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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쑤 Jun 16. 2016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인생의 원반들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는 중심 줄기에서 동그란 원반 같은 잎들이 하나씩 나오면서 잎대가 대체로 수평으로 유지된다. 마치 서커스 광대가 막대기로 접시 돌리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글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글링이라고 하니까, 예전에 한참 회자되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과 같고 그 5개의 공이란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건강과 일을 말하는데 이 중에서 고무로 된 공은 일 뿐이고 나머지 4가지는 모두 유리로 된 공이라는 말이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나머지 4가지가 유리공이라니, 조금 살떨리는 표현이다.


사람은 처음엔 엄마와 아빠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세상의 전부이다. 튼실한 원반 하나의 단계. 그러다가 삶의 원반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어린이집, 유치원으로 시작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진 이후엔 넓고 깊어지는 사회활동에 따라 원반들도 늘고 늘고 또 늘어난다. 그야말로 필레아 잎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공존하는 원반들 사이를 우리는 옮겨다니며 사는 것 같다.


나 같은 직장인은 회사, 집, 친구들, 대학원, 동호회, 업계모임이 거의 전부인데 사실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카테고리도 사실은 아주 다양하게 세분화된다. 회사만 해도, 회사에서 주고 받는 이메일이 전체공지메일, 부서별 메일, 부서내 그룹메일, 개별 업무사안별 메일, 점심 약속 메일 등등 다종다양하듯이 회사라고 해서 하나의 원반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고 비록 모두 같은 회사 안일지언정 그 개개의 원반들에 속한 내가 같은 모습이지는 않을 것이다. 집에서도 혼자일 때의 집, 남편과 함께 할 때의 집, 엄마와 함께 할 때의 집, 엄마와 아빠와 함께 할 때의 집, 엄마와 아빠와 남편과 함께 할 때의 집이 참으로 다르니 집 역시도 여러개의 원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필레아는 이리도 주렁주렁 많은 원반 잎들을 달고 사는 것인가. 원반들은 크기도 다르고, 두께도 제각각이고, 빛깔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원반은 굴곡 없이 평평하고 잎대도 땅과 수평을 이루는 식으로 직선으로 뻗는다. 어떤 원반은 잎의 테두리가 둥글게 말리거나 찌그러지고 잎대도 수평의 직선이 아니라 기운이 달리는 듯 아래로 늘어지며 휘어진다.


어찌 보면, 마치 인생에서 내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들과도 같다. 매일같이 마주하고 함께 해도 영 가까워지지도 않고 정도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년에 서너번을 만나도 그야말로 영혼이 촉촉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조사가 있을 때만 연락이 닿아서 오만원을 낼 것인가 십만원을 낼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참으로 감사하고 좋아서 오래도록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사람이 있다. 말 한마디만 섞어도 그 날 하루의 기분을 제대로 잡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나치는 복도에서 혹은 십여초 간의 엘레베이터 동승을 통해 웃음과 짧은 대화만 나누어도 활기와 에너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


깊은 관계, 얕은 관계, 흐뭇한 관계, 힘이 되는 관계, 부담스런 관계, 긴밀한 관계, 보험 들듯 유지만 하는 관계, 보여주기 위한 관계, 등등등 참으로 다종다양하다.


그런가하면 한참을 중심 목대에 매달려 있다가 시들어 떨어져 나가는 원반도 있고, 수형을 가다듬기 위해 일부러 떼어내는 원반도 있으며, 좁은 베란다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불의의 접촉사고로 인해 꺾여나가는 원반도 있다. 이것도 역시 인생에서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 때는 좋았으되 세월이 지나 퇴색하거나 변질되는 관계도 있고, 친구였다가 적이 되는 관계도 있으며, 특정한 일을 계기로 하여 정리되는 관계도 있고, 계속되기를 바라마지 않았으나 뜻하지 않은 불가항력의 사고로 이별을 고하는 관계도 있다.


수많은 관계들 중에 그래도 진리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기승전-가족이랄까.  연둣빛 작은 종이쪼가리가 말려 있는 듯한 모양으로 새로 솟아나오는 새 잎들이 나의 관심을 이끌어내지만, 그래도 가장 처음에 나온, 그래서 제일 아래쪽에 있는 원반 잎이 제일 도톰하고 튼실하여 이따금씩 쓰다듬는 기분이 참 좋다. 혹은 꽃이 피고 지듯 잎들을 뿜어내어 매달고 떨어뜨리고 또 뿜어내고 하기를 반복하는 중심 목대가 든든하기도 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의지가 된다. 안정감이랄까, 믿는 구석의 확인이랄까.

