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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Sep 16. 2016

첫사랑 이야기

남자에겐 특별한 첫사랑 이야기?!?!

 나는 글 쓰는 걸 참 좋아한다.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잠깐 있었다. 물론 작가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란 실력 때문에 월급이 내 통장을 잠시 스쳐 지나가듯 그 생각도 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특히나 공대생인 나는 10여 년 동안 수학 문제와 역학 문제를 푸느라 글쓰기를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실력이 늘기는커녕 닭날개마냥 퇴화하고 말았다.

 이렇게 다시 글쓰기를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어렸을 적 한창 글쓰기를 할 때에는 글쓰기보다 시 쓰는 걸 좋아해서 주로 시를 썼었다. 지금은 반대로 시를 잘 쓰지는 않지만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건 그때에 시를 쓰던 경험이었다.


 처음 내가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첫사랑 그녀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때 외부 행사에 참여하여 안면을 트게 된 그녀와 친해져 볼 요량으로 청소년기에는 쉽게 갈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살고 있던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시쳇말로 참 지질했으며 용기도 없었다. - 이건 지금도 그렇지만 - 그래서 연락은 못하고 소심하게 편지를 보냈었다.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나마 가장 효과적으로 내 마음을 오롯이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도 그녀 또한 편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해서 내가 보낸 편지를 무시하지 않았고, 항상 내가 보낸 편지에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약 2년 정도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내 마음속에는 조금 더 원대한 꿈을 숨기고 있었지만 말이다.

 답장으로 오는 그녀의 편지에는 가끔 공부하다가 쓴 시나 좋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책 읽는 건 좋아했지만 그나마 읽던 것은 문학작품보다는 내가 흥미를 꽤나 가지고 있었던 과학이나 수학과 관련된 책들 뿐이었다. 좋은 글귀는커녕 제대로 아는 문학 작품도 교과서 내에 실린 것을 제외하고는 없다시피 했다. 특히나 시를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는데 답장에 적어준 그녀의 시는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내준 시였다면 '뭐 이런 것도 쓰나'라고 생각하며 넘겨 버렸겠지만 보내준 사람이 나에게는 특별한 사람이거니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사람이라 나도 편지에 담아 보낼 요량으로 문학책과 시집을 읽으며 '시'라는 걸 써보기 시작했다.


 처음 시는 짧았지만 며칠이 걸렸던 것 같다. 처음 써보는 시였고 시라는 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터라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한테 최종적으로 검토를 받고 편지에 담아 보냈었다. - 여담이지만 시를 보여준 친구들한테는 욕만 먹었다. 남자 놈들이, 특히나 질풍노도의 시기의 고등학생 남자 놈들이 대부분 다 이렇다. - 처음 써본다는 내용과 결과물인 시를 담아 보냈었는데 답장을 받기까지 무척이나 떨렸던 기억이다.

 며칠이 지나고 그녀에게 답장이 왔었다. 처음 쓰는 것 치고 참 괜찮게 썼다는 그녀의 평가 아닌 평가에 나는 무척이나 기뻤고 그때부터 참 열심히도 시를 썼다. 어떤 시는 편지와 함께 그녀에게 전해졌고, 어떤 시는 백일장 예선을 위해 대회 주최 측에 보내졌다. 또 어떤 시는 대학교를 다니며 들었던 문학의 이해의 수업 과제로 제출되었다. 이렇게 쓰고도 많이 남아 내 컴퓨터 한 켠에 잠들어 있는 시가 꽤 여러 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에게 무척이나 고맙다. 요즘 내가 열심히 하는 취미 중 하나인 글쓰기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글쓰기의 즐거움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나의 첫사랑 그녀에게 고마운 점은 또 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참 공부를 안 하는 장난꾸러기 청소년이었다. 말썽을 피우며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학원에서건 학교에서건 놀고 자기 바빴고 도무지 공부라는 것에는 흥미를 붙일 수 없었다. 집에서는 컴퓨터 게임이 더 좋았고 밖에서는 농구와 축구를, 수업시간에는 자느라 공부하는 시간을 다 잡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알고 나서는 참 많이 달라졌다. 그녀는 나보다 공부를 한참이나 잘 하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참 열심히 공부했다. 그녀를 만나기 이전의 학교생활에서 공부한 시간보다 그때의 2년이란 시간 동안 공부한 시간이 훨씬 많을 정도였다. 공부를 열심히 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그녀와 같은 학교 혹은 근처의 학교라도 가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고등학생 때의 나에게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계기를 그녀는 마련해 주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을 조금은 늦게 시작했을 것이고, 지금의 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 고맙다.

 

 편지를 주고받았던 저 때에는 그녀 때문에 사랑의 열병을 앓았었고, 세상의 전부와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좋았었다. 하지만 나의 순수함이 모두 다 사라져서 그런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첫사랑에 대해 아련한 마음을 품고 평생을 함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추억 중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 사랑했었던 다른 이와 함께 했던 추억, 친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추억처럼 말이다. 거기에 위에서 썼던 것처럼 약간의 고마움을 가지고 있는 정도랄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내 첫사랑이다. 딱히 남자에게 - 혹은 나에게만- 첫사랑이 좀 더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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