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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20. 2024

기억 속에서 나온 그녀와

오래전 일이 된 기억 속의 그녀가 오늘 전화해서 만났다.




비는 노래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데 말이 채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의 입술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내리는 비. 

이 비를 닮은 인연도 있다. 

끊어진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듯 이어진 것도,

아닌 채로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가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젠 제법 오래전 일이 된 기억 속의 그녀가 전화해서 

시간이 되면 만나자고 했다. 


반가웠다.


그녀와 나는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했던

<여성 인재 리더십 연수, 3기>에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30명 중의 한 명이었다. 


생각이 닮은 사람, 

혹은 꿈꾸는 방향이 같은 사람은 

이처럼 여러 명 가운데서도 서로를 알아보고, 

또 자주 만나지 않아도 각자의 일터에서, 

삶에서 밭을 일구는 마음으로 살다가 만날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녀와 나의 만남이 그랬다.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우리는 유리창이 큰 강변의 카페에서 커피잔과 케이크를 사이에 놓고 

안락한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이야기보따리를 서로 풀었다. 

내리는 비는 찬조 출연한 배우처럼 

이야기의 소강상태가 잠시 생겼을 때마다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면 

창 안을 기웃대다 부딪쳐 주르륵 미끄러지는

비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 뒤틀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고, 

사람마다 걷는 버릇이 다르듯이 느끼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보는 방식이 다른데 

그것을 고치려 한들 쉽게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고치려다가는 다른 부분까지 이상해져 버린다고 말이야. 

물론, 이건 아주 단순화한 설명이고, 

그런 건 우리가 품은 문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난 어쩐지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어. 

우리는 분명 자신의 뒤틀린 부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라. 

그래서 그 뒤틀림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뇌를 자기 내면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그런 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여기 들어온 거야. “


-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발췌



오전 11시 20분에 만나서 오후 4시에 헤어졌으니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셈인데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았다.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이 맞아서였다. 

종일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비처럼 

우리도 카페를 나와서도 잠시 더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니, 

헤어진 이후로도 완성하지 못한 작품처럼, 

이야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서 

몇 번이나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만난 것이라 

더 이야기에 집중했을 수도 있다.




자주 만나고 살지는 않지만,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만나면 편안한 사람, 만나면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만남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다. 

오래 그리고 길게 그 사람의 향기를 맡기 위해서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 서두름이 끼어들면 

사람의 향기는 맡지 못한 채로 일정을 소화하는 듯한, 

일의 연속인 듯한 관계가 되기 쉽다. 



”기억이란 참 이상하다.

실제로 그 속에 있을 때 나는 풍경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딱히 인상적인 풍경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열여덟 해나 지난 뒤에 

풍경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


-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발췌




오랜만에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린다. 

내가 연재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너무 취해서일까? 

아니면, 미련둥이처럼 찔끔찔끔 눈물 흘리듯이 내리는 비의 영향일까? 

이 비가 그치면 더위도 물러간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니, 


이래저래 아쉬울 수 있는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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