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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22. 2024

소소한 갈등으로 싱숭생숭

선택 앞에서 이성과 감정이 대치했으나 이성이 이겼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자

차분함이 깃들었으므로

오늘 하루, 

무의식을 지배했던 갈등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마음을 따르는 게 순리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오늘 순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역행했으므로 

마음에 찌꺼기처럼 미련과 아쉬움과 닮은 게 쌓였다. 

가고 싶었던 장소, 자리에 가려던 마음을 접은 

순간의 선택은 감정이 아닌 이성에 의해서다. 

도서관으로 가는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PPT 자료를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오늘은 수업 자료를 완성했다. 



가고자 했던 곳으로 가지 못한 아쉬움이 

<순리와 역행>이라는 단어를 틈틈이 꺼내 보게 했다. 

두 단어는 상반된 듯한데, 

들여다볼수록 <동전>처럼 한 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감성을 따르면 이성에 역행하는 것이고 

이성을 따르면 감성에 역행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으므로 

이런 소소한 생각을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른다.




“순수 인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나는 인식하기 위해 믿는다>라는 

말에 요약된 교육 철학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입니다. 

신앙은 인식의 기관이며, 지성은 제2의 존재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무전제적 과학은 단지 신화에 불과합니다. 

하나의 신앙, 세계관, 이념, 즉 하나의 의지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으며, 

이성은 단지 그것을 논평하고 증명할 따름입니다. 

언제 어느 경우라도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증명하려고 했는가입니다.”


-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발췌



감정을 누르고 이성이 나를 지배한 덕분에 

오늘 해야만 할 일을 완벽하게 모두 해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갈팡질팡하던 오전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어쩌면 감정에 따른 선택을 했었다면 

아름다운 시간,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졌을 듯했으나 

다음 주의 준비에 미흡함이 많았을 게 뻔히 보이니 

잘한 선택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참석하지 못한 모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이야기로 풍성했을지 상상하고, 

궁금해하면서도 차마 묻지 못한다. 

자존심도 아닌 이상한 <오기> 아니면 

전화 한 통 받지 못한 <서운함으로 삐친> 

못난 감정이 나를 떠나지 않고 마음의 저변에서 맴돈다.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고

어서 빨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으면 했었는데, 

덥다고 아우성치던 시간은 순식간에, 

몇 시간 전에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촉감이 민감해서 빨리 느끼고 빨리 잊는 것인지, 

불과 어제까지도 그 더위의 촉감이 선명했는데, 

이상하게 더운 촉감을 모두 잊어버렸다. 

더웠었다는 느낌만 기억에서 지우지 않은 채로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느껴서 차렵이불을 꺼냈다. 



“기다리는 사람은 시간이 길다고 한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이야말로 시간을 짧게 만든다고 할 수도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긴 시간을 긴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지 않은 채 마구 삼켜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소화기관이 받은 음식물을 영양분으로 바꾸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하는 대식가와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이 

인간을 강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기다리기만 하고 지낸 시간은 

인간을 늙게 만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


-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발췌




어렸을 때는 무작정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정말 기다리기만 하는 일, 

그땐 어려서였을까? 그런 기다림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그러한 종류의 기다림은 한 적이 없다. 

기다려야 할 경우, 항상 책을 읽거나 무언가에 몰입해서 

기다린다는 자체를 잃어버린 채 기다렸다. 

어른이 되었다는 일이 

기다림 그 자체에 온전히 몰입하는 그런 순수?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걸 거는 단순함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올인>을 할 수 없다. 

실패할 때를 위해, 남겨두는 습관이 생겼다.



어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기온으로, 

차렵이불을 꺼낸 것은 서두름일 수 있지만,

가을이 이미 도착했음을 피부로 느꼈기에

나는 가을을 만남 것이다.

저녁을 지으면서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봤을 때

나의 이웃인 나무들은 나와는 달리, 

나뭇잎에 아직 가을을 묻히지 않았다. 


우리 집 뒷산의 나무들은 나를 닮지 않아서 느긋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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