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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그리고 구름 문

시와 조각이 서로 비슷한 관념을 건드릴 때 예술이 주는 힘을 다시 느낀다

by 코코넛


누구나 다 잠든 이후부터 깨어났을 때 사이에서 꿈의 형태로

인지하는 이야기나 장면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보통 꿈꾸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꿈을 꾸는 일이 극도로 적은 편에 속하는데,

오늘 아침 깨어났을 때는 꿈이 하나가 아닌 두 개나 생각났다.

두 번 다른 꿈을 꾸었던 것인지

꿈의 부분이 사라져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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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의 구름 문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 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한용운



꿈의 하나는 기차를 탔는데 기차의 첫 칸이 아닌

두 번째의 칸에 들어갔다.

그 칸은 일반 기차와 다른 구조, 즉 방과 비슷한 구조의 기차였다.

침대 하나와 이 인용 소파, 그리고 그 사이에 탁자가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탔으므로 나는 침대를 선점했다.

뒤이어서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가 탔고

꿈에서 잠들었다가 음식 냄새, 부침개를 지지는 냄새와

고기를 굽는 냄새로 잠에서 깨어났을 땐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모르게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여고 동창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얼추 동창이라는 생각만 떠오른 상태라

어설프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기차는 멈추었고 세 여자는 모두 내렸다.

혼자 기차에 남겨진 꿈인데,

길몽일까? 흉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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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의 구름 문


또 하나의 꿈은 서사가 생각나지 않고

윗니 두 개가 곧 빠질 듯이 헐거워서

손으로 이를 밀어 올려보는 이미지였다.

앞에서의 꿈과 이어진 꿈이었는지 다른 꿈이었는지 모른다.

꿈이 기억나는 일이 드물어서 기분이 이상했던 아침이다.

특히 이가 빠지는 꿈은 윗니는 가족 중 윗사람이

아랫니는 아랫사람이 죽는 꿈이라는 이야길 들었던 터라 기분이 더 묘했을 수 있다.


What you see is not what you get - Anish Kapoor


위의 구름 문은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시각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유의 경계가 확장되고 관념의 너머로 이어지는 세계를 추론하는

경험을 했으므로 좋아하는 작가다.


한용운 님이 스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의 시를 감상했을 때와

그가 스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 감상에서의 차이는

대상, 즉 타자에 대한 생각이 아닐까?

구름의 문과 나룻배와 행인에서 받은 인상에서 닮은 부분이 많아서 함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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