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에 대하여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루 종일 뉴스를 보고 있어도 ‘김영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분명히 뉴스 안에 존재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인식되거나 관측되거나 사유되지 않는다. 세상에 아주 미미한 영향만 끼칠 뿐, 사실상 무無와 다를 바 없는 정도인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도 뉴스가 발생하는 현장에서만큼은, 궁상맞은 생각은 접어두고 나의 쓸모를 다했다. 산맥이 양 갈래로 쪼개지고, 미사일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건물이 불에 타서 붕괴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슬피 우는 곳이라면 어디든,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다.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즉각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직관적으로 반응했으며, 오감으로 느껴지는 자극을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분출해 냈다. 내 오른손에 들린 카메라는 나의 시선이 명령하는 대로 따라 움직였고, 조리개는 나의 동공과 페어링 되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만큼의 빛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촬영된 모든 영상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녹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또,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은 따로 메모했다. 메모장에 쓴 글은 카메라 뒤에 선 나의 이야기이며, 바람 불면 휙 날아가 버릴, 먼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다. 글을 쓰기 위해 메모장을 뒤적이는 순간부터 치열했던 현장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세상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애썼는지, 어른들이 야기한 혼탁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희생당하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폭력의 고리를 끊고 다시금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오기를 얼마나 절절하게 기원했는지. 그런 특수하고 구체적인 경험들이 모여서 나의 문학이 되었다. 그러면서 나도, 과거의 나를 불러내 해묵은 상처와 화해할 수 있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쓸모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서글픈 감정이었다. 무無에 수렴된 인생이라, 맛도 무미無味할 것 같지만 실은 지독히도 매운맛이었다. 낙심하고 눈물짓던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듯 있는 그대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