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내 삶의 마지막 좌탈입망을 위하여
밥 한 공기와 국, 반찬 몇 가지. 거기에 “이건 남기면 아깝지” 하며 집어 든 전 한 조각까지.
먹고 나니 속이 묵직했다. 몸은 소파에 달라붙었고, 정신도 흐릿해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무거운 몸으로 어떻게 가볍게 떠난단 말인가.’
나는 오랜 시간 장애인 활동 지원사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어려운 환경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가까이서 돌본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목격한 가장 서늘하고 잔인했던 장면은,
의식도 소화력도 이미 사라져 버린 육체에 억지로 꽂아 넣던 ‘콧줄(L-tube)’이었다.
배설물이 넘쳐나는 무거운 기저귀와 고통스러운 욕창.
자연은 이제 그만 육신의 문을 고요히 닫으려 하는데,
현대 의학은 누런 영양액을 기계적으로 밀어 넣으며, 껍데기뿐인 생명을 질기게 연장했다.
그 억지스러운 채움의 끝은 무겁고 처참했다.
얼마 전 《의사를 반성한다》를 읽다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입에서 음식을 거부한다면 억지로 먹이지 마라. 몸이 이미 알고 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잊고 지내던 진리였다.
야생의 동물은 아프면 먹지 않는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조용한 곳으로 몸을 옮겨,
몸 안의 찌꺼기를 깨끗이 비워내며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다르다.
아프면 “잘 먹어야 낫는다”라고 하고,
나이 들면 “기력을 보충해야 한다”며 자꾸만 무언가를 더 채워 넣으려 한다.
생을 존중하는 태도는 귀하지만, 억지스러운 연장만이 존엄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고 말하면서도,
평생을 탐욕스럽게 육신의 무게를 마지막 순간에 온전히 비워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그토록 염원하는 ‘좌탈입망(坐脫立亡)’.
꼿꼿이 앉거나 선 채로 조용히 숨을 거두는 수행자의 경이로운 열반 이면에는
바로 이 철저한 ‘비움’이 있다
전남 화순의 이세종 선생은 자신의 때를 알고 석 달간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평생을 덜어내며 살아온 사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든 자만이 연출할 수 있는 삶의 최후의 걸작이다.
나는 감히 그 거룩한 경지까지 흉내 낼 자신은 없다.
다만, 예순을 넘기며 내 몸이 내게 먼저 보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이제 그만 넣어라. 나도 힘들다.”
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가볍게 즐기던 캔맥주는 속이 편하지 않고, 믹스커피의 단맛은 부담이 되었으며, 여름이면 늘 달고 살던 아이스커피도 깊은 잠에 방해가 되는 듯하여 과감히 끊기로 했다.
처음엔 ‘이제 마음껏 먹지도 못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 그것은 쇠약의 신호가 아니라 지혜의 신호였다.
무거운 짐을 줄이라는, 이제는 가볍게 살라는 내 몸의 정직한 요청이었다.
나는 몸의 말을 듣기로 했다.
간헐적 단식을 해보고, 2주 동안 탄수화물 제한식도 시도해 보았다.
배가 고프면 우리는 초조해진다.
머릿속은 온통 “뭐 먹지?”로 가득 찬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질긴 본능이다.
만약 이 본능을 조용히 다룰 수 있다면,
내 삶을 붙잡고 있는 다른 헛된 집착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배가 가벼워지자 머리가 맑아졌다.
속이 편안해지니 생각이 또렷해졌다.
다이어트는 부수적인 결과였다.
내가 진짜로 얻은 것은 ‘비움의 감각’이었다.
가득 채울 때보다 덜어낼 때, 내 존재가 더 선명해지는 묘한 경험.
물론 나는 여전히 가끔 과식하고, 소화제를 찾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달라졌다.
숟가락을 들기 전,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묻는다.
“이건 진짜 배고픔인가, 아니면 그저 채우고 싶은 습관인가?”
죽음을 앞둔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드시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맑은 물 한 잔이면 충분합니다.”
죽음은 육신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는 일이다.
그 홀가분한 길을 떠나는데, 배 속까지 찌꺼기로 가득 채워둘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숟가락을 조금 일찍 내려놓는다.
위장은 가볍게, 정신은 또렷하게.
탐욕을 줄이는 식사,
그것이 내가 연습하는 소식(小食)이다.
나는 지금 죽음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를 조금 더 가볍고 명랑하게 살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