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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Aug 10. 2016

02 Ladakh 이런 나라가 있었어?!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관건은 고도적응이었다.


7월 1일, 인천에서부터 지연된 비행기가 홍콩을 거쳐 인도 델리에 도착한 건 현지시각 밤 11시경.

긴 여정에 다들 녹초가 되고 내리자마자 훅 퍼지는 습습한 공기는 드디어 인도구나!라는 경각심을 순식간에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라다크였으므로, 호텔에 짐을 풀 여유도 없이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 기분으로 다음 날 새벽 4시에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입은 깔깔하고 침대 시트는 축축하고 잠은 오는데 자서는 안 되고, 뭔가 대략 난감했다.

나는 룸메이트없이 방을 혼자 썼는데 그래서 더 그랬을까, 적막한 방에 앉아 새벽에 혼자 오도독 깨어무는 (기내에서 야무지게 챙겨온) 땅콩소리가 처량맞았다. 얼른 떠나고 싶었다.


델리를 05:55am에 출발하는 에어인디아 국내선을 타고 마침내 레 Leh에 도착한 시각이 07:15am.

뭐 하나 허투루 버리는 시간없이 꽉 채운 일정을 이 때부터 알아봤어야했다.

우리의 하드트레이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멀긴 멀구나!' 계속 되뇌이면서 비행기 창문너머로 바라본 라다크의 생경한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레에 도착하기 5분 전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고도가 3,500m라는 건 말로 백 번 들어도 한 번 경험하느니만 못하다. 한라산 정상이 1.950m다. 그 두 배가 약간 못 미치는 높이다. 낮디 낮은 평지에 살던 인간이 한 방에 뿅, 신선이 사는 동네를 기웃거리는 거다. 휘청인다. 멍하다. 귀가 아프다. 침을 꾹 삼킨다. 웅웅거린다. 모두가 그러니 나만 그렇다고 엄살을 피울 수도 없다.


트레킹을 하면 서서히 고도를 높여 몸이 적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데, 그게 몽땅 빠진 이런 뿅망치를 맞는 경험은 아마 알고는 못했을 것 같다. 모르니까 할 수 있다. 한계를 인식하지 않기에 그냥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편하자고 여행을 온 게 아니었으니까, 당연한 거다. 그런 사소한 불편함은 사소하지 않게 느끼면 그만이었다.



드디어 레 Leh 시내 중심가까지 왔다!

개선장군의 기분이 분명 이러했을 거다.

정말 오긴 왔구나, 이 곳을 내가.


건물이 뿜어내는 소음이 완전히 없다. 고요함 그 자체다. 사람들이 있어도 조용하다. 뭐지, 이런 평화로움은?! 내가 얼마나 소리를 둘러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있으면서도 실은 무감각했었는지 대번 알 수 있었다.

그 조용함만으로도 충분했다. 앞으로의 여정이 어떠할지 도저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왠지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살구주스 살구크림 살구오일 살구밤...

살구가 많이 나는 라다크에서는 고산의 건조함을 특히 살구씨 오일로 달랜다. 가볍고 산뜻한 에센스같았다. 작은 샘플을 써 보니 좋아서 다들 한보따리씩 선물로 사느라 바빴다. 그 중,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았던 것은 자연 그대로 토종 살구의 맛을 간직한 새콤달콤함, 앉은 자리에서 1키로는 우습게 해치울 수 있다. (나만 그런 거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이 날 아주머니 살구를 모두 사드려서 일찍 퇴근하셨다. 수줍게 좋아하셨다.



방금 화덕에서 구운 뜨거운 짜파티를 한 장 뜯어먹으면서 시내를 구경하는 호젓함, 순간 이것이 내가 서울에서부터 그 먼 거리를 날아와 있음을 단번에 잊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이때부터 현지인모드로 급전환했던 것 같다.

참 단순하게도 나는 남겨두고 온 모든 걸 잊었다. 텅 빌 정도로 아득하게 잊어버렸다.



내가 전에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듯, 꿈꾸는 것 같았다는 말을 한다.

정말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기에, 그나마 최선을 다해 표현한 게 요정도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내내 장자의 나비꿈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사람이 살면서 이런 꿈 한 번이면, 그 힘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좋았다. 좋았고 많이 힘들었다. 힘들었고 많이 좋았다.

이미 좋고 싫음으로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버린 여행이었다.


나는 그저 행복한 꿈 한 편을 진하게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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