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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Mar 06. 2016

베를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이야기

우리도 분단의 틈을 예술로 채울 수 있을까?

베를린 동쪽. 슈프레 강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에서 가장 길고(1.3km) 오래된 야외 갤러리,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를 만날 수 있다. 사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두고 “오래되었다”든지, “가장 길다”는 식의 물리적인 평가는 오히려 이 곳이 지닌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희석시킬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105개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곳이 간직한 역사와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스트 사이들 갤러리의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5년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후 독일, 베를린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군의 점령지인 서베를린과 소비에트 연방의 점령지인 동베를린으로 나뉘었다. 이들 승전 국가들이 독일을 나눈 목적은 하나의 국가로 다시금 결합하지 못하게 하여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영향을 받아 서베를린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 연방 공화국이 되었고, 동베를린은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가인 독일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점차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첨예해지자,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가로막는 장벽을 세워 서로의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베를린 장벽

1961년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총 길이가 167.8km에 달했다. 공산주의를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3.7m의 장벽을 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임진강을 헤엄쳐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자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1989년 11월 9일.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민족의 하나 됨을 막지는 못했다. 동독, 서독의 국민들은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는 구호 아래 통일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고 마침내 동-서간의 자유 왕래를 허용한다는 동독 공보담당관 샤보프스키의 발표가 있자마자, 동-서독의 국민들이 장벽으로 몰리면서 37년 간 베를린의 시간과 공간을 가로막았던 장벽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 동독 공보담당관의 자유왕래 발표는 외신기자와의 기자회견 중 잘못된 의미 전달로 인한 오보였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작품들은 이런 역사적 배경 위에 그려진 그림이다. 분단의 상징 위에 새겨진 예술작품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남, 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단순한 예술작품 이상의 메시지이고, 장벽을 따라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을 따라 걸어보자.
이념의 갈등과 단절되었던 시간의 틈. 예술이 채우다.

1989년 장벽이 무너진 후, 그 이듬해 봄. 21개국 118명의 예술가들이 1.3km 길이의 장벽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작가들이 모여들면서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탄생되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역사의 흔적 위에 과거를 잊지 않고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독일은 통일 이후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동-서간에 이념도 달랐고, 경제적 격차도 컸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명분 아래 하나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사회 이곳저곳에서 동-서간의 차이에 대한 볼멘소리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이념의 갈등과 분단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시간의 틈은 여전이 남아 있는 듯하다. 오히려 분쇄화로 인해 새로운 틈이 연속해서 생겨 났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나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그 것들의 틈을 채울 수 있다. 예술의 해학과 풍자를 통해 다양한 생각들이 일치점을 만날 수도 있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형제의 키스, 디미트리 푸르벨 작

가장 유명한 '형제의 키스'.

이작품은 러시아의 디미트리 프루벨 작가가 그린 그림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서기장이었던 에리히 호네커의 동독 30주년 을 맞아 동베를린에서 만난 두 사람의 실제 키스 사진을 재연한 작품으로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자유와 평화를 갈망했던 동독인들의 바람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장벽을 뛰어 넘은 사람, 가브리엘 하임러 작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한 남성이 베를린 장벽을 넘는 장면을 묘사했다. 분단 시절, 동에서 서로 목숨을 걸고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동독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오기 위해 장벽을 넘는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어두운 표정의 무리의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동구권 국가, 헝가리 출신 작가의 유년 시절을 담았다고 한다.

남은 것을 시험하라, 비리기트 킨더 작

동독에서 유일하게 생산했던 자동차 트라비가 자유를 향해 베를린 장벽을 뚫고 나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트라비를 실제로 본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비는 우리나라의 경차들보다도 훨씬 작은 차이기 때문에 이 자동차로 벽을 뚫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무너뜨릴 벽은 많다, 이네스 바이어 작

진지하지 않으면서 가볍고 재미난 분위기의 삽화처럼 그려진 작품으로 “베를린의 장벽은 무너졌지만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장벽은 여전히 많다.” 인종, 종교, 세대 간의 갈등 등의 또 다른 장벽을 허물자는 작가의 마음을 팝아트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최근 더 깊어진 남, 북한 간의 벌어진 틈을 언젠가는 채워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접근뿐만 아니라 해학과 풍자를 담은 예술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일부 이미지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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