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가져가서 읽고 느끼기 좋았던 맑은 날
소풍 가기 좋은 날이라 느껴서 커피와 과자, 사과만 챙겨서 나왔다.
운전 중에 도시락도 가져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마트에 들러 아예 김밥도 한 팩 산 후 공원으로 갔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차장이 혼잡을 빚었다.
한강과 나란히 흐르듯이 보이는
자전거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모여있는 무리를 구경할 수 있으면서
사람들 눈에 덜 띄는 자리,
나무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맨 끝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나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풍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정석인 양
혼자인 사람들은 야외 대신에 실내로 숨어들었나 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함박웃음이다.
웃지 않는 사람의 표정에도 즐거움이 묻어있다.
행복한 사람을 보면 나도 따라 행복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행복은 전염성이 강한 감정일 듯하다.
야외에서 글을 쓸 계획을 하고 노트북을 가져갔지만,
노트북을 켜지 않고 대신
오은 시인의 시집인 <없음의 대명사>를 펼쳤다.
시집의 두 번째 시인 <그곳>을 필사하는 이유는
<이곳>이 <그곳>으로 기억하는 날, 그날의 기억을 위해서다.
그곳
그곳이라고 불리던 장소가 있었다. 누군가는 거기라고 했다가 혼쭐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짜 거기로 가면 어쩌려고 그래? 뼈 있는 농담이 들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더라? 우리는 만났지, 인사했지, 함께 있었지, 어떤 날에는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했지, 죽자 살자 매달리기도 했지, 죽네 사네 울부짖었을 때 삶보다 죽음이 앞에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그곳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
너나없이 그곳을 찾던 때가 있었다. 만날 때마다 너와 나는 선명해졌다. 다름 아닌 다르다는 사실이, 같은 취향을 발견하고 환호하던 때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는 가까워졌다. 어쩜 잠버릇까지 일치하는지 몰라, 네가 말했을 때 너도 나도 흠칫 놀라고 말았지. 우리 사이에는 고작 그것만 남아있었다. 내 앞에 네가 있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났다. 내남없이 갔어도 내가 남이 되어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져도 이냥저냥 살아갔다. 체면은 삶 앞에서 이만저만하게 구겨지기 일쑤였다. 이러저러한 사연은 이럭저럭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쿵저러쿵 뒷말만 많았다. 이심전심은 없고 돌부리 같은 감정만 웅긋중긋 솟아올랐다. 삶의 곁가지에 울레줄레 매달린 건 애지중지하는 미련이었다.
아무도 그곳을 부르지 않아서
그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소풍장소로 선택한 한강 공원에 혼자 온 적이 이전에는 없었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나누고 음식과 음료를 나누었었는데,
오늘은 혼자다.
혼자라서 시집을 펼칠 수 있었고
혼자라서 말장난처럼 이어지는 시에서 커다란 울림을 듣는다.
장난처럼 가볍게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오은 시인의 시가 나는 좋다.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므로
내가 보유한 시집의 장르 역시 다양하다.
다만, 오늘 같은 날은 오은 시인의 시가 친구가 되면
훨씬 가볍게 시간을 즐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오늘의 소풍이 언젠가는 오늘 읽은 시처럼
<그곳>이라는 대명사로
혼자 즐긴 모든 걸 기억해 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