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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날다 Mar 22. 2022

이제는 꿈도 꾸지 않게 된 밤

2022년 3월 20일

꿈속에서 나는 글을 쓴다. 펜을 들고 쓰는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문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떠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성싶다. 꿈속의 나는, 글이 꽤나 논리적이라며 우쭐하고 심지어 그 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빨리 기록해야겠다고 조바심치고 있다. 모든 것이 꿈인 줄  알면서 말이다.  


밥벌이에 모든 생각, 모든 시간을 뺏기고 있을 때였다. 성취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같은 일을 20년 정도 하다 보니 질릴 만도 했다. 그때부터 3~4년, 일을 그만둘 때까지 꿈은 단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평온했던 휴가를 마무리하기 위해 가족과 고기 외식을 막 시작하려던 찰나, 그 행복감을 전화 한 통이 낚아채 가고 말았다.


“A 씨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내일 출근해서 놀랄까 봐 미리 전화했어요!”


A는 나의 전임자다. 그는 꼬박 10년, 우리가 속한 기관에서 스피치라이터로 일했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나는 2년째 그의 글을 읽으며 고맙다는 생각을 해오던 차다. 가야 할 내 길 앞에, 먼저 걸어간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심되는 일이었으므로.  


사실, A를 알게 된 지는 12, 3년이 넘는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공공기관 홍보영상 제작 담당이었고 그는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용역사 기획자였다. 똑똑했고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곧 새로운 일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이후 우리는 일로든, 개인적으로든 만날 일이 없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몇 번, 소문난 맛집에서 한 번 정도, 우연히 부딪혔고 그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건넸던 기억이 전부다. 그런 그와 내가 같은 자리 선·후임자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관계가 달라졌다고 해서 우리 사이 거리가 좁혀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연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지게 될지, 알 수 없어 신기하게 느꼈을 뿐이다.  



글은 지문과 같다고 했던가. 글을 읽으면서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잘 보이지 않았다. 말하는 이의 스타일을 반영해 써야 하는 연설문의 특징 때문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간혹 행간에 숨은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그의 표정이 읽힐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쓰지만 내 글이 아닐 때,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한 채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시차가 있지만 나 또한 비슷한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떠났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의 날까지 그가 새 일에 몰두했던 시간은 2년여에 불과했다. 같이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할 것을,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예기치 않은 그의 죽음이 한때 나를 힘들게 했던 ‘꿈’을 상기시켰다. 그때 나는, ‘내 글을 쓰겠다’는 뜨거운 결심이 강박이 되어 꿈꾸게 된 것이라 생각했다. 일필휘지는 아닐지라도 때가 되면 눈물 몇 점은 찍어낼 수 있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버텨왔지만 그러지 못해 마음의 병이 된 것이라 여겼다.


돌이켜보면 질식할 것 같았던 일상의 버거움을 견디기 위해 마음속 작은 다락방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태하고 안일했으며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았던 나는 그 다락방을 텅 빈 채로 방치했고 언제부턴가 방의 존재조차 잊고 살아가게 되었다.


10년 이상을 알고 지냈지만 말 그대로 지인에 불과했던 그의 죽음이 불현듯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내 안에 방치했던 다락방의 존재를 아프게 각인시키며.  

아무리 큰 열정도, 아무리 잘난 재능도 몸부림쳐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흩어져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듯 살다 보면 오래지 않아,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을 쓰다듬으며 ‘내게도 꿈이 있었지’ 회한만 늘어놓는 노인의 얼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너무 이른 죽음으로 멈춰버린 그의 삶과 흘러가다 길을 잃어버린 나의 삶이 무엇이 다르냐고. 이제는 꿈도 꾸지 않게 된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삼가 A의 영면을 기원하며…….



나는 언어가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말,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 그러니 나에게서 어떤 새로운 말도,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 내가 가장 슬퍼해야 할 일이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 <슬픈 세상의 기쁜 말,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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