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다시 읽었다.
국가 공휴일인 국군의 날이면서
10월의 첫날,
하늘은 흐렸고 나는 외부 일정이 없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오늘과 어울릴 책을 꺼내서 다시 읽었다.
”일벌들은 각자 냄새의 개울을 따라가면서
꽃 속에서 자외선 문양을 찾고,
뒷다리 위 바구니에 꽃가루를 가득 채운 다음 길을 찾아서,
취하고 무거운 몸으로 날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벌들은 무슨 역할을 할지 어떻게 아는 걸까?
그토록 작은데. “
-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에서 발췌
국군의 날이라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관한 소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다시 꺼내 본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이런 연상작용에 의한 행동은
어렸을 때의 교육 효과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생은 전쟁이라는 혼돈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했던 다수의 영화와 뉴스와 소설이 있었는데
대부분 충격과 공포와 잔인성이 많았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잔인한 장면보다는
혼돈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배려와 친절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따스한 이야기라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 전쟁 영화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동막골 사람들>인 것으로 미루어보더라도
나는 체질적으로 잔인한 장면의 노출이 많은
시각물을 꺼리는 듯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고생하는
많은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기도로 대신하고
흐린 하늘을 잠시 감상한 후 종일 책을 읽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가운데에서도 지키려고 하는
인간적인 자세를 다시 읽으면서
무엇을 먹을 가로 갈등하곤 하는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주린 배를 채우는 상태만 되어도 황홀할 수 있는데,
욕심꾸러기처럼
집 안에 먹을 것을 잔뜩 쟁여놓고도
매일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은 끊기 어렵다.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도
색다르게 먹으려는 시도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욕망일까?
아니면 태생적으로 먹는 걸 좋아해서일까?
오늘도 역시 메뉴를 고민하다
파스타로 결정하고는 또 고민에 빠졌다.
요리사도 아니면서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 덕분에
오늘 만든 파스타도 봉골레를 변형해서 만들어 먹었다.
아이러니다.
전쟁에 관한 소설을 읽고 나서 배불리 먹는 비위.
”우리는 모두 단 하나의 세포에서 생겨난다.
티끌보다도 작은, 아니,
훨씬 더 작은 세포에서, 나뉘고, 증식하고, 더해지고 덜어지면서,
물질의 주체는 바뀌고,
원자들이 흘러 들어가고 나오며,
분자들이 빙글빙글 돌고,
단백질이 서로 합쳐지며,
미토콘드리아는 산화 명령을 보낸다.
우리 존재는 미세한 전기가 모이면서 시작된다. “
-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에서 발췌
먼지에서 시작된
대단하지 않은 인간이라서일까?
욕망이나 욕구에 휘둘리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나약해서 그 욕망에 굴복한다.
오늘의 파스타도 양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많이 만들고, 먹었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만들었을 때 바로 먹는 게 맛있기도 하지만
음식을 버리는 게 죄스러워서
모두 먹어 치우는 습관으로 몸이 고생이다.
아버지는 밥상머리 교육을 엄격하게 하셨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어진 식습관이라 고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먹고 남기라고 가르쳤다.
가르침이나 교육은 빛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빛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아들이
나처럼 미련하게 음식을 남기는 게 죄라는 인식 때문에
몸이 고생하는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