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힐러의 직장인 스토리 #17
직장인들은 1년에 한 번씩 자신이 할애한 노력에 대한 결과를 '고과'라는 항목으로 등급화 된다. 이는 직장상사들과 주변 동료들의 의견으로 주어지지만 프로세스 자체는 회사의 사정에 따라 차이는 있다. '평가'라는 행위 자체는 공통으로 존재하지만 그 결과물에 대해 평등한지에 대한 여부는 피평가자들에게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것도 조금은 불편한 현실일 것이다. 필자의 회사는 총 두 번의 고과 면담을 통해 상/하반기 평가결과가 결정된다. 또 합산을 통해 연봉 고과가 최종 결정이 된다. 이 기준으로 고과 면담의 기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고과 면담은 밀폐된 좁은 공간, 이름만 면담실이라는 곳에서 진행이 된다. 기존 오피스와는 다른, 조금은 불편한 파트장 혹은 부장급의 인물과 맨투맨 담화가 이루어진다. 공간과 환경이 주는 영향은 절대 무시 못하기에 분위기상 대화에 우위를 점하긴 힘들다. 우리는 피 면접자이며 면접자도 어느 정도 결과를 통보하는 자리라는 것이 고과 면담의 기본 Base다. 협상을 통해 '음 그렇구나', '그럼 이 정도 고과는 괜찮니?'라는 대답은 바라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불편한 공간 속 면담이 우리에게 가하는 불가항력적인 압박(?)을 버텨낼 준비를 하고 면담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머릿속 시뮬레이션 진행 후 들어가는 연습을 한다.(사실 그렇게 해도 결과적으로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면담의 기본은 대화에서 시작된다. 이미 상호 간에 고과 결과라는 주제의 대화라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시작하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껄끄러운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관심 없던 피면담자의 안부나 가족생활, 건강상태, 업무강도 등이 어떠한지를 묻기 시작한다.
"요새 일은 좀 할만하니? 몸은 좀 어떠니?"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이 상당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릴없이 던지는 질문인 건 확실하다. 밑에 있는 부하 사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업무강도와 양을 지녔는지, 불필요한 고충은 없는지 등을 파악하지도 못한 부장 간부. 이런 분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내릴 권리가 있는지가 사실 의문일 때가 많다.
몇 년간 해온 고과 면담이지만 정말 싫은 포인트가 있었다. 내가 면담한 파트장급 부장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물어왔다.
"너는 네가 이곳에서 몇 등인것 같니?"
숱한 경쟁사회에서 서로와 뾰족한 칼끝을 들이밀며 일할 필요는 없었지만, 결국 그렇게 해야만 올라가는 사회였다. 몇 등이냐는 질문의 속뜻은 "이미 등수가 정해졌고 너의 등수는 이렇다. 그런데 그전에 네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구나" 정도 일 것이다. 몇 등인지를 생각하고 초반부터 결론이 나는 게임이었으면 적당히 월급만큼만 일해도 괜찮았으려나? 앞선 칼럼들에서도 소개했지만 회사는 정치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업무능력에 가중치를 두고 올라가는 경우는 극소수에 달한다고 필자는 본다.
1년간 해왔던 업무 List와 경영실적이 나타난 PPT를 들고 어필을 해봤던 필자지만 이미 답정너인 그들에겐 불편한 현실이다. 심지어 대외비인 타인의 평가결과도 자연스레 귀에 들어오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더라, 자타공인 실적이 별로 없는 타인도 고과 평가는 본인보다 높은 경우가.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는 세상이 아니기에 회사생활에서도 평가적인 만족감을 얻기란 힘든 현실. 생각만큼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기에 1년간 지내온 회사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이 생기게 된다. 열의과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해온 업무들에 대한 애착이 떨어지고 로열티 하락과 동시에 모든 의욕이 소멸된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후의 감정들과도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대하고 믿었던 현상에 대한 "배신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우리는 직장인이기에 경제적인 문제와 연결된 고과 평가가 무척이나 중요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필자도 몇 번의 이런 경험을 거친 후에 정말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일종의 "현자 타임"을 여러 번 가지곤 했다.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다음 타임을 달릴 수 있는 기동력도 생기는 법이지만 현실은 상당히 녹록지 않다.
고과 평가에 극히 연연하는 경우 본인의 자존감에도 심한 타격이 올 수 있으니 의연하게 넘기는 현명함도 필요할 것으로 사려된다. 필자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간 붕괴된 멘탈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또 금방 털어 넘기기도 한다.
매년을 평가에만 연연하다가 정말 소중한 시간을 놓치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