예전에 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사람들 연락처를 홀랑 다 날려버렸다고 했더니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친구가 이 참에 ‘쓸데없는’ 사람들 좀 정리하면 좋다고 했다. 또 에전에 어떤 친구는 자신의 핸드폰에 연락처 개수가 1000개가 넘는데, 어느 늦은 저녁에 맥주 한 잔이 하고 싶어서 연락처 목록을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결국 연락할 사람이 없더라는 얘기를 했다. 또 어떤 친구는 회사 사람이 본인 핸드폰의 카카오톡에 뜨는 것이 참 싫었는데, 누군가가 꿀팁을 주기를,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연락처 이름 앞에 우물정 (#) 표시를 넣어서 저장을 하면 카카오톡에 친구로 뜨지 않는다고 하여 애용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아무래도 현대인들은 오래 머무르고 싶은 원반보다는 일단 매달 수 있는 최대한도치까지 원반을 달고 달고 하다가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미니멀라이프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미니멀리즘을 인테리어에만 투영할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서도 고려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니멀리즘이 무조건 버리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굳이 필요치 않은 것들을 없앰으로써 정말 내게 중요한 것, 필요한 것, 소중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는 의미라니 말이다. 그래서 이따금씩 중심 목대 주변으로 원반 잎들이 너무 많이 달려서 휘청휘청한다 싶어 보이면 좀 뜯어내서 단촐한 필레아로 만들기도 한다. 발이 넓지 않고 대인관계의 폭이 좁은 나 같은 주인을 만난 필레아의 팔자이겠거니 하면서.

그런데 한편 필레아의 또다른 매력은 엄청난 번식력이다. 대체로 번식력이 좋은 식물들은 가지를 잘라내서 물꽂이를 하거나 삽목을 하면 이내 뿌리가 자라나서 새로운 개체로 자라나게 되는데, 필레아는 자가발전하듯이 새끼들이 퐁퐁 고개를 내밀고 태어난다. 지난 봄에 필레아 새끼들을 하나씩 조심스레 어미로부터 떼어내서 독립을 시켜준 것이 작은 화분으로 스무개 정도인데, 아직 가을이 한참 남은 지금 새끼들이 또다시 올라와 있다. 니 엄마 아직 기운도 못 차렸겠다 좀 작작 올라와라 싶게 자라나는데, 먹성 좋은 갓난아이의 통통한 팔뚝이 미쉐린타이어의 흰둥이 같듯이 필레아 새끼들도 화분 속에서 엄마 젖을 잘도 빨아먹는지 통통하다. 이대로 간다면 이번 가을에 우리집 베란다에 필레아가 스무개 더 생긴다는 것인데, 이쯤되면 처치곤란의 수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미 여러 사람에게 필레아를 선물했지만 앞으로는 더 본격적으로 나눔에 들어가야 겠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아, 필레아는 인생의 원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베품에 대해서도 얘기하는구나. 언제인가 라디오에서 인생을 네 단계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첫번째 단계는 기억나지 않고, 두번째 단계는 청년시기의 채움, 세번째 단계는 중년 시기의 베품, 그리고 네번째 단계는 노년의 비움이었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 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그래 나는 필레아부터라도 베풀자, 라고 생각한다. 햇살이 들어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기울이긴 하지만 빛이 조금 부족하다 싶은 곳에서도 잘 사는 식물이니 내 주변의 도시인들에게 주기에 적당할 것 같다.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대방출합니다.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 프로필:


국내 유통명: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학명: Pilea Peperomioides (국내 모 식물 판매사이트에는 학명이 Echeveria agavoides romeo라고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영명: Pilea Peperomioides

생물학적 분류 (문/강/목/과/속): 속씨식물문 진정쌍떡잎식물강 장미목 쐐기풀과 필레아속

원산지: 중국 남부의 위난 지역.


