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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Oct 27. 2024

외전(外傳)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왜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 일은 주말 아침에 자주 일어날까. 월요일부터 쌓인 스트레스를 빠짐없이 휘발해 버리라는 듯, 주말 오전에는 시간도 일부러 느릿느릿 흘러가는데, 유독 나만 그런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워야 할 시간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난처한 상황이 불편했다. 마치 세상을 움직이는 손들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순서를 정해 나를 괴롭히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상을 뒤틀어 버리는 사건들은 꼭 주말에 찾아왔다. 그런 경우, 대체로 집에서 긴장의 끈을 놓고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얻어맞는 경우가 많아서 더 기억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2023년 10월 7일 오전

넉 달 전, 베를린 교외로 이사를 했다. 새집에는 아담한 크기의 마당이 딸려있다. 주말마다 손님을 초대해 집들이를 겸한 그릴 파티를 즐기던 시기였다. 그날도 보통의 주말과 다를 게 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빵과 커피만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치웠다. 손님이 오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을 분업해 효율을 높였다. 나는 마트에 가서 고기와 맥주를 샀고, 아내는 집 안 청소와 더불어 바베큐 고기에 곁들일 상추와 오이를 씻어서 채반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는 자기 방과 신발장 정리로, 손님 맞을 준비를 끝냈다.


2023년 10월 7일 오후

손님들이 왔다. 나는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얹어 그 위에 고기를 구웠다. 모두가 불에 구운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고기를 더 가져오려고 그릴 앞에 갔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감독님, 주말에 미안해요. 혹시 우리 이스라엘에 가게 될지도 몰라요.”

“지금요?”

“아직 확정은 아니고요. 일단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자고요.”

“네”


2023년 10월 7일 저녁

바베큐 고기를 배불리 먹고, 디저트로 과일을 먹었다. 기분좋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불쑥 손님 중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혹시 이스라엘은 안 가세요?”

“네?... 네!”

나의 대답이 부자연스러웠던 걸까? 아내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언젠가부터 유럽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 소식이 전해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2023년 10월 7일 밤

손님들을 돌려보내고 침실에 들었다. 잠을 청하려는데 아내가 말했다.

“이스라엘은 진짜 안돼!”

“안 가! 걱정하지 마.”

“장담하지 마! 지난번에도 그랬어. 예감이 안 좋아서 그래.”

“예감은 무슨, 쓸데없는 걱정 말고 어서 자!”

“진짜 이스라엘은 안돼!”


2023년 10월 8일 새벽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무력 다툼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스마트폰을 열고 관련 기사를 계속 검색했다. 아내가 뒤척였다.


2023년 10월 8일 오전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게으름을 몸에 감고 뒹굴뒹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도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거리에 사람도 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동네 전체가 고요했다. 청각을 자극하는 건 새들의 지저귐뿐이었다. 후드득 새들이 날아가자, 고요가 적막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2023년 10월 8일 저녁

일찍 저녁을 먹었다. 아이와 함께 유튜브로 예능을 봤다. 아이는 이제 제법 커서 자기만의 웃음 코드를 찾았다. 그런 것도 유전이 되는 것일까? 아이가 ‘무한도전’을 좋아한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방송된 옛날 예능이다. 소파에 기대어 아이가 소리내어 웃었다. 아내도 웃고 나도 웃었다. 다행히 전화벨도, 메시지 알람도 울리지 않았다.


2023년 10월 8일 밤

손님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늦잠을 자고,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가족과 함께 웃고 떠들었던 주말이 끝나가고 있었다. 7일 오후, 단 28초 동안의 통화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전화를 걸어 온 이의 마음이라고 편했겠는가. 그도 아빠고, 남편이다.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2023년 10월 9일 오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결국 이스라엘에 가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고작 이틀 사이에 현지 상황은 더 악화되어 있었다. 이스라엘-하마스만의 문제가 아닌 전쟁이 중동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현재 그 분석은 현실이 되었다.) 호텔과 비행기를 예약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촬영 장비와 옷가지를 챙겼다. 예약이 완료되는 대로 공항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동료가 말을 걸었다.

“가족한테 얘기는 했어요?”

“아뇨!”

“왜 그랬어요. 이번 출장은 진짜 위험할 수 있어요. 먼저 가족한테 말은 해야죠.”

나는 출근해 있는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스라엘 가야 할 것 같은데’ 보냄 버튼을 누르자마자 메시지를 확인한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안돼 못 간다고 해.”

“그렇게 안 돼 이미 가겠다고 했어. 짐도 다 쌌고.”

“그러면 무르겠다고 해. 호텔이랑 비행기 비용 때문이라면 내가 그 돈 대신 지불할 테니까 못 간다고 해.”

“어떻게 그래. 이미...”

“안된다고. 나도 지금까지 많이 참았어. 여행용 가방에 방탄조끼를 넣고 다니는 거, 그걸 보는 내 심정이 어땠는 줄 알아? 그래서 안돼. 이번엔 진짜 못 보내겠어. 여보 제발!”

아내는 말하면서 계속 울었다. 우는 목소리를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그 전에 미안하다고 해야 했다.


아내의 호소 덕분에 나는 이스라엘에 가지 않았다. 아내의 바람처럼 베를린에 남았다고 하하호호 하였을까?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는 우리의 대화가 이기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옳고 그름의 기준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험지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본능이 있었을 뿐이다.


신은 어찌할 요량으로 이 땅에서 전쟁을 내버려두고 있는가? 매일 사람이 죽고 또 죽어서 산을 이루었는데 얼마나 더 죽어야 이 고통의 끝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정녕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마저 부끄럽게 만들어야겠는가? 두려운 마음이 밀려와 묵직한 질문들이 자꾸만 뒤섞인다.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 보면 알게 될 답들일 테지만 나의 질문이 유난스러운 이유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세상이 더없이 걱정스러워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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