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에서 마리네티까지

한 줄에 꿰인 구슬처럼 다양한 요소를 이어준 날이다.

by 코코넛




모든 일의 시작은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시작되었다.


오감도에서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4의 아해 순으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음악이 듣고 싶어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 중에서 3 막을 감상했다.


<갑자기 오페라를 들으려고 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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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그린은 중세 시대의 전설에서

백조의 기사로 알려진 로엔그린을 기초로 작곡과 작사를 했다.

이 곡은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장에서 자주 들었던 결혼행진곡 때문이었는지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익숙하면서 좋았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신봉자로 알려졌다.

비관적인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바그너는 이해하고 동조했지만,

쇼펜하우어의 생각 중에서도 특히


(음악은 모든 예술 가운데에서 최고의 지위에 점하며,

이는 음악이 물질계와 연관되지 않은 유일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라고 했던

말에 공명이 이루어졌다고도 알려졌다.




영어가 아닌 독어라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라

가사보다 목소리와 곡에 더 의존해서 듣다 보니

음악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베란다로 나갔고

불에 올려놓았던 냄비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디선가 탄내가 나기 시작했고

그 냄새가 우리 집에서 나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하마터면 불이 날 뻔했다.


대단한 참사까지는 아니어도

바닥이 까맣게 타서 버려야 하는 냄비는

아끼는 냄비라서 음악 감상의 끝이 나빴다.

바그너를 탓할 일도 아니고

냄비를 탓할 일도 아니니 내 탓으로 돌렸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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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불상사의 뒤처리를 하다가

새까맣게 탄 냄비 속을 들여다보았다.

까만 덩어리 사이로 더 까만 무엇인가가 마치

역사 속의 인물들이 남긴 이야기들의 계보처럼 단순했다.

<단순하다고 본 이유는 소재에 대한 개인적 편견>


사람과 신에서 사람과 동물,

그리고 현대로 넘어오는 다리의 시기였던 시대부터는

사람과 기계를 하나로 통합시킨 변천사가

소재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뒤를 이어서 당연히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미래주의를 선포한 필리포 마리네티를 떠올랐다.

그들은 속도를 찬양했고,

시간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동시성>이라는 기법을 발표했다.

미래주의의 선봉자로 볼 수 있는 마리네티는 선언문을 작성한 후

이탈리아가 아닌 파리의 일간지에다 발표했다.

대담한 행보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그와 같은 선택은

그가 노토리어스 ( notorious) 한 인물로 부상한 배경이 되었고,

예술계의 노이즈 마케팅 ( noise marketing)의 시작이

필리포 마리네티라는 평가를 받게 했다.

다다이스트를 비롯해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데이미언 허스트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작가가

마리네티가 했던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행동했고

그들도 마리네티처럼 페이머스 famous가 아닌

노토리어스 notorious로 먼저 예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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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냄비는 집안에서 집 밖의 분리수거 통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도 오늘의 핵심은

바그너의 오페라가 부른 참극?이라고 해야 하나?




절친이 선물한 냄비가 이렇게 내 수중에서 사라졌으니

그 부분이 제일 아쉬운 날이다.

불에 냄비를 올려놓았을 때는 딴짓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과

요리할 때는 정신 차리고 부엌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각인되었다.

어설픈 생활인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오늘의 내 모습과 닮았을 듯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나의 요리 실력이 출중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사는 관계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다는 속담으로

오늘 벌어졌던 일을 마무리한다.



<famous / notorious의 차이는 거울 안과 밖처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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