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시인이 원하던 것과 다르게 김치부침개를 부친 날
낭만에 대하여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에
아마도 이구동성으로 <가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그런데 낭만이 줄어드는 21세기라서 가을이 짧아지는 것인지,
가을이라 불릴 수 있는 계절이 짧아져서 낭만이 줄어든 것인지는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와 닮았다.
봄비가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과는 다르게 가을비는 우울하다.
추위가 덮칠 것이라는 몸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날이 궂은날은 예부터
기름 냄새로 우울을 낭만으로 바꾸었었다.
기억이 낭만을 부르는 손짓으로 김치전을 부쳤다.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집에서 창문을 열고
비를, 빗소리를 듣는 한가로움이
그리움은 불러왔다.
”나에게 레몬을 / 노천명
하루는 또 하루를 삼키고
내일로 내일로
내가 걸어가는 게 아니오 밀려가오
구정물을 먹었다 토했다
허우적댐은 익사를 하기가 억울해서요
악이 양귀비꽃 마냥 피어오르는 마음
저마다 모종을 못 내서 하는 판에
자식을 나무랄 게 못되오
울타리 안에서 기를 수는 없지 않소?
말도 안 나오고
눈 감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소
꿈 대신 무서운 심판이 어른거리는데
좋은 말 해줄 친척도 안 보이고!
할머니 내게 레몬을 좀 주시지
없음 향취 있는 아무거고
곧 질식하게 생겼소
사슴이라는 시로 중학생 때 알게 된 노천명 시인의
오래된 시 하나를 꺼내어서 감상한다.
시인은 레몬을 원했는데
나는 부침개의 기름 냄새로 대신했다.
부침개에 막걸리를 곁들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풍류?를
기억하지만 막걸리는 없는 관계로
맥주 한 캔을 곁들인다.
양파와 기름이 불을 만났을 때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냄새가 나고,
김치와 기름이 불과 만났을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냄새가 난다.
둘 다 비와 어우러지면 한껏 낭만을 부추긴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기지개도 켜기 전에 질식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