햇빛:

밝은 그늘이라 생각될 수 있는 곳이면 오케이인 것 같다. 나의 경우, 베란다와 면한 거실에 놓아두었는데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햇빛이 그립기는 한지 새로 솟아나는 새끼 잎들이 햇빛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새끼잎들이 너무 목을 못가눈다 싶으면 화분을 반대로 돌려주기는 한다. 또, 햇빛이 많이 밝은 곳이면 잎색깔이 연두에 가까워지고 조금 덜 밝은 곳이면 잎색깔이 초록에 가까워진다.


바람:

베란다를 들락거리는 주인의 움직임으로 인한 환기와 통풍 정도라면 적당한 것 같다.


물주기:

잎대가 수평이 아니라 둥글게 휘어지며 밑으로 쳐진다 싶으면 물을 줘야할 때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과습은 안되니, 흙 색깔도 보고, 손가락으로 흙을 조금 쑤셔봐서 좀 말랐나 싶을 때 주면 된다. 잎에 분무질하면 좋아하는 것 같다. 무심한 듯 분무질 좀 해주면 나도 웬지 전문 가드너가 된 것 같은 기분도들기도 하여 심심하면 뿌려준다.


그런데 솔직히는, 나도 아직 필레아의 물주기에 대해서 확신이 서진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필레아를 사온 화원의 주인은 최대한 건조하게 키우라고 했는데 또 다른 화원의 주인은 필레아는 물을 좋아하니 자주 줘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다섯달 정도 키워본 결과, 말린다 싶을 정도로 너무 건조하게 키우는 것은 좋지 않고, 보통 정도로 손가락을 쑤셔봤을 때 축축한 느낌이 덜하다 싶으면 물을 주면 되는 것 같다. 대신, 화분 흙에 마사토를 좀 더 많이 섞고, 화분도 통기성이 좋은 토분으로 쓰는 식으로 과습을 방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한성/ 월동:

내한성이 약해서 실내에서 월동해야 한다. 생육 최소온도는 10-12°C라니 말 다했지 뭔가. 좀 쌀쌀하다 싶으면 그냥 집 안으로 들여주거나 아예 그냥 거실에서 키우면 될 것이다. 사실, 필레아는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소위 말하는 하우스플랜트이다.


성장:

키와 너비가 30센티 정도까지 크고, 잎의 크기도 10센티까지 커진다고 하지만, 우리집 필레아는 그 정도까지는 아직 안 커봐서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새끼잎들이 자꾸만 올라오고, 화분 구석에서 고개를 디밀던 새끼 필레아들도 자꾸만 자라나는 걸 보면 성장속도가 결코 더디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무성해져서, 처음 들여왔을 때의 단정하고 새초롬하니 꼬동꼬동한 맛이 없어서 아쉬울 정도랄까.


번식:

화분 속에서 뭔가 굉장히 바쁜 생명활동이 벌어지는 모양인 것 같은 필레아는, 화분 구석구석에서 새끼들이 고개를 드밀고 올라온다. 어느 정도 자랐다 싶으면 이 새끼 필레아들을 끊어내어 다른 화분으로 옮겨주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 탯줄을 못 끊고 어미 필레아 옆에 냅두고 있다.


매력 포인트:

항상 초록빛을 띠는 원반 모양의 두툼한 잎들. 대롱대롱 수평으로 유지되는 잎대가 볼 수록 예쁘다.


유의사항:

배수를 좋게 한다고 화분 흙에 제일 작은 알갱이 마사토를 많이 섞었더니, 배수는 엄청 잘 되는데 흙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다. 뿌리들이 숨막힐 까봐, 산적꽂이 막대기로 이따금씩 흙을 쑤셔서 구멍을 내준다. 올해는 이대로 그냥 버티지만, 내년 분갈이 때에는 마사토 말고 펄라이트를 섞는 걸 생각해봐야겠다.


보너스:

인터넷을 뒤지다 알게 된 사실인데, 필레아는 전문 가드너 혹은 식물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세상에 널리 알린 식물이라고 한다. 필레아는 원래 중국 위난 지방에 많이 분포하면서 그 특유의 잎 모양 덕에 동전식물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1940년대에 어떤 노르웨이 사람이 필레아를 발견하고는 '커팅'의 방식으로 필레아를 인도를 거쳐 자신의 나라인 노르웨이로 데려왔고 그 이후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커팅했는지는 나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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