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소한 갈등으로 싱숭생숭

선택 앞에서 이성과 감정이 대치했으나 이성이 이겼다.

by 코코넛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자

차분함이 깃들었으므로

오늘 하루,

무의식을 지배했던 갈등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마음을 따르는 게 순리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오늘 순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역행했으므로

마음에 찌꺼기처럼 미련과 아쉬움과 닮은 게 쌓였다.

가고 싶었던 장소, 자리에 가려던 마음을 접은

순간의 선택은 감정이 아닌 이성에 의해서다.

도서관으로 가는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PPT 자료를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오늘은 수업 자료를 완성했다.


%EB%8F%84%EC%8B%9C%EC%9D%98%EB%B0%A4.jpg?type=w1


가고자 했던 곳으로 가지 못한 아쉬움이

<순리와 역행>이라는 단어를 틈틈이 꺼내 보게 했다.

두 단어는 상반된 듯한데,

들여다볼수록 <동전>처럼 한 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감성을 따르면 이성에 역행하는 것이고

이성을 따르면 감성에 역행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으므로

이런 소소한 생각을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른다.




“순수 인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나는 인식하기 위해 믿는다>라는

말에 요약된 교육 철학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입니다.

신앙은 인식의 기관이며, 지성은 제2의 존재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무전제적 과학은 단지 신화에 불과합니다.

하나의 신앙, 세계관, 이념, 즉 하나의 의지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으며,

이성은 단지 그것을 논평하고 증명할 따름입니다.

언제 어느 경우라도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증명하려고 했는가입니다.”


-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발췌


%EA%B0%80%EB%A1%9C%EB%93%B1.jpg?type=w1


감정을 누르고 이성이 나를 지배한 덕분에

오늘 해야만 할 일을 완벽하게 모두 해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갈팡질팡하던 오전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어쩌면 감정에 따른 선택을 했었다면

아름다운 시간,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졌을 듯했으나

다음 주의 준비에 미흡함이 많았을 게 뻔히 보이니

잘한 선택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참석하지 못한 모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이야기로 풍성했을지 상상하고,

궁금해하면서도 차마 묻지 못한다.

자존심도 아닌 이상한 <오기> 아니면

전화 한 통 받지 못한 <서운함으로 삐친>

못난 감정이 나를 떠나지 않고 마음의 저변에서 맴돈다.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고

어서 빨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으면 했었는데,

덥다고 아우성치던 시간은 순식간에,

몇 시간 전에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촉감이 민감해서 빨리 느끼고 빨리 잊는 것인지,

불과 어제까지도 그 더위의 촉감이 선명했는데,

이상하게 더운 촉감을 모두 잊어버렸다.

더웠었다는 느낌만 기억에서 지우지 않은 채로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느껴서 차렵이불을 꺼냈다.


%EB%8F%84%EC%8B%9C%EC%9D%98%EB%B0%A41.jpg?type=w1


“기다리는 사람은 시간이 길다고 한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이야말로 시간을 짧게 만든다고 할 수도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긴 시간을 긴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지 않은 채 마구 삼켜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소화기관이 받은 음식물을 영양분으로 바꾸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하는 대식가와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이

인간을 강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기다리기만 하고 지낸 시간은

인간을 늙게 만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


-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발췌




어렸을 때는 무작정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정말 기다리기만 하는 일,

그땐 어려서였을까? 그런 기다림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그러한 종류의 기다림은 한 적이 없다.

기다려야 할 경우, 항상 책을 읽거나 무언가에 몰입해서

기다린다는 자체를 잃어버린 채 기다렸다.

어른이 되었다는 일이

기다림 그 자체에 온전히 몰입하는 그런 순수?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걸 거는 단순함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올인>을 할 수 없다.

실패할 때를 위해, 남겨두는 습관이 생겼다.


%EB%8F%84%EC%8B%9C%EC%9D%98%EB%B0%A42.jpg?type=w1


어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기온으로,

차렵이불을 꺼낸 것은 서두름일 수 있지만,

가을이 이미 도착했음을 피부로 느꼈기에

나는 가을을 만남 것이다.

저녁을 지으면서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봤을 때

나의 이웃인 나무들은 나와는 달리,

나뭇잎에 아직 가을을 묻히지 않았다.


우리 집 뒷산의 나무들은 나를 닮지 않아서 느긋한 듯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와 영화가 데려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