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그다지 지지하고 싶지 않은 후보였다. 그러나 그의 패배가 곧 현 대통령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해석되기에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석패. 우선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회피, 부정의 심리가 발동되었다. 그러다 좌절, 슬픔, 고통… 결코 겪고 싶지 않은 폭풍 같은 감정들이 휩쓸고 갔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 5년 청와대와 여의도 정치에 무관심하리라. 아는 척, 관심 있는 척, 걱정하는 척하지 않으리.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으며 철저하게 무시하리라. 오히려 잘 되었다. 지난 5년 안타깝게 노심초사하던 마음을 훌훌 벗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책 읽고 공부하며 은둔 신공이나 연마하리라.
# 그의 패배가 확정된 선거 다음 날부터 힘든 일이 이어졌다. 첫째 동생네 가족들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차례로 아프기 시작했다.
또 지난주 기숙사에 입사한 딸에게서도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인후통에 두통, 열까지. 난생처음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심한 가위에 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4번이나 반복해서 전문가용 코로나 감염 검사를 받았지만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결정타는 막내 동생이었다. 다섯 살 터울이라, 자라면서 둘째보다 더 신경이 쓰였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재능이 빛을 보지 못해 늘 안타까웠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하던 그녀다. 그 동생이 디스크 수술을 하루 앞두고 무심하던 평소와 달리 “어떻게 살아야 되나. 뭘 그리 잘못했나.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 참 처참한 저녁이다”라는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바뀐 환경과 갑작스럽게 늘어난 공부 분량 때문이기도 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뜻한 대로 되지 않는 지난 인생에 대한 회한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각자는 이렇게 대선 다음 날 나름의 이유로 힘들었다. 그런데 그 힘듦과 아픔이 대선 패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 패배했던 지난 대선을 상기해 본다. 노무현의 죽음, 그 비통하고 원통한 심정을 안고 2012년 우리는 문재인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 탄압, 언론 탄압이 극에 달했던 그때, 스스로의 목숨까지 내걸고 승리를 간절히 기원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졌다. 그 밤, 나는 누군가 삶의 끈을 놓아버리지는 않을지, 시시때때로 가슴을 조여 오는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배고픈 이들에게는 밥이 되고, 아픈 이들에게는 약이 되며, 외로운 이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는 것이 희망이다. 희망만 있다면 배고픔도, 아픔도, 외로움도 이겨낼 수 있다. 어쩌면 대통령 선거가 우리들 모두의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희망의 성취로 축배를 들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희망이 빛을 잃어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은 하나가 아니다. 또 그 빛을 잃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삶 속에서 얼마든지 수많은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지난 우리의 경험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깊은 슬픔에 빠져 지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새 희망을 만들고 그 희망이 더 밝게 빛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코로나에 걸린 첫째 동생네 가족들은 이제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딸은 결국 코로나 확진을 받고 가까이에 있는 첫째 동생네 가족들의 돌봄을 받게 되었다. 막내 동생은 수술이 잘 되어 예정보다 퇴원이 빨라질 거라고 한다. 봐라!!! 희망은 벌써 우리 삶 속에서 새봄 새싹처럼 움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