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하루는 오늘 지내온 날보다
조금 더 마음이 가라앉아 보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써본다.
자신의 말과행동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보는 사람.
그 나아가는 빠르기가 느즈막 할지라도
어느 때에 가서는 틀림없이 꼭 변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만의 속도로 짐작하여 가늠하면서 둘러본다.
지나고 난 후, 앞으로 오는 날에
지금 이 시간을 곱씹어 본다면
행복했었구나, 잘 살아가고 있었구나,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라며 걸어서 나아가 본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며
헤아리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올해로 초등6학년 그리고 초등3학년이 되는 남자아이 둘.
자부하지만 영혜 어린이는 좀처럼 미화여사 속을 썩이는 일이 없었다.
(이것은 미화의 틀림없는 증언이기도 하다)
강산이 3번쯤은 바뀌고도 남았을 텐데
언제 적 이야기를 뜬금없이 주절주절 꺼내는 것인지,
갑자기 조금 무안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살아오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어디 하나뿐이었겠냐만,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중 제일 이었다는 것을 자신 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펜을 골라 들어
끄적여 내려가기를 꽤나 오래도록 해왔었다.
과거형으로 적은 이유는 얼마 전부터는 이런 일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고 ,
위에 써 내려간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처량함이 뚝뚝 떨어지는데 ,
이는 아이들을 호되게 나무라고 벌을 줬던 숱한 날.
모두 잠든 한밤중 노트에 끼적이며 다소 과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조금 오그라드는 흔적이다.
어느 날 긴긴밤동안 끼적였던 노트에 문장들을 훑어보던 중.
대단히 소름이 돋았다.
되도록 번듯하게 적어두었던 문장들의 되뇜과는
너무 다르게 아이들을 대하며 키우고 있는 사람.
몹시 무지하고 상스러우며 포악하기까지 한 엄마의 모습. 그런 내가 그제야 보였던 거다.
그날밤 노트를 덮어버렸다.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나만 볼 수 있는 글이기는 했으나
이중적인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기 때문 이리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생각이 깊어져 심각하게 고민하는 성가심은 싫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 듯 스스로를 다그치는 기분은 조금 답답했고,
그런던 중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며
문득 다시 노트를 펼쳐보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부끄러움에 빠졌던 나를 다시 꺼내본다.
이런들 저런들 어떻겠냐 ,
기어이 스스로를 아껴주고 보듬으려 한다.
괜찮아. 이쯤이면 괜찮은 엄마 아니겠니.
이제 부끄러워하지 말아. 애쓰고 있어.
아직 중2병은 오지도 않았는걸,
아 , 갑자기 조금 슬퍼진다.