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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Jan 18. 2016

촌스럽다고 욕하지 마라

세상의 수많은 '시선'. 그 다양함과 편협함에 대한 이야기

독일 혹은 유럽의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면 흔하게 겪는 일이 있다. 느닷없이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묻는다. “Kommst du aus China?”, “너 중국에서 왔니?” 한술 더 떠 아예 “니하오마?(你好吗?)”라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다. 유럽인, 중동인, 아메리카인 할 것 없이 열에 여덟은 나를 중국사람으로 본다. 그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을 기세, 신속 정확하게 복식 발성으로 답한다. “Nein, Ich komme aus Korea.” “아니, 나 한국에서 왔는데…” 단호한 내 표정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가버리거나 간혹 깐족거리며 “Nord?” “북한?”하며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걸 확! ㅡ.ㅡ) 대답 없이 ‘기분 나쁨’을 내색하며 시선을 돌려 무시해버린다. 나머지 열에 둘은 일본에서 왔냐고 묻는다. 이 상황도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중국인 취급(?) 받는 것보다는 낫다. ‘중국인’ 이냐는 질문을 받은 후에 자동반사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있다. 겨드랑이 냄새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 “킁킁”거리고 어깨에 비듬이 떨어졌나 둘러보고 정수리를 손톱으로 긁고 냄새를 맡아본다. 마지막으로 내 패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어딜 봐서 중국인이래? 이쒸~~)

이 복장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물어본다. "중국인이니?"

어디 나만 그런가.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중국인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불쾌해한다. 간혹 동남아시아인으로 오해받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멘붕에 빠진다. 그들을 보면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인가 의심이 된다. 진짜다.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촌스러운 사람을 일컬어  ‘중국인스럽다’라고 하며 놀린다. 그들 인식 속에 중국인은 “촌스럽고, 잘 안 씻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라고 정의한다. 

나는 진짜 ‘중국인’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국을  떠난 지 곧 만 3년인데 미용실에 가본 적이 없다. 생활비 절감 차원에서 아내가 직접 커트를 해주기 때문에 사실 내 헤어는 스타일리시(stylish)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잘 안 씻어서 냄새가 나거나 못 봐줄 만한 패션감각은 아닌데 정작  “한국인입니까?”라는 질문은 거의 못 받아봤다. 열에 여덟은 중국인, 둘은 일본인으로 오해한다. 


‘한류 열풍’이 유럽 대륙을 강타하고 있다는 한국의 뉴스 보도는 ‘구라’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한국은 유럽인들이 바라볼 때 여전히 작은 나라다. 대부분 ’ 전자기기, 가전제품을 잘 만드는 나라’ 정도로만 생각한다. 반면, 중국은 다르다. 이미 중국은 BC 139년 전한(前漢) 때,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과 무역을 시작했다.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 중국의 비단은 최고 상품으로 여겨졌다. 6,400km 험지를 지나야 하는 어려움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현재 중국은 어떤가. 미국, 유럽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한 축이다. 중국돈 위안화는 얼마 전 세계 기축통화로 편입되면서 세계 3대 통화(달러, 유로, 위안)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군사력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3위다. 

실크로드의 개척자, 장건

이 정도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나라임에는 확실하다.


한국 유학생, 아니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무시하는 현상은 저열한 열등감의 표출이다. 한국과 중국 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중국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1966년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경제가 몰락했던 7,80년대를 제외하면 우리가 언제 중국에게 시원하게 큰소리 한 번 친 적이 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국제정서를 고려할 때, 우리는 다시금 중국의 간섭을 받고 있다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중국스러움’을 무시하는 이유는 문화와 사회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경제적 부를 문화적 수준과 동일시하고, 나라들의 발전 정도를 한 줄로 세워 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단선론적 발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금. 우리의 부끄러운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이마저도 우리의 착각이 전제되어 있다. 

코 앞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도 엿은 미소로 응답해줬다.

“중국인은 촌스럽다.”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촌스러운 게 잘못인가. (나도 잘못인가.) 짧은 유학생활 동안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대부분 성실했다.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한국 학생들은 나를 포함, 자주 지각하거나, 결석했다. 그러나 중국 학생들은 대륙(?) 느낌 나게 자신감이 넘쳤고 대부분 한국 학생들보다 ‘말하기’도 잘했다. (어학원에서 한국 학생들이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원인은 '게으름'  때문이기보다는 ‘말하기’의 자신감 부족 때문이다. 진짜 한국 사람들은 ‘말하기’에 약하다. 내 생각이다.)


다시 돌아가서, 나에게 “중국인이니?”라고 물어봤던 외국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사실 그들 눈엔 머리 까맣고, 눈 좀 옆으로 찢어지면 다 똑같이 보일 것이다. 내가 미국 사람, 영국 사람, 프랑스 사람 구분 못하는 것처럼. 나름 나에게, 혹은 아시아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나에게 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건넨  것뿐인데 나의 저열한 열등감이 분출되어 못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상황에 따라 개인주의적(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이 우선한다는 사상)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의 몇 가지 특성들로 중국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중국 인구는 13억명이 넘는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기준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아주 세련된 사람들의 숫자가 우리나라 인구수보다 많을 것이다.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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