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하는 일은 언제나 버겁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에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도
매 학기 평가 기간이 되었을 때마다 몸살처럼 열이 난다.
그나마 학생들의 평가야 내 과목 하나 정도의 평가가
상대방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결정타는 아니라
열이 나는 정도에서 쉽게 털고 일어나는데
한 사람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취업을 결정하는 평가는 훨씬 더 마음이 무겁다.
삼킬 수 없는 무엇인가가 목에 걸린 듯한 기분과 만난다.
그렇게 어렵지만 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기에
오늘도 역할을 무사히 해냈다.
언젠가 읽었던
나희덕 시인의 <삼킬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나는 지금처럼 여리지 않았었던 것일까?
전쟁에서 싸우는 군인만큼 용맹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때라
삼킬 수 없는 것은 <가시> 하나라고 생각했다.
말, 침, 밥, 물은 아주 잘 삼켰고,
슬픔, 분노도 꾸역꾸역 삼켰었다.
이상한 일은
한 해를 더 살아낼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약해지는 것이다.
몸만 약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도 약해지고 관념도 허물어지는데,
삼킬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늘었다.
누구나 다 그럴까?
”삼킬 수 없는 것들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 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서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나희덕 시인의 야생사과에서 발췌
어느 한 날,
어쩌면 삼킬 수 있는 것보다,
삼킬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아질 날이 올 수도 있다.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을 더 치열하게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