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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23. 2024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의 시간

현실과 비현실, 초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시간과 마주했다.




고요, 적막, 

오늘 하루를 여는 시작점엔 

새들의 노래도 바람이 나뭇잎과 희롱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매일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상했다. 

청각에 문제나 있는 것일까? 의심하던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일어나서 들은 첫소리가 벨 소리였다. 

비현실에서 현실로의 귀환처럼 통화버튼을 눌렀다. 


내일의 일정을 변경하고 통화가 종료된 후 

잠시 창문을 열고 뒷산을 응시했다. 

날아다니는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새의 세상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모두 그 장소로 이동했을까? 

상상하면서 바람이 서늘해서 창문을 닫았다.


집안 환기를 위해서 창문을 열어놓는 시간이 짧아지는 간절기의 시작이다.



갑자기 들리던 소리가 순식간에 모두 사라지고 보이던 것이 안 보였던, 

오전의 생경한 경험이 불러온 생각이었을까? 

<죽음>은 어쩌면 오늘 아침에 느꼈던 것처럼 당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경험자가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에 삶의 종착지에서 

다른 세상으로 첫발을 디딜 때의 느낌은 

버스나 기차, 비행기와 같은 이동 수단을 탔을 때 만나는 

풍경의 변화처럼 펼쳐질까?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그 순간이 궁금했다.




“현실과 비현실의 독특한 어우러짐, 

무한정 늘어나고 줄어드는 자유로운 시간 같은 것이, 

우연과 알 수 없는 힘에 휘둘리는 부조리한 삶의 현실을 포착하는 

한 방법이었음이 보인다.”


-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시골 의사에서 발췌



<유체이탈>처럼 죽음은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기억은 지속되는 것이기에 기억에서만 사는 존재가 된다. 

남겨진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사는 게 아닌 

당사자의 기억에 갇혀서 사는 미립자? 

이 지점에서 나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가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고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가 통화하는 이야기가 

내 몸을 지나간 듯한 전율. <웃음>




초현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그 작품 속에는 세 개의 시계가 등장한다. 

시계들은 하나같이 늘어져서 

하나는 나뭇가지에 늘어진 시계가 빨래처럼 널려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얼굴 중 눈 바로 밑 부분에 널려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책상의 모서리로 보이는 입방체의

윗면에서 세로로 바뀌는 모서리에 널려있다. 

시계가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세 개의 시계는 모두 같은 시간으로 보인다.



내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바로

시계가 녹은 듯한 형태에 있는 게 아니라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에 있다.




하얀 절벽이 보이는 바닷가가 배경이라 

시계가 상징하는 의미가 더 내 상상력을 자극했던 작품이다.

사람은 바닷가에 앉아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앉아있으니, 

시계가 녹아서 휘어진 채로 볼에 걸쳐 있는 부분은 

바닷가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작가의 시간일 듯했다. 

사물의 시간과 작가의 시간 그리고 자연의 시간이 일치하려면 

어떤 상황이어야 할까? 

반복해서 감상했어도 풀리지 않은 숙제다.




“나는 부엌문을 두드릴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멀리서 귀 기울이고 있다. 

그저 멀리서 선 채로 귀 기울이고 있다. 귀 기울이다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깜짝 놀랄 그런 형세는 아니다. 

멀리서 귀 기울이고 있는 까닭에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오직 가벼운 괘종시계 소리 한 가닥만 들린다. 

아니 어쩌면 그저 듣는다고 믿는다. 

저 유년의 나날에서 들려오는 시계 소리를. 

그 밖에 부엌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들이 내게 감추는,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의 비밀이다. 

문 앞에서 오래 망설이면 망설일수록 그만큼 더 서먹해지는 법, 

지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한테 무얼 묻기라도 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나 역시도 자기 비밀을 감추려는 사람 같지 않을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시골 의사에서 발췌



현실과 비현실, 초현실에서 오래 머무른 날이다. 

생각의 지평이 초현실까지 넓어진 날은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살바도르 달리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한 형이 환생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랐으니, 

초현실주의가 된 배경이 명확하게 보이는데, 

나는 명확하게 초현실주의자로 분류할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도

가끔 이렇게 초현실에 거주한다. 

매일 이처럼 시간을 들락날락하면 뼈만 남을까?


오늘과 같은 날은 

의식과 무의식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고다. 

안경알이 깨졌을 때 

조각난 부분마다 다른 걸 볼 수 있는 풍경과 닮았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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