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가슴을 활짝 열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자
봄볕, 화사하게 내려앉는 햇살은
몸을 단단하게 굳히던 긴장을 풀어헤쳐서 나른하게 만든다.
어쩌면 유리창의 마법일 수도 있다.
햇살은 밝고 화사하지만 여전히 쌀쌀함을 품고 있는데
유리창이 쌀쌀함을 잘라낸 후 따스한 굴절을 더하고 곱해서
내 몸 구석구석으로 번지게 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한 현상을 나는 유리창의 마술로 보았다.
나는 슬그머니 창가에서, 책상 앞에서 벗어나
햇살이 침입하지 않는 구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무의식적으로 넓은 장소를 욕망했는데,
넓은 장소가 필요하지 않음을 새삼 인식했다.
이 계절은 유리창에서 떨어진 장소에서 책을 읽어야 집중력이 높다.
마키우나스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내 의견과 다른
문장이 보여서 옮겨본다.
나의 말보다는 조지 오웰의 말을 들어보면
작가들이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이기적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다지 심각하게 이기적이지 않다.
대략 나이 서른 살이 넘으면 그들은 개인적인 야심을 포기한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개인이라는 생각 자체를 포기한다.
그리고 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거나, 혹은 힘든 노동으로 찌들어 간다.
그렇지만 소수의 재능 있고 고집 센 사람들이 있어서 끝까지 자기 인생을 살려고 하는데,
바로 작가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작가들은 마치 어두운 방을 비추는 촛불 같다.
먼 곳까지 은은한 빛으로 감싸지만, 손으로 그 불을 잡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밀턴이든 러셀이든 디킨스든 너무 가까이 있으면 다치고,
너무 멀어지면 조명 범위에서 멀어져 어둡게 지내야 한다.
그들의 인생을 읽고, 그 큰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들을 알게 되면,
하늘의 별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이 땅에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 별들의 중력장 안에 있어서
산산조각이 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
-김민성의 영국 문학기행 2(소설가의 길을 따라)에서 발췌
마키우나스
개체가 드러나지 않을 때는 어둠이고
개체가 드러나는 때는 빛이 있는 낮이기에
조지 오웰의 문장은
그 시대의 사회가 밤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자연이 기지개 켜는 소리와 움직임이 이곳저곳에서 감지되므로
나도 새로움을 흠뻑 흡수하기 위해 기지개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