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투르니에의 글이 떠올랐고, 공감했고, 반성한다.
금요일의 저녁을 조용하게
혼자 책 읽기, 영화 보기, 글쓰기와 같은 행위로 변한 후부터
집안일을 금요일 저녁에 시작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제 갑작스럽게 영하 2도를 체험한 후
추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을 했고
오늘 저녁에 집을 뒤집어엎는 중이다.
옷장 정리는 1년에 두 번 하는 정기 행사다.
정기 행사 때마다 발칵 뒤집힌 집의 이곳저곳을 바라보면서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짧은 글 긴 침묵>에서
한 문단을 떠올린다.
”가끔 나는 그만 걷어치우고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팔아버리자.
모두 작파해 버리자.
엄청나게 쌓인 이 허접쓰레기들을,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나의 모든 습관을 버리자.
그리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아카데미 콩쿠르에는
일생 동안 줄곧 그런 식으로 살아온 친구가 둘 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정성을 다하여
집을 장만하고는 꾸미고 또 꾸민다.
새집을 위해서라면
너무 아름답다거나 너무 비싸다거나 너무 힘들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막상 그 걸작품이 마침내 완성되면
그들은 벌써 딴 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눈에 집은 매력을 잃은 것이다.
바쟁이 그렇고, 프랑스와 누리시에가 그렇다.
나는 브르타뉴 절벽가에 밭을 하나 가지고 있다.
매일같이 밀물과 썰물이 들고나면서 모습을 바꾸어놓는다. “
-미셀 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에서 발췌
과감한 결단력이 매 순간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미루고 미루다가 더 밀려날 자리가 없을 때가 되면
돌변해서 아주 짧은 시간에 문제해결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
이사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생태적으로 터득할 그런 습관을
한 번 터 잡으면 쉽게 자리 옮김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할 때까지 미루는 듯하다.
후자에 속하는 나는
이제 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은 지점에 이르렀다.
오늘은 맛보기처럼
부분적으로 옷장 정리와 책 정리를 했다.
소유욕을 버리지 못하여 정리할 때마다
버리는 쪽으로 가는 물건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게
문제로 보면 문제다.
집작, 물건에 대한 집착이 물건을 쌓아놓는다.
죽는 순간에는 모두 버리고 갈 물건이라는 걸 알면서도
알면서도 끝까지 부둥켜안고
이런저런 이유의
불편한 만족을 즐기는 이 습관은 언제쯤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