는 원피스(상하 붙은)를 입고 사이클을 타고 다녔다.

동생처럼 아꼈던 후배 노기탁(한신기업, 거러 바이크 대표)


꾸준히 관악구 클럽회원들과 운동을 했는데, 아침 6시 일찍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하루에 2번 운동이 가능했다.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실력을 더 빠르게 키울 수 있어서 좋았다.

관악구 서울대 입구에서 시작하면 끝나는 장소는 모임 장소가 되었었다. 아침 6시에 운동을 시작해 운동 마치고 강남 정사이클까지 이동하는 중간에 노기탁과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노기탁 집으로 가는 날이 많았다.

기탁이는 많은 날들이 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문 밖에서 크게 외쳤다.

노기탁!~ 기탁아!~ 꽤 여러 번 불러야 나왔고 더러는

일어나지 못해 엄마가 나오셔서 이제 일어났다고, 귀띔해주시곤 했다. 나는 당연한 듯 그렇게 받아 드렸다.

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강남의 젊은 회원들과 어울려 탈 기회가 많았고 나는 회원 중 이승씨를 제외하면 내가 제일 연장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이승씨는 자동문설치, 영업 일을 했었고 당시 그레이스라는 승합차를 가지고 있어 우리가 요긴하게 혜택을 봤었다.


인생 트라우마를 만들다.

하루는 관악구 조기 모임을 마치고 젊은 회원들에게 나 오늘 강남클럽 친구들과 장거리 훈련을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고 한 친구가 선 듯 따라나섰다.

우리는 봉천동에서 정“사이클 모임의 장소까지 신나게 달려갔다.


김영선, 노기탁, 김우병, 박진 등 나와 함께 동행한 1인과 정“사이클을 출발해서 성남로를 달려 이천 곤지암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사이클을 타고 달리며 말이 별로 없었던 우리는 처음 모임에 참석한 동행인은 서먹해하며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주문해 먹었고 나는 힘쓰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거들었었다.

점심을 다 먹고 출발하기 전, 김우병이 평지는 같이 속도를 맞춰 달리 돼, 언덕은 개인 플레이 할 것을 제안했다. 모두는 그렇게 하자고 했고 출발 한 시간이 체 못돼

곤지암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첫 번째 큰 언덕을 만나게 됐고 이때 경주를 하는 선수들처럼 이내 내달리기 시작했다.


김우병과 내가 고개 최정상에 도착했고 잠깐동안 우리는 기다리다가, 내려가는 길은 힘이 들지 않고 달릴 수 있으니 내려가서 기다리자라고 김우병과 나는 말을 맞추고 출발할 때쯤 반대편 도로에서 진짜 사이클 선수들이 훈련을 하며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다. 내리막을 한참 달리던 중, 뒤에서 오는 차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김우병, 김영선, 필자)

내용인즉, 자전거 사고가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아까 반대편으로 올라간 선수들도 있고 해서 어느 쪽 방향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서울 방향 이리고 이야기를 해 줘서 잠깐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연거푸 오는 차량들이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뒤에 와야 했던 우리 일행들도 오지 않기에 김우병과 나는 오던 길을 돌아서 다시 달렸다.

금방 사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우리는

현장에 도착하고서야 우리 일행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고 내용은 이랬다.

언덕을 오른 우리 일행들은 광주로 향하는 내리막 길을 신나게 달리게 되었는데 우리 일행 중 나와 함께 관악구에서 활동하던 친구가 내리막 코너에서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차와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날 친구와 나는 이별을 해야만 했다.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사고를 격은 후 나는 강요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두세 번 반복하지 않는다.

이후 나의 삶에 자리 잡은 안전, 이라는 단어가 되었다.


다음 편(누구도 알지 못했던 산악자전거이야기 가 시작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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