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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Dec 25. 2015

기분나쁜 질문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집이 어디니?'

'여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하려고?'

'취직은 했어?'

'대학교는 붙었어?'


위의 말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본 20대 후반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 한번씩은 들어봤음직한 말들이다.


보통 친척들을 만날 때는 첫 번째 문장 빼고 나머지를 항상 들어 왔고, 회사 내에서 나보다 윗사람에게는 세 번째 문장까지 많이 들어봤던 말들일 것이다.


이런 말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명절 전에 친척들에게 듣기 싫은 말로 회자될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던 것도 요즘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닌게 되어 지면서 저 질문 이후로 줄줄이 비엔나처럼 딸려 올 충고로 위장한 난도질에 당해낼 만한 재간이 없어졌다.


나도 대학 졸업 이후로 기분 좋게 지나간 명절들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다들 한마디씩 툭툭 던지고 지나가면 결국 나는 그 이야기를 한 스무번 쯤은 들어야 폭풍이 잠잠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작년 초쯤 회사에서 윗 사람이 나와 단 둘이 있던 자리에서 나에게 물어봤다.

'집이 어디니?', '출퇴근은 얼마나 걸려?', '뭐 타고 다니니?'

그래서 아직 사원인 나는 성심성의껏 말씀드렸다.


그 날 오후에 부서 전체 회식이 있었다.

업무 시간에 나에게 집의 위치를 물어보신 분께서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같이 앉은 아랫직원들의 집의 위치와 출퇴근 방법, 시간등을 물어봤다.

당연히 나에게도 물어봤다.


그때 당시에는 이 분이 왜 나에게 또 물어보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했던 이야기를 며칠이 지난 후에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몇 시간 후에 물어본다는 것 자체에 좀 짜증이 났었다. 그것도 처음 이야기를 듣는것 마냥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시며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하지만 그때에 나는 막내였고 성심성의껏 다시 말씀 드렸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몇 번인가 더 물어보셔서 다시 처음부터 말씀 드렸고, 나도 처음 말씀 드리는 것처럼 웃으며 말씀 드렸다.


그 후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부장님은 왜 그렇게 여러번 내가 사는 집의 위치를 물어보셨을까? 물어본 횟수만 생각해보면 아얘 기억력이 없으신 것이다. 하지만 같이 일하다 보면 그런 분들도 아니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 질문을 했을 때는 모두 다 같은 상황이었다. 처음 만나자 마자 아랫 직원(보통은 나)은 가만히 앉아 있고 이야기를 윗 분이 끌고 가야 할 때거나, 어떠한 이야기를 하다가 소재가 다 떨어졌을 때였다.

즉, 어색한 순간이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들 말 하지 않고, 할 이야기는 없다. 그 때에 부장님은 내가 사는 곳의 위치와 출퇴근 방법을 물어보셨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가장 만만하고 누구에게나 통할만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Ice Breaking의 역할을 하거나 어색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집의 위치를 물어보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후에는 윗 사람이 나에게 사는 집의 위치를 여러번 물어보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저 분이 할 말이 없으신가보다' 혹은 '어색함을 조금 없애보려고 노력하시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나도 성심성의껏 여러번 대답해 드렸다. 어떻게 보면 윗분이지만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도 했다. 어떻게든 이 어색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노력하려는 것이니 고맙기도 했다. 이 순간은 나도 어색하니까 말이다.


나는 이 생각을 친척들이 만나는 자리에도 적용해 보았다.

대부분 위에 언급했던 질문들은 회사에서 집의 위치를 물어보는 질문들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친척 어르신이 할 말이 없거나 처음 말을 시작할 때에 하곤 했다. 물론 회사와 큰 차이가 있다. 더 깊이, 그리고 더 기분나쁘게 빙어낚싯대에 걸린 빙어처럼 줄줄이 연속적으로 질문이 들어오는 차이. 회사의 질문이 그냥 어깨동무라면, 친척들의 질문은 쨉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예전보다는 기분나쁜게 줄어들었다. 그냥 진짜 궁금하다기보다 할말 없어서 하는 것이니 나도 여유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었고, 좀 더 능구렁이처럼 질문을 넘어 달아났다.


1년에 한 두번 볼까 말까한 요즘 현대사회의 친척들은 이웃사촌보다도 내 일에 대해 모르고 있다. 그런걸 감안해서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는 것 또한 이해가 되는 현상이다. 나에 대해 진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라기 보다 어색함을 깨려고 하는 말들에 대해 기분 나빠 하기 보다는 나도 어색한 시간을 줄여보기 위한 노력으로 건성건성 대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차피 내가 말해도 내년에 다 까먹을 말들이다.


기분 나빠 하면 결국 내 기분만 나쁜거고 나만 스트레스 받는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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