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이 흐려서
음악에 나를 맡기는 시간이 길었다.
좋아하는 노래도 많고 곡도 다양하므로
어떤 날은 가요를 듣고 또 어떤 날은 팝송을,
그리고 클래식을 듣는 날도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장르를 섞어서 듣는 날은 없다.
즉, 가요를 들은 날은 하루 종일 가요를,
팝송을 들은 날은 팝송을,
오늘처럼 클래식에서도 피아노 연주곡을 들은 날은
지속적으로 피아노곡을 듣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지 그날의 무드라고 생각할 뿐이다.
"살짝 열린 좁은 문틈으로 깊숙이 환경이 보이는 호흐의 그림에서처럼,
아주 멀리에서 다른 색조를 띠고 스며든 비단 빛 같은 질감으로,
소악절이 춤을 추는 목가풍 삽화 같은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 속하듯 끼어들었다.
<중략>
소악절에서 지성으로는 내려갈 수 없는 의미를 찾고 있었으므로,
가장 내밀한 영혼으로부터 모든 논리적인 장치를 벗겨내고
영혼을 홀로 복도로 보내
음의 모호한 여과기를 통과하게 하면서
얼마나 낯선 도취감을 느꼈던가!.
- 미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췌
그런데 내가 음악 장르를 선별할 때
날씨가 작용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흐린 날은 추상의 시간으로,
어딘가로 숨은 형태를 찾으려는 행위처럼,
정의할 수 없는, 어떤 단어로도 명명할 수 없는
내 마음상태의
모호함을 벗어던지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