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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이 예민해진 날

무던한 감각이 아닌 예민한 감각으로 밤을 맞이할 때의 예술은?

by 코코넛


빨간색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춘 참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도는 한가한데 차도는 분주한 도심의 이미지가 지루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운전대에 몸을 밀착시키다

<빵> 클랙슨이 울려서 깜짝 놀라 당황했고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져서 차가 앞으로 가는,

아주 찰나였는데, 진땀이 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신호등은 바뀌었고, 정상적으로 운전했다.


안정을 찾은 후에, 이런 식으로 사고가 발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의 짧고 강렬했던 잔상이 언젠가 팝아트의 어원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왈가불가하는 통에 봤던 작품이 생각난 김에 다시금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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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파울로지의 콜라주 <나는 부자의 노리개였다 I was a rich man’s play – thing.>



주변인들과의 대화는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서

주고받는 말이 제한적이고 비슷비슷할 때가 많아서

혼자가 된 시간에는 시 한 편 골라서 감상하고, 그림 한 점 꺼내보고,

음악을 듣고,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유가

만남에서 채우지 못한 상상의 공간이나 개념의 확장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잠재된 생각을 꺼내기 위한 시도일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든 그 스스로 완성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대양의 일부다.

흙덩이가 바다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어떤 높은 곳이 바다에 잠겨도 마찬가지니라.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느니.


- 존 던 John D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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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파울로지의 콜라주



얼떨결에 누른 클랙슨이 아주 잠시지만 도파민이 팡 터질 만큼

나를 당황하게 했으므로 이상하게 이 밤은

종, 팝, 울림과 같은 청각에 예민해진다.

이 고요한 밤에 예술이 존재하므로 나는 풍족함을 느낀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다채로운 생각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예술과의 조우에서 시작되므로

예술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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