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서울에 갔다. 코로나로 내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만으로 3학년을 마친 터다. 이제 4학년을 앞두고 당초의 꿈을 이루기 위해 휴학과 함께 학교 기숙사 고시동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450km 떨어진 부산 집에만 있더니, 오히려 휴학하고 학교로 돌아가게 된 사연이 구구절절 아이러니하다. 더욱이 딸이 다니는 대학은 신입생 전원이 1년 동안 인천 송도에서 생활하게 돼있어 만 3년 만에 꿈에 그리던 신촌캠퍼스 입성이 이루어지게 된 셈이다. 환호하라! Dreams come true!
대학에 합격만 하면 학교까지 데굴데굴 굴러서라도 가겠다며 기염을 토하던 딸이었다. 그 푸릇하던 새싹이 어느새 최고 학년 문턱까지 와 버렸으니. 3년째 이어진 코로나로 흘려보낸 시간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몰리다보니 차츰 편안해지다가 급기야 꼭 손해만 보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실은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남편과 나는 시시때때로 공허함을 느꼈다. 딸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경상도 사투리 쓰는 제 말에는 도무지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서울내기 친구들의 냉정함에 난생처음 투명인간이 되었다며 우울해 하곤 했다.
그런데 꼬박 2년의 유예기간을 얻을 수 있었으니, 준비되지 못한 이별의 아쉬움을 떨쳐내기에 충분했으며 어느새 당당함에 노련미까지 갖추게 된 딸은 그 어떤 삭막한 바람이 불어 닥치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코로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불현 듯,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생각난다. 감방에 갇혀 생활하는 일이 어떻게 슬기로울 수 있으랴! 하여 그 의미를 풀이해 보자면, 어차피 벌어진 일 그 안에서 나름의 방법과 길을 찾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는 초긍정 실용주의 처세를 뜻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지난 2년을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이라 이름붙이면 어떨까!
“부산에 내려올 일 별로 없을 거”라며 꽤나 야무진 자신감을 내비치며 당당히 둥지를 떠난 딸.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너의 모든 시간은 네 생애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 분명하다. 행복해라,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