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영생의 감옥을 탈출해, 나는 서서 죽기로 했다

좌탈입망(坐脫立亡), 내 생의 마지막 주권 선언

by 명리하는 영화

나는 태생이 겁쟁이였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시절,

나는 혼자 구석에 앉아 ‘끝’을 생각했다.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히는 건 아닐까.


어린 마음에도 삶은 허무했고,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이 두려웠다.


그 공포가 나를 종교로 이끌었다.


“신앙 안에 뿌리를 내리면 허무하지 않으리라.”


그 믿음 하나로 신학을 공부했고,

신의 사랑을 위해 살다 죽으면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더 강력한 진통제를 원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것이

‘종말론’‘휴거였다.


곧 세상이 끝난다는 경고,

선택받은 자는 살아서 들림. 받는다는 약속.


그 교리는 내게 완벽한 구조였다.

죽음을 통째로 제거해 주는 논리.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겁쟁이인 나에게

그보다 더 달콤한 문장은 없었다.


나는 그 문장을 지키기 위해

30년이라는 시간을 바쳤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신앙이라기보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내가 쌓아 올린 거대한 논리의 성(城)이었다.


그 성 안에서 나는 안전했지만,

자유롭지 않았다.


게으르면 버림받을지 두려웠고,

교리가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움직였다.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만 있다면

영혼의 주권쯤은 양도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그러나 30년 만에 깨달았다.

그 성은 모래 위에 세운 사상누각(砂上樓閣)이었다.


영생은 없었다.

약속된 휴거도 오지 않았다.


거짓된 진리의 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지영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상에 섰을 때,

나는 벌거벗은 채 죽음과 다시 마주했다.


결국 인간은 죽는다.


영생의 환상이 깨진 자리에는

차가운 허무가 밀려왔다.


“그게 진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달콤했던 거짓말이 그리워

눈물 흘린 날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는

위로라는 이름의 도피처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질문을 바꾸었다.


“어떻게 죽음을 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그 질문 끝에서 나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는 네 글자를 만났다.


앉을 좌(坐), 벗을 탈(脫),

설 입(立), 망할 망(亡).


앉아서 허물을 벗고, 서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


옛 고승들이 수행의 힘으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부좌를 튼 채, 혹은 꼿꼿이 선 채

육신을 벗어던졌다는 이야기.


나는 그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삶의 밀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자의

마지막 태도라고 이해했다.


누군가는 비웃을 것이다.

예순을 갓 넘긴 평범한 여자가 무슨 좌탈입망이냐고.


그러나 나에게 이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다.

삶의 주권을 되찾겠다는 선언이다.


지난 30년,

나는 ‘영생’이라는 족쇄에 묶여

내 삶의 주인을 남에게 넘겨주었다.


이제 그 족쇄를 풀었으니

내 죽음만큼은 나의 것이어야 한다.


약물에 취한 채 흐릿한 정신으로

타인의 결정에 마지막 숨을 맡기는 연명은 원치 않는다.


내 의식이 또렷한 순간,

“아, 이제 소풍을 마칠 시간이구나. 잘 놀다 갑니다.”

하고 스스로 문을 닫고 나가고 싶다.


나는 그것을 존엄이라 부른다.

물론 안다.

육신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고통이 밀려오고,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세(Position)가 아니라 태도(Attitude)다.


내가 말하는 좌탈입망은

물리적으로 서서 죽는 기술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 앞에서

비굴하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결심.


마지막 호흡이 멎는 찰나까지

내 영혼의 척추를 곧게 세우고

내 삶의 엔딩을 스스로 목격하겠다는 다짐이다.


나는 질척이지 않기로 했다.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붙어

누군가가 떼어주길 기다리는 죽음이 아니라,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처럼
가볍게 바람을 타고 떠나는 죽음을 준비한다.


이 글은 30년의 방황 끝에

‘나’를 되찾은 한 여자가

죽음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쓰는 수행 일지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내 마지막 날,

내 정신이 링거 줄보다 더 팽팽하게 깨어있기를.


영생을 꿈꾸던 겁쟁이 소녀가

유한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미소로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


나는, 영생의 감옥을 나와 서서 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