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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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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쑤 Jun 17. 2016

알로카시아 오도라: 속으로만 하는 말

어른이 되면서, 내가 하는 말의 양은 늘었지만 정작 나의 마음을 꺼내놓는 말은 빈도와 양 모두 줄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하는 말들은 논외로 한다하더라도, 회사 밖의 내 개인적인 삶의 상황에서도 역시 줄었다. 단순히 말을 안하는 것 뿐 아니라 반대로 혹은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에 그룹 지오디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에서,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처럼. 그리고  이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종알종알 얘기하고 하나도 안 웃긴 데도 골백번은 웃어 제끼는 어린 아이였던 우리들이,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속으로만 하는 말들이 많아졌으니, 그 속말들을 다 담아내려면 어른의 속에는 사이즈가 넉넉한 통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삼키어 담아두다가도 이따금씩 한번씩 그 통을 비워줘야 할 것이다.



시원스레 큼직한 잎을 두서너개 정도씩 뻗어내는 알로카시아도 밖으로 꺼내놓는 잎이 쿨해보이는 것과는 달리 속으로만 하는 말이 많은가 싶다. 그래서 속말 다 담아두려고 몸통이 이리 두툼한가 싶다.


처음 봤을 때 왜이리 굵직한가 했더니 화원 주인 말에 따르면 그 속에 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알로카시아가 뿜어내는 물의 양보다 새로이 들어오는 물의 양이 더 많아지면 알로카시아는 무름병이라는 병에 걸린다. 물러서 썩은 부분을 다 잘라내버리거나 아니면 알로카시아와 사별해야 하는 알로카시아에겐 무서운 병이다. 속이 시커멓게 썩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하니.. 알로카시아는 첫째도 둘째도 물 살핌일 것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담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알로카시아와 사람의 공통점, 이라고 생각한다.



알로카시아는 눈물도 흘린다. 물을 너무 흠뻑 줬나 싶은 어느 날인가, 알로카시아 잎의 모서리에 물이 맺혀 있었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질 곳도 없었는데, 물방울 두 개가 맺혀 있어서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는데, 아마도 그것은,너무 벅차요, 하며 맺힌 눈물인가 싶었다.


이 대목에서,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렛공장”이 떠오른다. 여러가지 초콜렛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어떤 초콜렛은 먹은 사람이 마구 부풀어서 둥둥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원래 이 초콜렛을 먹을 때는 천장이 있는 곳에서 먹어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부풀어오르는 중에 트림 한 번 시원하게 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천장이 없는 곳에서 초콜렛을 먹고먹고 또 먹은 데다가, 트림까지 하지 않아서, 부풀어올라 하늘로 날라가버렸고 그 이후로 그를 본 이가 없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알로카시아의 몸통도, 알로카시아의 눈물도, 웡카씨네 초콜릿도,

너무 많은 것을 힘들게 끌어안고서 살지는 말고 때때로 투욱툭 털어내면서 살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 프로필:

국내 유통명: 알로카시아  (혹은 알로카시아 오도라)

학명: Alocasia odora

영명: Giant Upright Elephant Ear

생물학적 분류 (문/강/목/과/속): 피자식물문 외떡잎식물강 천남성목 천남성과 알로카시아속

원산지: 필리핀, 타이완, 인도의 동북부 등에서 약 70여 종이 있다고 한다.


햇빛:

어느 정도 환하다는 느낌이 있는 곳이면 살아가는 데 큰 문제 없는 것 같다. 쨍-하는 햇빛이 바로 치고 들어오는 아파트 베란다의 샤시 바로 앞에 반드시 놓아두어야 할 필요는 없고, 햇빛이 직접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베란다의 구석이나, 베란다에 면한 거실에 두어도 잘 산다.우리집 알로카시아는 베란다 한켠에 있는데, 안방 창가로 옮겨볼 생각이다.


바람:

바람이 솔솔솔 항상 드나들어야하는 최고 요구수준까지는 아니고 이따금씩의 환기가 된다면 괜찮은 것 같다. 역시 후덥지근한 지역이 원산지인 식물이라 그런가보다. 식물의 원산지는 마치 사람의 고향과도 같은 것이라서 비록 이 식물이 지금은 도시에 살긴 해도 그 본질은 원산지의 풍토를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식물 키우기에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주기:

물은 최대한 가끔 주어야 한다. 이러다 말라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까지 가도 될 것 같다. 화분 흙 속에 손가락을 한마디반 정도 쑤셔봐서 느낌이 축축하다 싶으면 아직 물 줄 때가 아니다. 쑤셔봤을 때 느낌이 좀 말랐나, 싶다면 그 다음날에 물을 주면 될 것이다.


내한성/월동:

내한성은 많이 약하므로 실내 월동이 필요하다. 이 역시 원산지를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하겠구나 싶어지는 대목이다. 알로카시아 오도라는 다른 알로카시아 종들보다 추위에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10도 이상이 적정하므로 겨울에는 실내로 들이는 것이 좋다. 그냥 아예 붙박이로 사계절 내내 거실에 자리잡아 살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성장:

잎이 최대 1미터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하고, 식물 전체의 키는 사람 키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으나, 한국의 기후, 특히 아파트 실내에서 키우면서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오바 아닐까 한다.


번식:

알줄기라고도 불리는 몸통을 무우 자르듯 두 동강 낸 후 아래 덩어리와 위 덩어리를 각각 심으면 둘 다 새로이 살아난다고 한다. 무름병에 걸린 경우, 아직 병들지 않은 부분을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한다. 병마에서 구해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멀쩡한 아이를 번식을 위해 두 동강 낼 필요는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매력 포인트:

굵은 줄기와 잎이 임팩트 있다. 줄기 혹은 몸통 부분은 다육이나 선인장처럼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물통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잎은 방패모양 같기도 하고, 영어이름처럼 코끼리 귀 모양 같기도 하다. 시원시원 큼직한 잎도 매력이지만, 새끼 잎이 나는 과정도 작은 경이로움이다. 난이 뻗어나간 듯 한 잎대에 캥거루 애기주머니가 생기듯 길쭉하고 살짝 볼록한 잎주머니 같은 것이 생긴다. 그렇게 길쭉볼록한 잎주머니가 별 변화없이 그냥 그렇게 붙어있는 듯 하다가 돌돌돌 얇게 말린 새끼 잎이 어느 날 불현듯 잎주머니 가운데를 가르면서 고개를 내민다. 그 날부터 돌돌 말린 잎이 부채 펴지듯 펴지면서 며칠 안되어 새로운 큰 잎이 된다.


유의사항:

무름병 주의. 물을 자주 주거나 화분의 흙이 과습할 경우에 발생한다고 하는데, 말그대로 야채가 상하여 물러터지듯 하며 썩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무른 부분을 절단하여 제거한 후 흙에 심으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보너스:

물을 준 다음날이나 다다음날, 잎의 뾰족한 모서리에서 물방울이 맺혀 있다가 또르르 흘러내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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