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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21. 2024

비와 영화가 데려온 이야기


넷플릭스에서 <10억>이라는 영화를 시청했다. 

오징어 게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고, 

게임을 주최한 사람의 증오와 포기가 부른

복수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천할 만한 선택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 사람의 사람에 대한 절망이 

삶의 파괴로 이어진 점을 이해할 수 있어서 울컥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성적으로 평가받은 학창 시절이나 그 이후 사회생활 역시 

서바이벌 게임에 가까운 여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눈에 보이는 선명한 악의도 없고, 

잔인한 그림은 없지만 

평가해서 등수를 정하고, 뽑는 모든 게임은 

서바이벌 게임이므로 

우리는 태어난 이후 지속적인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닐까? 




잊고 살았던,

삶은 크고 작은 서바이벌 게임의 연속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영화다. 


오징어 게임보다 한 수 위의 

이야기 구조라는 개인적인 생각.




”그들의 절망감은 그들을 공포로부터 건져 주었고, 

그들의 불행에는 좋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그들 중 누가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 본인은 그것을 깨달을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리된 것이었다. 

눈앞에 있지도 않은 그림자 같은 존재를 상대로 

계속해 온 지나간 마음속 대화로부터 끌려 나오는 즉시 

그는 다짜고짜로 가장 무서운 침묵만이 전부인 

흙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이었다. 

그는 앞뒤 뒤돌아볼 시간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발췌



해가 숨었던 날이라 비가 그쳤는지 내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소리에 집중하거나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아야만 했다. 

자주 창밖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창밖을 보면서 빗물이 나뭇잎에 떨어지는 순간 출렁이는 나뭇잎이 

마치 빗줄기가 피아노 건반이 누르는 듯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져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9번의 곡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연상 작용은 모차르트의 곡을 넘어서 

모차르트가 자주 갔던 숲, 빈 숲의 풍광까지 이어졌고, 

빈 숲에 있는 수도원에서 며칠 묶었을 때의 기억까지 

한꺼번에 밀려와 책 읽기를 중단했었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문장 장면을 완전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해서 

나의 문장이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는 말의 발걸음, 

그 자체와 딱 들어맞는 보조를 갖추게 되는 때에야 

비로소 나머지가 더욱 쉬어질 것이고 

특히 처음부터 떠오르는 환상의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아마도 <모자를 벗으시오!>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발췌




정확히 몇 년 전이 었는지의 기억은 흐릿한데

나는 빈 숲 속의 수녀원에서 묶었던 시간 속의

장면 하나하나는 모두 기억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시던 신부님이

그 수녀원에서 매일 미사를 해 주시면서 머무시던 수녀회였다.

신부님의 초대로 아들과 나는 그곳에서 머물 수 있는

행운을 누렸었다.



바람 소리가 유난히 맑고,

잠에서 깨어난 아침에 새들의 합창이 유쾌해서,

수녀님들의 요리가 정갈해서,

수녀원 내에 있는 십사처를 돌면서 묵상한 시간들은

내 생애에서 최고의 순간들 리스트에 있다.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




천재는 환경이 만들어낼 수 있음을,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그러므로 존재 자체로

사소하게 여기는 먼지까지도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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