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가물가물한 시점에 상사에게서 나를 평가받는 고과 시즌이 되었다. 유독 고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기업 관료제 시스템은 임직원 모두를 경쟁사회로 내몰았지만 집단에 속해 있는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제도인 것도 하나의 팩트가 되겠다. 필자가 다른 기업에 몸 담지 않은 이상 모든 직장이 이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필자의 회사 제도는 명확하다.
상위 고과 = 연봉 10% 이상 인상
물론 편파적인 직장생활 시즌 1에서 다룬 적이 있지만 개개인의 업무 능력만으로 좋은 고과를 취득하기에 회사란 곳이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좀 더 현실적인 상황은 'Case by Case', '사람 by 사람', '조직 by 조직'이 되겠다. 즉 때에 따라 업무적으로 출중하고 우수했어도 일 못하고 술자리 참석과 아첨을 밥 먹듯 하는 동료직원을 고과 결과로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냉혹한 현실이지만 말 그대로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럼 여기서 떠오른 필자의 의문, '과연 상사들은 부하 직원을 평가할 만큼의 업무역량과 리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부하 직원은 상사들을 평가할 수 없는가?'였다.
2. 형태만 갖춘 상사 평가 시스템 CI
있다, 부하 직원이 상사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필자의 회사 시스템상 CI(Culture Index)라고 하는데 해당 회사, 경영진, 상사 및 부서장에 대한 70~80개 문항 평가를 진행한다. 모든 부서원들의 CI 평가 점수는 평균 내어지고 이 점수는 해당 부서 임원의 조직 리더십 암묵적 지표가 된다. 즉 점수가 높을수록 해당 임원은 높은 만족도의 임직원들을 이끌었다는 의미로 비추어지게 되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그만큼 상사 직원 및 임원급에게 본 평가가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해당 진단은 정말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을까? 임직원들이 정말 자기 소신대로 설문 답변을 하고 있을까? 필자는 과감하게 아니다에 1표 던져보겠다.
임원들끼리의 목표 관리 MBO(Management By Objectives) 이자 경쟁 지표가 되는 점수인만큼 좋은 점수를 위한 사전 관리도 치열하다. 부서별 높은 CI 점수를 위해 목표 점수를 설정하여 부서원들에게 점수 목표 달성을 요구하기도 하고 유사 문항으로 사전 진단을 실시하며 어떤 경우는 문항별 응답 방법을 사전 배포하여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소위 'MSG' 다량 가미된 뻥튀기 상사 평가 지표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3. 화장실 출입 전과 후가 다른 그들
필자는 해당 시즌만 되면 숨겨왔던 살집들이 물이 오른다. 아무 바람 없다며 부서원들에게 하사되는 패스트푸드 및 간식들, 어제 먹고 오늘 또 먹는 스낵류와 뜬금 커피들. 의미 없다(?)며 투입되는 간식들을 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이 시즌에만 상사분들의 사용 가능 회의비가 넘치는 건지 의미심장 해진다. 더불어 주는 대로 먹다 보면 나 자신이 사육당하는 가축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문제는 해당 평가 전도 중요하겠지만 평가 완료 후도 상당한 후폭풍이 발생한다.생각했던 예상 점수보다 낮으면 결과 관련 조직문화 담당자와 관리 책임자에게 1차적 질책과 추궁이 이어지고 익명으로 진단을 했음에도 뒷조사(?)를 통해 관련자를 추려낸다.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 수사처럼 압박하며 찾아낸 사람들을 모아놓고 면담과 정신적 세뇌를 통해 스트레스를 주고 추후 점수를 잘 주도록 부탁과 강요를 일삼게 된다. 또 실/팀/그룹 간 해당 CI 점수 비교를 통해 순위를 선정하고 강, 약점에 대한 분석 및 근본적 원인 개선을 통해 개선점을 도출하는 것보다 내년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방책만 탐색하게 된다.
마치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올 때가 다른 사람처럼 평가기간 중에 짓던 천사의 탈을 쓴 미소는 평가가 끝난 후에 악마의 괴롭힘으로 변질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4. 돌이라도 던져야 변하는 물길
해당 상사 평가에 대해 필자가 취하는 입장은 매번 동일했다. 한 명이 한 길을 택해도 나머지 아홉 명이 다른 길을 택한다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세명이 되면서 소신껏 노력하면 한 번쯤은 개선의 여지가 생길 것이다. 개선이 필요한 점에 근본적인 원인부터 찾고 개선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리더의 숙명이고 상사들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감춤과 덮음 속에 깊게 자리매긴 상처들은 언젠가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세대차이로 국한 짓기에는 너무나도 변한 시대 속 우리는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세대 문화도 이해해야 하지만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고 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기 위해 조금 더 한 발짝 내디뎌보자. 상사에 대해 감정에 치우쳐 조건 없는 감점을 주라는 말이 아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되 실제 느끼는 바 그대로의 피드백이 우리들의 상사를 변화시키고 우리들의 직장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오랜 세월 움직임 없이 아쉽게도 잔잔해져 버린 샘물 속에 변화의 돌을 던져보자. 더이상 고이지 않고 앞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소신 있는 평가를 나누자. 필자는 장담한다. 오늘 던진 이 돌이 조금 더 밝은 회사생활, 즐거운 나의 인생을 가져올 것이라고.
P.S : 상사나 임원급들은 실무진의 고충과 생활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에 대화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이런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류가 필요한 것이지 독불장군 스타일의 밀어붙이는 무언가가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