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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8시간전

줄을 놓자마자 날아가는 풍선처럼


귀갓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장착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핸드폰에서 이런저런 정보 수집을 하거나

영상을 보거니 게임을 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할 것인지 

아이디어도 없고 의지가 없는 날이 

일 년에 몇 번 발생한다. 

그런 날은 생각 없이 멍하니 시선을 허공에 두고 

앉아있다. 




뒤돌아 보니,

이십 대 때는 시간 낭비 같아서 애면글면 속을 끓이면서 

자유를 지옥으로 만들기도 했었고 

삼십 대에는 그런 시간조차 느끼지도 못한 채로 기계처럼 움직였고, 

사십 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런 시간을 자유로 인식하고 즐기게 되었다.




성장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성장이 멈추는 나이도 사람마다 다르다. 

노화는 질병이라는 말을 의사들이 직접 하는 이 시대에는 

성장 속도가 느린 사람에게 더 유리한 시대, 

즉 호기가 왔음을 알려주는 말이 아닐까? 

시대를 잘 만난 사람들이 있다. 

어떤 시대에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누군가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되고 

누구는 너무 앞서가서 몰매 맞고 

또 누군가는 시대에 뒤처져서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 

노화가 질병이라는 관점에서 성장 속도가 느린 사람은 

21세기에 어울리는 사람이겠지? 


기분이 좋다. 


나는 성장 속도가 느렸기에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자라는 과정에서 노화는 어렵지 않을까? 

성장이 멈추면 그 순간부터 노화나 퇴화가 시작하는 것이니 

성장 속도를 굳이 빠르게 해서 

빨리 성장하고 멈추는 일은 분명 불리하다. 



차창 밖에서 가로로 늘어지는 풍경, 

제 모습을 상실하고 색의 덩어리로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든 생각이다. 


성장이 빠르다는 말은 속도가 빠르다는 말과 동일시할 수 있으므로 

차창에 잠시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풍경을 

사람에게 적용했을 땐 성장이라고 봤을 뿐이다. 

빠른 속도는 제 형태를 온전하게 지키기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는 

꼭 사물이나 자연에 국한된 게 아닐 수 있다. 




피어난 것은 모두 진다.

풍선 끝에 이어진 줄을 손에 쥔 것처럼 시간을 꽉 잡았다가

손을 펴는 순간 날아가는 풍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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